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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20 19:20 수정 : 2012.08.20 19:20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최선의 방법은 원인을 알아 대처하는 것이요, 다음은 이익으로 이끄는 것이며, 그다음은 가르쳐 인도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억압적 수단으로) 단속해 가지런히 하는 것이고, 가장 하등의 방법은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동양문화권에서 가장 뛰어난 역사책 가운데 하나다. 그 속의 ‘화식열전’은 경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점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여기에 나오는 ‘정치의 원칙’은 지금의 눈으로 봐도 훌륭하다.

이명박 정권은 최악의 정치를 한다. 대통령이 국민과 끝까지 다투겠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새누리당 의원들도 반대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연임을 강행하진 않았을 것이다. 노조원에 대한 용역업체의 폭력을 경찰이 방조하고, 정권 차원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을 한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그 책임조차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억압적 수단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세상이 크게 뒤틀려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중국은 오랜 전국시대를 거쳐 통일국가가 들어섰으나 각종 제도와 사회규범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원인을 알아 대처하는 것’은 체제 개혁을 내포한다. 지구촌 차원에서 1930년대 이후 최대 경제위기가 진행중이고 나라 안에선 ‘87년 체제’가 한계를 드러낸 지금 모습과 닮은 점이 있다.

하지만 여야 대통령 후보 가운데 새 체제의 전망을 뚜렷하게 제시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는 넉달 앞으로 다가왔으나 각 후보가 집권하면 나라의 틀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국민은 알지 못한다. 최선의 정치와는 거리가 있는 모양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 등은 ‘이익으로 이끄는 것’에 해당한다. 차선의 방법이다. 유감스럽게 여기서도 후보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더 적극적이라고 생각하는 후보일수록 더 많이 노력해 쟁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가르쳐 인도하는 것’은 봉건사회의 발상이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소통’이 그것을 대신한다. 뚜렷한 전선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이번 대선에서 최대 변수가 될 수 있는 영역이다.

소통은 담론을 심화시켜 공감대를 넓히고 함께 주체가 되는 과정이다. 이는 흔히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열정’이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압승을 거둔 2008년 미국 대선,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2002년 대선 등에서 그랬다. 최근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를 당선시킨 프랑스 대선에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이번 대선에선 아직 새 열정이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

소통을 강화하려면 불확실한 상황에 스스로를 던져야 한다. 따라서 기존 지지 세력과의 관계가 흔들릴 수도 있다. 선두 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런 모험을 감수하기보다 방어적인 쪽을 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문재인·손학규·김두관 등 여러 민주당 후보들은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에는 전달력이 약해 소통 폭을 넓히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이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팔린 것은 소통의 기반이 크고 튼튼함을 보여준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젊은 세대 등 대중을 위한 멘토로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소통 전문가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태도가 분명하지 않다. 호랑이도 망설이면 벌레보다 과감하지 못하다고 했다. 때는 얻기 어렵고 잃기 쉬운 법이다.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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