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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10 18:01 수정 : 2018.01.10 19:17

전우용
역사학자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 등 극소수 동물을 제외하면, 모든 생명체는 자기가 소비할 물질을 스스로 구하고 만든다. 오직 인간만이 생존에 필요한 물질의 일부 또는 대부분을 타인이 생산한 것으로 충당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자기가 소비하는 물건을 만든 사람에게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의 기능은 심신 상태에 영향받는 바 컸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같은 품질이 되지 않았다. 옛사람들은 그나마 자연이 덜 변덕스럽다고 보았다. 그래서 한산모시, 안동포, 나주배, 개성인삼 등 지명과 결합한 특산물의 이름은 전하지만, 생산자의 이름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산업혁명은 물자 생산의 주역을 인간에서 기계로 바꾸었다. 기계는 사람이나 자연과는 달리 변덕스럽지 않았다. 한 공장에서 같은 기계들이 만든 물건들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점을 찾아내기가 오히려 어려웠다. 이에 따라 어떤 자연환경에서 누가 만들었는가보다는 누구의 공장에서 어떤 기계로 만들었는가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더불어 공장 소유자가 만들어 부착한 표지로 상품의 균질성을 표현하려는 욕망도 커졌다. 1857년, 프랑스가 처음으로 장사꾼의 표지, 즉 상표를 법적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09년 11월 일본의 상표법이 적용되면서 상표 등록 및 그에 대한 법적 보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10년 동화약품이 이 법에 따라 ‘부채표’를 상표로 등록했는데, 이것이 현존하는 한국인 제작 상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방직의 ‘태극표’, 대륙고무의 ‘대륙표’ 등이 유명했고, 해방 후 대한민국 상표법에 따라 등록된 것들 중에는 샘표, 삼표, 말표, 오리표 등이 아직껏 명맥을 지키고 있다. 이제 ‘~표’라는 상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상표가 없는 물건을 찾기란 그보다 더 어렵다.

현대인은 상표 찍힌 물건들 안에서 살며, 상표를 매개로 물질세계를 인식한다. 그들은 그저 기호일 뿐인 상표에 물건의 가치를 높여주는 특별한 효능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몸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자기 몸에 유명 상표들을 부착하려고 애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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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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