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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7 18:37 수정 : 2017.11.20 18:48

전우용
역사학자

1899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사해루라는 음식점을 경영하던 중국인 진헤이준(陳平順, 중국 발음 천핑순)은 본국에서 온 노동자와 유학생들을 위해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양이 많고 값싼 음식을 개발했다. 재료는 일본산이지만 솜씨는 중국산인 이 음식에는 짬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밥 먹는다는 뜻의 중국어 ‘츠판’(吃飯)을 일본인들이 잘못 알아들어 붙은 이름이라는 설과, 장구이(掌櫃)의 ‘장’과 닛폰의 ‘폰’을 합쳐 만든 말이라는 설이 있다. 짬뽕에는 ‘서로 다른 것들을 뒤섞다’라는 뜻도 붙었는데, 일본 것과 중국 것이 섞였지만 중국에서는 먹기 어려운 중국 음식이다.

한국에서 짬뽕에 상응하는 중국 음식이 짜장면이다. 한자로는 작장면(炸醬麵), 튀긴 장을 얹은 면이라는 뜻인데, 중국 산둥성 향토음식에서 유래했다고는 하나 이 역시 정작 중국에서는 먹기 어렵다. 외국에서 짜장면을 먹으려면 차이니즈 레스토랑(Chinese Restaurant) 옆에 코리안 스타일(Korean Style)이 병기된 간판을 찾아야 한다.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조선 정부의 요청에 응하는 형식으로 군대를 파견했다. 광동수사제독 오장경(吳長慶)이 4000여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서울에 들어왔는데, 군수품 조달상 40여명도 따라왔다. 이들이 오늘날 한국 거주 화교들의 원조다. 외국 군대가 아무 대가 없이 주둔하지는 않는 법. 이 직후 조선과 중국 사이에 무역장정이 체결되어 서울과 인천 등이 중국 상인들에게 개방되었다. 이때 들어온 중국인들이 짜장면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으나, 음식점에서 사 먹을 수 있게 된 건 러일전쟁 이후 산둥성 출신 쿨리(20세기 전반 중국과 인도에 있었던 기간제 노예)들이 대거 입국한 뒤였다. 1905년 인천의 중국음식점 공화춘이 처음 짜장면을 메뉴에 올렸는데, 값싸고 이국적인 이 음식은 곧 한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고, 이후 수십년간 서민 가정의 대표적인 외식 메뉴가 되었다.

현대인은 외식하는 인간이다. 짜장면은 현대 한국인을 대중음식점으로 이끈 대표적인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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