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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7 17:34 수정 : 2019.12.18 14:49

전우용 ㅣ 역사학자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몇년 동안 매달 15일 민방위 훈련 날마다 교실에서 ‘적의 공습’에 대비한 훈련을 반복했다. 경계경보가 울리면 책상에 엎드려 조용히 기다렸다가, 공습경보가 울리면 의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쭈그리고 앉았다. 다시 화생방경보가 울리면 미리 준비해 간 비닐을 뒤집어쓰고 숨을 참았다. 비닐 한 장으로 과연 독가스, 세균무기, 방사능 무기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는 궁금하지 않았으나,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소리보다 빠르다는 제트기가 날아오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을지는 궁금했다.

초등학생조차 궁금히 여기는 문제를 군사 전문가들이 그냥 넘길 리 없었다. 1935년 1월, 영국 항공부는 기상 연구소에 ‘라디오파 발신기로 비행기에 타격을 줄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 문의했다. 기상 연구소 직원 로버트 왓슨와트는 전파와 빛의 속성이 같다는 점에 착안하여 비행기에 타격은 못 주지만 그 위치와 이동 방향,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고 레이더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늘을 향해 쏘아 보낸 라디오 전파가 금속 물체에 닿아 반사되면, 그를 감지해 모니터에 표시하는 기계였다. 1935년 2월26일, 영국군은 레이더 실험에 착수했고, 실험이 성공하자 이 기계들을 대륙과 가까운 해안 지대에 설치했다. 1940년 8월13일, 영국을 향해 은밀히 출격했던 독일 공군기 수백대는 영국 상공에 도달하기도 전에 영국 공군의 기습을 받았다. 군사용 레이더의 위력이 처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전쟁 중에 처음 레이더가 배치되었다. 1952년 12월, 유엔 공군 대변인은 “공산군의 미그 제트기가 전선으로부터 약 40㎞ 남쪽에 있는 서울을 향해 접근하는 것을 레이더 장치로 확인하고 즉시 세이버 전투기 30대를 출격시켜 요격했다”고 브리핑했다. 1969년에는 관악산에 기상 관측 레이더가 설치되었다.

이해하기 위해 보는 것이 관찰, 통제하기 위해 보는 것이 감시다. 옛사람들은 하늘을 관찰하기만 했으나 레이더 이후 시대 사람들은 하늘마저 감시한다. 현대인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지는 줄어들고 통제하려는 욕망이 커진 인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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