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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3 19:18 수정 : 2017.08.23 21:03

전우용
역사학자

“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고 열이 나면 어떡할까요? 어느 어느 병원에 가야 하나요?” 대략 한 세대 전부터 유치원 아이들이 배우고 부르는 노래의 한 소절이다. 오늘날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건 극히 초보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상식이었을까?

병은 나기도 하고 들기도 하고 걸리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병의 원인이 여럿인 이상 그 치료법도 하나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나 할머니의 손, 이웃 노인의 식견, 판수나 무당의 술법, 종교 사제의 기도, 의원의 의술이 모두 치료법을 구성했다. 치유의 권능은 신만이 가진 것이었으니, 병을 낫게 해 주면 의원이든 무당이든 ‘신통(神通)하다’는 찬사를 들었다.

의술이 다른 치료법들을 압도하게 된 것은 제국주의가 전세계의 의술과 약물들을 자기 전통의술을 중심으로 통합한 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항 이후 오랫동안 이 의학을 익힌 사람들을 서양인이든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양의’(洋醫)라고 불렀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자국에서 전통의사를 자연 소멸시키는 정책을 추진했으면서도, 식민지 조선에서는 양의 양성을 억제했다. 부자에게든 빈자에게든,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은 자기 목숨값이다. 양의의 희소가치가 높은 만큼 의료비는 비쌌다. 해방 뒤에도 사정은 그대로여서 아픈 가족을 병원 문턱에도 데려가 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사람들의 한이 쌓여갔다.

1977년 7월1일, 상시 500인 이상을 사용하는 사업장의 근로자를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조합에 가입시키는 조처가 취해졌다. 이후 한동안 의료보험증은 외상 보증수표 기능도 겸했다. 1989년에는 전 국민이 의료보험 가입자가 되었다. 의료보험증은 2000년에 건강보험증으로 바뀌었는데, 그즈음부터 빈부 간, 세대 간 갈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물건이 되었다. 이 물건은 여전히 사회적 갈등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미제가 부럽지 않은 국산 중에서는 이것이 으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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