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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해 5월29일 경남 창원시 청사 회의실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한 뒤 입술을 꾹 다문 채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창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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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공략하는 변방 지향성
경남지사 된 뒤 빠르게 변신
진주의료원 강제 폐원 이어
이젠 아이들 밥상 걷어차려 해
보수 아이콘 집착하는 건 단견
제 색깔 되찾고 ‘증세’에 정치 명운 걸어야
김의겸의 우충좌돌 ④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필자에게 ‘고마운 분’이다. 20여년 전 검사와 기자로 만난 이후 항상 따뜻하게 대해줬다. 가끔 기사거리도 주고 밥도 사줬다. 내기 바둑을 두면 일부러 져주는 게 티가 나곤 했는데, 아마도 기자 돈을 차마 따먹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거라 짐작된다. 하지만 홍준표를 좋아한 건 그 때문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변방 정신’이었다.
몇년 전 그가 낸 책이 <변방>이었다. 딱 어울리는 제목이다. 그의 출신 성분은 변방 중에서도 변방이어서 오지에 가깝다. 낙동강변 하천 부지에 집을 짓고 살아 여름철 장마 때면 집을 떠내려 보내기 일쑤고, 양식이 없어 꼬박 3일 동안 굶은 적도 있다. 대학 때는 운동권이기도 했다. 글재주가 있어 여러차례 총학생회의 지하 유인물을 작성해주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멍석말이’도 당했다.
가난은 누군가에게 좌절을 안겨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야망을 가르친다. 물론 홍준표는 후자다. 그는 보리쌀 두 말을 들고 대구로, 1만4천원만 쥐고 서울로 공부하러 갔다. 어린 나이에도 ‘중심으로 나아가야 산다’는 생존본능을 깨친 것이다. 중앙정보부에서 죽도록 맞고는 풀려나자 마자 고시공부를 하러 절로 들어간다. ‘변방에서 중심으로’는 그가 도달해야 할 깃발이자, 그의 삶을 밀어붙이는 동력이다. 그리고 마침내 4선 국회의원, 집권여당 대표를 거쳐 현재 위치에 오른다.
사실 이런 류의 ‘가난한 놈이 머리 좋아 성공하는’ 출세기는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다. 특히 정치권에는 한때의 명성에 올라타고 국회에 들어왔다가 명멸한 인간 유형이 숱하다. 그러나 국회의원 시절 홍준표는 이미 중심에 서있음에도 여전히 변방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읽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정치적 체중을 얹을 줄 아는 듯했다. 정치 분야에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 정책 영역에서는 그랬다.
대표적인 게 ‘국적법 개정’으로, 이중국적 한국인을 향해 거침없이 저격을 가했다. 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으면 한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했고, 국적을 포기한 아이들은 한국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박탈하도록 했다. 변방에 사는 사람들의 가슴 속 맺힌 응어리를 들여다볼 줄 아는 것이다.
‘아파트 반값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 정책은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엉뚱한 얘기로 들렸으나, 강남 집값이 폭등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부유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더 내게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정책들과 관련해 “내가 보수적인 한나라당의 중진 의원이지만, 여전히 나를 버텨주는 힘은 가진 자, 힘있는 자에 대한 분노”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농협조합장의 부정에 억울하게 휘말려 경찰서로 잡혀가는 등 무시당하고 짓밟혔던 아픔이 여전히 그의 의식 밑바닥을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그가 강퍅하게 보이지 않았던 건 그의 걸쭉한 입담 때문이다. 그의 대학 시절 별명은 황당무계의 준말인 ‘무계’였다. 농담을 잘해서 MBC 코미디프로 PD가 코미디언 시험을 보라고 권했고, 실제로 응시하려고도 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 합격했으면 개그맨 김병조나 이용식씨 등과 동기였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가 복잡한 정치적, 정책적 현안을 단순화시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그의 변방 정신에서 나온 산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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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5일 진주의료원 노조 등이 경남도의회 들머리에서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 촉구 결의대회’를 여는 모습. 이들은 의회에 출석하는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면담을 요구했으나, 경찰이 도의회 들머리에서 홍 지사와의 접촉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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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홍준표는 경상남도로 내려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이 다니는 진주의료원 문을 닫게 하더니 이제는 아이들 무상급식마저 끊겠다고 나섰다. 홍준표는 요즘도 밥을 두 그릇이나 먹는다고 한다.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도시락을 못 싸가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웠던 한을 그렇게 푸는 것이다. 그런 그가 아이들 밥상을 엎겠다고 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여기에서 무상급식의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홍준표가 라디오 나와서 말한 “점심 굶는 학생 운운하시는데, 지금 130% 차상위계층, 또 어렵게 사는 학생들은 무상으로 국가에서 대주고 있습니다”는 말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는 후배가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는데 그의 말을 옮겨본다. “3년 전 무상급식이 실시되기 전에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밥값을 지원해줬다. 그런데 그게 아이들이 무상급식 신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또 실제로 가정이 어려운지를 알아보기 위해 교사들이 아이들 학부모한테 일일히 전화를 걸어 ‘돈이 없으신 게 맞나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새 학년 3월을 그렇게 보냈다. 학년 말에는 급식비 밀린 아이들한테 ‘돈 안내면 선생님이 진급 못한다’고 협박하며 독촉해야 한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는 얼마나 창피하고, 교사는 얼마나 고역이냐. 재벌 회장 아들한테 왜 공짜밥을 주느냐고들 하는데 아들한테는 공짜밥을 주고 그냥 회장 아버지한테는 세금을 더 걷으면 좋겠다.”
홍준표는 애들 밥값 아낀 돈으로 “소외계층, 가난한 학생들 교육비 보조 사업에 쓰겠다”고 말한다. 진주의료원 때도 비슷한 약속을 했다. 하지만 ‘빈말’이 되고 말았다. 진주의료원의 문을 닫고 나서 ‘서민 무상의료 대책’을 발표는 했으나 결국 ‘보건복지부와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실시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행보를 두고는 다들 ‘정치적 승부수’라고 한다.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보수 세력의 아이콘’이 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홍준표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연장선이다. 몸은 비록 정치적 변방인 경남에 있지만 중앙 정치무대에서 잊혀지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변방 출신 홍준표’답지 않다. 지금의 문제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누리과정과 무상급식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다. 마치 어린이집 아이들과 초중고 학생들 사이에 경쟁을 붙이는 꼴이다. 게다가 정부는 누리과정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니 반드시 지켜야 하고 무상급식은 진보교육감이 추진한 것이니 포기하라고 을러대고 있다. 그런 치졸한 싸움에 앞장서는 건 내가 아는 홍준표가 아니다. 검사 홍준표는 ‘잔챙이’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20여년 전 그는 “어차피 그들을 안 쳐도 내가 죽고, 쳐도 내가 죽을 바에는 내가 먼저 물어버리겠다”며 검찰 내부의 온갖 눈총과 견제에도 슬롯머신 대부, 6공화국의 2인자, 그리고 자신의 상사이자 차기 검찰총장 후보까지 모조리 구속시켰다. 그런 기백이 아직 살아있다면 애들 밥그릇을 빼앗을 게 아니라 예산을, 세금을 문제 삼아야 한다. 그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무상복지를 실시하는 북유럽 같은 경우에 담세율이 45~55%입니다”라고 말했듯이 담세율을 올리는 쪽에 정치적 명운을 거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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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는 ‘모래시계 검사’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 그런 칭송에 걸맞는 모습은 오간데없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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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홍준표는 ‘모래시계 검사’로 칭송받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쑥쓰럽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흥분해서 자기 자랑을 해댄 적이 있다. “우리 큰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누구를 존경하느냐’는 조사를 했는데, 내가 이순신 장군보다 높게 나왔다는 거야.” 아마도 가여운 모습만 보여준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은 아들과 그 또래로부터 칭송받는다는 게 그의 가슴을 부풀게 했나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기쁨을 다시 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밥그릇을 빼앗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법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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