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15 22:27
수정 : 2009.12.15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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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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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체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주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이 계기였다. 북한은 6자회담 복귀 조건으로 평화체제 협상을 요구해왔으며, 미국은 이를 최대한 받아들이려 한다. 6자회담이 재개되면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협상의 두 축이 될 듯한 구도다.
평화체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논의가 지체된 사안이다. 2005년 9·19공동성명은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명시했다.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도 “한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꿔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고 했다.
평화체제는 제도적 측면에서 평화구조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평화를 담보하는 데는 경제·사회 통합과 힘의 균형 등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지만, 제도는 기본적 틀이라는 점에서 핵심이 된다. 또한 평화체제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북한 핵 문제를 완전히 풀 수가 없다. 곧 한반도 평화체제는 한반도·동북아의 모든 안보 현안 해결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평화체제를 만들려면 지금의 비정상적인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여기에다 북한과 미국·일본과의 수교가 이뤄지고 구속력 있는 지역 다자안보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반도 평화체제의 단단한 틀이 짜인다. 당사국의 결단이 필요한 수교 문제를 떼놓으면, 평화협정 체결과 이에 대한 관련국의 보장, 동북아 안보기구 결성이 평화체제의 필수 부분인 셈이다. 평화협정 논의의 일차적 주체는 당연히 남북한이다. 미국·중국도 공동 주체가 될 수도 있지만, 남북이 합의한 평화협정을 미·중이 보장하는 형태가 정통성과 실효성 면에서 더 타당하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평화체제 주체로서 우리 위상을 확실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화체제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소극적이다.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은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남북이 평화체제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선언이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그런 결심(핵포기)을 보여준다면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할 것이다. … 한반도의 비핵화와 함께 남북간 재래식 무기의 감축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선핵폐기론에 대한 강조다.
정부는 여전히 선핵폐기론에 입각한 대북 압박에 정책의 초점을 둔다. 남북관계 역시 파행상태가 지속된다. 핵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이뤄질 핵폐기를 협상의 전제로 삼은 선핵폐기론은 갈수록 현실과 모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다른 나라들이 보기에는 우리 정부가 6자회담 재개를 늦추려는 것으로 비친다. 정부가 평화협정에 소극적인 배경에는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불안도 깔려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기우일 뿐이다. 평화협정에 주한미군 관련 내용을 포함시킬 이유도 없거니와 주한미군이 지금과 같은 역할을 영원히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도 현실적이지 않다.
정부가 정세 반전을 꾀하려고 북쪽과 비밀리에 접촉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기존 정책의 한계를 ‘원샷딜’로 돌파하려는 발상이다. 6자회담을 진전시키고 북한의 핵 폐기 결단을 앞당기려면, 이런 시도보다는 선핵폐기론을 폐기하고 평화체제 논의에 적극 나서는 것이 훨씬 당당하고 효과적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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