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05 22:09
수정 : 2009.04.0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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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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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칼럼
북한의 어제 ‘광명성 2호 시험통신위성’ 발사를 앞두고 관련국들은 군사 대비 태세를 강화했다. 특히 일본은 동해에 정찰기와 이지스함·잠수함 등을 배치하는 등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기본적으로 군사 문제라기보다 정치 사안이다. 이는 북한의 의도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은 우선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까봐 우려한다. 또한 장거리 로켓 기술을 과시함으로써 대미 협상에서 몸값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못잖게 내부적 동기도 크다. 북한은 오는 9일 헌법상 최고 권력기구인 최고인민회의 12기 첫 회의를 열어 김정일 3기 체제를 공식 출범시킨다. 이번에 구성된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아주 중요하다.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 목표 연도로 잡은 2012년이 임기(5년) 중에 있고, 그때까지 권력 승계 문제가 구체화할 수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특별한 쇼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압박한다는 목표는 작아 보인다.
이번 발사의 성격에 대한 판단은 이후 사태 진행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것이다. 탑재물이 인공위성이 분명하고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성공 여부가 이번 발사의 본질적 부분은 아니다. 북한으로선 장거리 로켓 기술의 진전을 안팎에 과시한 것으로 충분하다. 북한이 2000년 미국 민주당 정부와 미사일 협상 타결 직전까지 갔을 때의 기술 수준은 지금보다 못했고, 핵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북한은 지금 새 민주당 정부에 대해 ‘협상을 하려면 당시와 얼마나 다른지 보시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번 발사가 도발임이 분명하더라도 과잉대응하거나 의미를 부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북한 행태를 보면 도발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이뤄진다. 하한선은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될 정도의 국제적 고립까지는 가지 않는 것이다. 그 기준은 중국이다. 북한은 중국마저 등을 돌리는 상황의 위험성을 잘 안다. 그러면서 북한은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끈질기게 유도한다. 도발의 이면에는 항상 미국과의 ‘빅딜’을 통해 상황을 바꾸려는 기대가 있다.
오바마 정부가 6자 회담 재개와 대북 직접 협상 강화를 정책 기조로 삼은 것은 옳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의 위성 발사가 임박한 지난 3일에도 “압박이 가장 생산적인 접근법은 아니며 유인책을 결합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여전히 대북정책에 힘이 실리지 않고 구체성이 부족한 데 있다. 협상을 하려면 큰 틀에서 주고받을 것에 대한 판단이 분명해야 하는데, 지금은 즉흥적 대응만이 있다. 정책 재검토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한 이유이지만,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 역시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도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 특사 파견 뜻을 밝힌 것이 그런 사례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등 강경책을 밀어붙인다. 이런 모순된 태도는 남북 관계를 밑바닥까지 악화시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 영향력을 더 떨어뜨릴 것이다.
인공위성 발사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풀기 위한 새로운 과정으로 들어가는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새 접근 틀을 짜서 밀고 나갈 주도권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6자 회담 참가국이 갖고 있다. 어떤 시작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몇 년 동안 한반도 정세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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