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23 20:58
수정 : 2009.05.2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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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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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칼럼
대통령은 특별한 사람이다. 권력의 정상에 오르려면 해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다. 모든 것을 다 갖췄더라도 때가 맞고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은 하늘이 택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통령이 자신들과 아주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 역시 인간일 뿐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 괴로워하고 실패에 눈물을 흘린다.
고뇌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적이 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로 보수세력으로부터 거세게 공격받던 2006년 8월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언론사의 외교안보 담당 논설위원 몇 명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모임을 가졌다. 그는 그때 “남은 기간 동안 개혁을 하기 어렵고 (기존 정책들을) 관리만 할 생각”이라며 “그렇다는 걸 국민에게 선언하는 게 어떤지 생각 중”이라고 했다. “정파적이지 않은 중립적 정책까지 거부당하는 것은 억울하다”고도 했다. 그는 스스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지, 아니면 하야 선언까지 포함해 실패를 공식화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도전과 좌절의 정치인이다. 도전은 때로 무모했고 좌절은 깊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칭은 이를 잘 표현한다. 그는 그러면서도 시대의 과제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려고 꾸준히 애썼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온몸을 던졌고, 90년대는 왜곡된 정치풍토를 바꾸려고 노력했으며, 대통령이 된 뒤에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의제를 적극적으로 관철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진심보다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더 부각돼 논란을 빚은 것은 그에게 큰 불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노무현 집권기’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새 집권세력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현실에서나 역사에서나 지워버리려 했고, 한때 그와 함께한 정치·사회세력도 그의 그림자가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까봐 거리를 뒀다. 봉하마을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마음은 한없이 착잡했을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언제 실패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볼 생각”이라고 썼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하므로, 자신의 실패 기록을 그 밑거름으로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길지 않은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의무이기도 하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이런 당연한 일마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이런 유서를 남긴 데는 전직 대통령의 품위 있는 삶은 고사하고 시민으로서 일상적 활동도 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그 고통과 좌절감의 상당 부분이 검찰을 비롯한 지금 집권세력에서 비롯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숨지기 직전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2006년 청와대 오찬 때도 “끊었던 담배를 최근 새로 피운다”고 했다. 그는 이제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새삼 시대의 냉혹함에 대한 섬뜩한 느낌이 차오른다. 부디 고향마을에서 편안하게 잠드소서.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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