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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2 19:06 수정 : 2011.02.22 19:06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이명박 대통령 3년’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엄중하다. 민생경제 악화, 소통 부재, 고·소·영 인사, 인권 퇴행, 안보 불안 등은 이미 이 정권과 동의어가 됐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제역 대란에다 국정원의 무모하고 어설픈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까지, 이 정권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잇따른다. 대통령에게 너그러운 편인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 대통령이) 일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잘하고 있다’는 답을 훌쩍 넘어선 것은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엠비의 실패’다.

이런 와중에도 이명박 정권이 역사에 기여하는 게 있다면 자신이 잘못한 것, 거부한 것을 통해서다. 최근 본격적으로 불붙은 복지논쟁이 대표적이다. 복지 강화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역사적 당위성을 갖는다. 여기에는 보통사람들의 뼈저린 현실인식과 절절한 개혁 욕구가 담겨 있다. 폭발적이지는 않더라도 절실함과 강도로 보자면 1980년대 민주화 열기에 못잖다. 다수 국민의 공통 인식과 욕구는 결국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역사의 새 동력이 된다.

많은 이들은 지금 우리 사회를 격차사회, 불안사회, 위험사회, 절망사회로 인식한다. 열심히 일해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고 불평등·불균형은 더 심해진다. 하위 10%가 벌어들이는 소득은 전체 가구 소득의 0%대(1% 미만)로 추락했고, 15% 정도의 가구가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수입으로 산다. 지난 3년 동안 자영업자는 45만7000명이나 줄고 고용률(15살 이상 인구 중 취업자 비율)도 떨어졌다. 하지만 정부는 무심하다.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복지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34위에 머문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온 성장모델이 힘을 잃은 것은 당연하다. 513개 상장기업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도보다 각각 15.18%와 50.18%가 늘었으나 국내 소비는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가계부채는 급증한다. 경제주체 간 불균형이 구조화한 탓에, 수출·대기업 위주의 경제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성장만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기존 성장모델의 한계는 1990년대 말 아이엠에프 위기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그럼에도 이전의 관성이 유지되다가 옛 모델의 충실한 계승자인 현 정권의 실패를 보고서야 생각의 틀이 크게 바뀌고 있다.

복지 강화는 국민의 권리다. 모든 국민이 적절한 수준의 복지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사회가 충분히 뒷받침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모습이다. 나아가 복지 강화는 사회를 통합시키고 새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힘을 갖는다. 흔히 ‘함께 가야 멀리 간다’고 말하는데,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게 복지 강화다. 많은 전문가들도 성장 자체에 집중하지 말고 양극화를 해결해야 성장을 높일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우리 사회 최대 과제 가운데 하나인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서도 복지 강화는 최선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복지를 강화하지 않고 사회를 유지·발전시키기가 불가능하게 됐다는 점에서 복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재원 문제도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이유 가운데에는 기존 부자들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온갖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탈세까지 하는데 내가 왜 더 부담해야 하느냐’는 반감이다. 따라서 부자들이 세금을 잘 내도록 할 모델을 만드는 것이 재원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된다.

지금은 인식의 대전환기다. 그 한가운데에 복지가 있다. 국민들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정부가 물가를 잡고 경제 양극화를 완화하며 청년실업과 전세난 등을 해결해줄 것을 기대한다. 임계점에서 창의성이 나온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타이타닉호의 선장처럼 기존 체제와 함께 침몰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먼저 바뀌어야 한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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