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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3 16:38 수정 : 2019.07.24 09:28

전우용
역사학자

동지 후 세번째 미일(未日)을 납일(臘日)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이날 왕실 의료기관인 내의원에서 청심환(淸心丸), 안신환(安神丸), 소합환(蘇合丸) 등 상비약을 만들어 왕에게 바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 약을 납약(臘藥) 또는 납제(臘劑)라고 했다. 왕은 납약을 다시 각 관청과 군문에 나누어주어 응급 환자가 발생할 때 쓰도록 했다. 조선시대에도 신약이 발명되는 경우가 있어, 정조 때는 소합환 대신 제중단(濟衆丹)이나 광제환(廣濟丸)을 만들어 보급했다. 제 돈으로 청심환을 만들어 두었다가 납일 전후에 ‘불우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민간 독지가도 있었다.

개항 이후 금계랍, 회충산 등 효능이 뛰어난 구미산 약품들이 들어와 시장을 확대해가자, 의약에 식견이 있는 한국인 중에서도 신약을 발명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897년 민병호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活命水)라는 신약을 개발했다. 122년째 이 약을 발매하는 동화약품 쪽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궁중에서만 복용되던 생약의 비방을 일반 국민에까지 널리 보급하고자 서양의학을 접목하여 개발한 것’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들어온 가루약 활명산을 액상화한 것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참고로 1908년 동화약품은 ‘본국 약재를 몸으로 삼고 서양 신법을 응용하여’, 즉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원칙에 따라 활명수 등 각종 약품을 만들었다고 광고했다.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을 접목해 신약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일본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에도시대 말기에 용각산이 만들어졌으며, 러일전쟁 무렵에는 인단(仁丹)과 정로환(征露丸)이 발명되었다. 인단은 메이지 일왕의 ‘인정’(仁政)을 상징하는 이름이었으며, 정로환은 문자 그대로 ‘러시아를 정벌하는 환약’이라는 뜻이었다. 이 약들은 바로 한국에 들어와 청심보명단, 사향소창단, 회생단, 만금단, 팔보단, 자양환 등 여러 국산 신약과 경쟁했다. 국산 신약들이 “육군 군의 모씨가 효능을 입증했다”며 근대 의학의 권위를 빌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수없이 개발되었던 한국산 ‘동도서기’ 약품은 활명수밖에 남지 않았지만, ‘상비약 시대’에 국산 신약의 자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기억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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