등록 : 2014.07.21 18:49
수정 : 2014.07.21 18:49
자기 겉모습을 관찰하려는 욕망을 가진 동물이 인간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욕망을 실현할 능력을 가진 동물은 분명 인간뿐이다. 인류는 금속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자마자 거울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류가 청동기시대에 만든 다른 물건들에 비해 거울의 진보 속도는 대단히 더뎌서, 16세기까지도 계속 청동거울이 사용되었다.
청동거울은 선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보통사람이 쉽게 소유할 수 없는 귀중품이기도 해서, 그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자기 겉모습을 관찰하려는 욕망을 충분히 실현할 수 없었다. 고작 달밤에 우물을 굽어보고 어렴풋이 비치는 자기 얼굴을 확인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유리거울이 처음 발명된 것은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였고, 현재와 같은 거울 제작 기법은 1835년에야 발명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개항 전에 중국을 통해 유리거울이 소개되었을 것이나, 본격 수입된 것은 개항 이후였다. 제 모습을 관찰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은 유리거울의 수요를 급속히 확대시켰다. 1883년, 조선 정부는 미국인 조지프 로젠봄을 초빙하여 한강변에 파리국이라는 판유리 제조회사를 설립했다. 뒤이어 몇몇 민간인도 유리공장을 차리기 위해 일본인 기술자를 초빙했고, 판유리 제조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유학하는 이들도 생겼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땅에서 유리거울 제조가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1897년의 <독립신문>에 유리거울조차 전량 수입해 쓰는 형편을 한탄하는 기사가 실린 것을 보면, 이때까지도 국내에서 생산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로부터 고작 100여년 사이에, 유리거울은 모든 건물의 요소요소를 장악했고, 사람들은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 겉모습을 관찰하는 습관을 들였다. 더불어 사람들은 마음보다 몸에,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갖는 존재로 변했다. 남의 마음에 생긴 큰 상처보다 자기 얼굴에 생긴 점 하나를 더 중시하는 잔인한 문화가 만들어진 데에는, 유리거울이 책임질 몫도 있지 않을까?
전우용 역사학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