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17 18:44
수정 : 2014.12.1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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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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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의 삶’에 대한 자각이 지금처럼 폭넓게 확산된 적이 있었을까 싶다. 계기는 한 드라마지만 10여년 전부터 퍼진 현상을 객관화했을 뿐이다. 젊은층은 우울한 현실을 확인하면서도 서로 쳐다보며 위안을 얻고, 이들의 선배·삼촌·부모뻘인 장년층은 끝없는 동굴 속을 함께 걷는 기분을 느끼며 애처로워한다. 최근 20대 후반의 한 젊은이가 “미생, ○○○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하기에 “나는 미사라네”라고 답한 적이 있다. ‘살려고 애쓰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처지’가 미생(未生)이라면 미사(未死)는 ‘살아 있긴 하지만 죽어가는 상태’다.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숨지고 ‘김정은 체제’가 시작된 지 17일로 3년이 됐다. 김일성 주석의 3년상이 끝난 1997년부터 본격적인 김정일 체제가 시작됐듯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나름대로 자신의 색깔을 강화해 나가려 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체제의 생존과 발전 여부를 가늠하려면 크게 네 분야를 살펴보면 된다. 정치, 경제, 대외관계·안보, 사회가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흔한 체제 붕괴 요인은 외세의 힘이지만, 내부 분열과 혼란 등 정치적 요인도 그에 못잖다. 경제력은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힘이고, 현재 삶의 질과 미래 준비에 필수인 사회적 요인(교육·환경·언론·문화·종교·안전 등)은 체제의 지속성을 담보한다.
지난 3년 동안 북한 경제는 나아졌다고 북한을 돌아본 모든 사람이 말한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240만명을 넘어섰으며 새로운 젊은 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건설사업이 추진되고 러시아와의 경협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시장경제 요소를 강화하는 내용의 6·28 조처(2012년) 및 5·30 조처(2014년)와 20여곳의 경제 특구·개발구 계획이 발표되는 등 개혁 노력도 꾸준하다. 하지만 앞날을 점치기에는 이르다. 무엇보다 투자 재원이 부족하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노동자·탈북자의 송금 등은 지속성이 떨어진다. 지금 상황은 오히려 제도 변경에 따른 일시적인 성과로 볼 수 있으며, 개혁의 청사진도 명확하지 않다. 사회적으로도 주민 전체의 삶의 질은 열악한 가운데 계층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
정치는 외견상 안정적이다. 유일영도체제를 강화했고 당 중심의 지배체제를 구축해 잠재적 대항세력이 생길 여지를 차단했다. 권력집단 안이나 지역·계층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부각되는 조짐도 없다. 아버지나 할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는 없지만 김정은 체제가 성립한 셈이다. 가장 큰 장벽은 대외관계다. 2013년 2월의 핵실험과 12월의 장성택 공개처형, 올 들어 부쩍 강해진 국제적 인권 압박 등을 거치면서 북한의 고립은 더 커졌다. 집권 3년이 될 때까지 중국과 정상회담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은 전례가 없다.
김정은 체제는 아직 미생이다. 공포에 기초한 정치적 안정은 대외 고립과 맞물리고 사회적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제에서 꾸준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정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길게 보면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미사 상태에 있다. 1990년대 이후 긴 정체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모양새다.
생각해보면 한반도 자체가 아직 미생이다. 내년이면 광복 70돌이 되지만 분단의 질곡은 모든 영역에서 남북을 옥죈다. 미생의 삶을 강요하는 가시적인 주체가 주변의 ‘갑’이듯이 한반도 주위에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며 ‘갑질’을 하려는 나라밖에 없다.
그래서 남북 관계가 중요하다. 남쪽은 김정은 체제를 ‘죽일 힘’은 없지만 ‘살릴 힘’은 갖고 있다. 남북 관계가 활성화하면 북-중 관계가 좋아지고 북-일,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남북 경협이 뚜렷해지면 국제사회도 동참한다. 남북 교류·협력 강화는 북쪽 사회의 삶의 질과 인권을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핵 문제를 풀고 통일 기반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반면 김정은 체제를 더 압박해 새 핵실험이 시도되면 관련국 모두 더 커진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한다. 미생과 미사 사이에 있는 것은 김정은 체제와 북한만이 아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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