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1.28 16:06 수정 : 2019.01.29 13:59

김지석
대기자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미국 안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본인 주장처럼 협상의 달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꽉 막혔던 대북 관계를 풀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잠재운 공의 많은 부분은 트럼프에게 돌아간다. 다른 대통령이었다면 기껏해야 지금까지 고위급 또는 실무급 회담을 한두 차례 여는 데 그쳤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겉모습만 번드레한 ‘봉’이라는 비판이다. 주로 반트럼프 인사들의 얘기다. 이들은 북한이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도 트럼프가 과대포장하거나 속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북한의 태도가 이전과 달라졌고 정상회담 합의를 실천하려 노력하는 점을 애써 무시한다. 이들에게는 비핵화 협상보다 트럼프의 실패가 더 중요해 보인다.

진실은 양쪽 다 아니다. 트럼프는 단기 이익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민족주의자다. 큰 전략이나 추상적인 원칙에는 약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을 쟁취하는 데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그는 짧은 시간에 미국 우선주의라는 원칙을 세계가 받아들이게 했고, 여러 무역협정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바꿨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우선주의를 인정하더라도 그의 정책이 정말 미국에 도움이 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역협상만 해도 그렇다. 미국이 큰 무역적자를 내고, 괜찮은 일자리가 줄고, 빈부 격차가 심해져 백인 중하층의 불만이 커진 주된 원인은 신자유주의 경제·산업구조와 취약한 분배·복지 정책에 있다. 다른 나라 탓으로 돌리며 단기 이익을 꾀해봐야 진통제 구실에 그친다. 오히려 꼭 필요한 내부 개혁을 늦춰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세계 경제도 이미 무역마찰의 악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주한미군 주둔비(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성격이 비슷하다. 미국은 지난해 9602억원이었던 한국의 분담금 액수를 크게 올리고 유효기간도 지금의 5년에서 1년으로 줄이려 한다. 주둔비를 거의 떠넘길 때까지 분담금을 해마다 크게 올리고, 협상 성과를 내년 말 대선에도 써먹겠다는 뜻이다. 이런 태도에는 미국이 ‘돈을 뜯겨가며’ 잘사는 한국을 지켜주고 있다는 트럼프의 인식이 깔렸다.

그런 인식이 바로 문제다.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 이상으로 미국의 세계 전략에 기여해왔다. 이는 냉전 종식 때까지 미국이 주둔비를 모두 부담하면서 분담금 얘기를 꺼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우리 소득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기본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쌍무적이다. 동맹의 기초가 된 한미상호방위조약도 두 나라가 ‘외부의 무력 공격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인정할 때 서로 협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둔비의 절반 정도인 지금의 분담금 수준은 동맹의 성격에 잘 들어맞는다. 만약 우리가 큰 몫을 댄다면 미군은 우리의 용병이라는 성격이 강해지며, 미군 배치·운용 권한도 우리가 갖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이 육해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안과 그 부근에 배치할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락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는 조약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 트럼프가 단기 이익에 매몰돼 동맹의 성격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골치 아프니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는 국내 일부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에서 단기 이익 추구와 중장기 전략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는 거의 유일한 분야가 비핵화 협상이다. 선 핵폐기에 치우쳤던 미국의 초기 입장은 단계별·동시적 접근이라는 현실성 있는 태도로 바뀌고 있다. 이는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상호 신뢰 형성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한 것과 상응한다. ‘모든 핵을 폐기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는 회의론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물론 구체적 합의에 이르는 길은 만만찮다. 미국이 2월 말로 예정된 2차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핵동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문제와 일부 제재 완화·해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스몰딜’을 추구하는 건지, 그 이상의 포괄적 합의를 꾀하는 건지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협상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지는 확실하다. 최근 스웨덴에서 미국·북한과 우리나라가 사실상 3자 협상을 한 것도 고무적이다. 우리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북-미 협상에 관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핵 문제를 풀고 동북아 평화·번영에 기여할 미국 대통령을 지지한다. 주둔비 문제에서도 트럼프가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쉽게 해법이 나올 수 있다.

jkim@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지석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