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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15 16:29 수정 : 2014.12.11 10:54

한겨레신문 캡쳐

[뉴스AS]
한국은 ‘상속형 부의 축적’ 극심한 나라

‘1% 부유층에 전 세계 자산 48% 편중’

“세계 부유층의 1%가 세계의 자산 중 절반 가까이 갖고 있는 반면, 가난한 하위 50%는 세계 자산의 단 1%만 갖고 있다”는 대조를 담은 기사가 최근 국내 포털 헤드라인에 걸려 화제를 모았는데요. ( ▶ 관련 링크 )

부유층에게 부가 편중되는(소득 대비 자산비율 상승)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 현상이 경제가 침체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 등을 담은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의 연례 보고서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기사화(캡처 사진)한 것입니다.( ▶ 기사 원문보기 )

영국 가디언 캡쳐
사진 출처 : 크레디트스위스은행
이 기사는 세계 최고부자 85명이 전 세계 빈곤층 인구 35억명의 재산 총액 수준의 자산을 독점하고 있다는 구호단체 옥스팜의 기존 보고서와도 맞물려 세계적인 화제가 됐습니다.

자본주의에 내재된 “부의 불평등” 법칙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방한 이후, 이같은 부의 편중 현상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한국의 부의 불평등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한겨레>는 지난 8일 ‘상위 1%가 배당소득의 72% 가져갔다’는 단독 기사(김소연 김경락 기자, ▶ 관련 링크) 를 내보내 누리꾼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주식과 펀드 투자자가 500만명을 넘을 만큼 대중화됐지만, 상위 1%가 배당소득의 72%를 가져가고, 예금 이자소득의 45%를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소위 ‘불로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 자본소득인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의 100분위 자료가 공개된 것은 국내 최초입니다.

한겨레신문 캡쳐
보도한 김소연 기자는 “은행에 예금해 돈을 모아가며 이자를 받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자그마한 낙이다. 하지만 1000만원을 맡긴 사람은 100만원을 맡긴 사람보다 비율로 따져도 훨씬 더 많은 이자를 받는다. 그런 소득이 얼마나 쏠려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국세청은 지금까지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에 관련한 자료를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었습니다. 국세청은 매년 국정감사 등에서 근로소득 100분위(가장 돈을 많이 버는 상위 1%는 얼마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지) 등은 공개했지만, 불로소득인 금융소득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자료를 요청한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의 곽효준 비서관은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까지 거쳐야 했습니다. “국세청은 특정인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금융소득 백분위 자료를 지금까지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제 질의 및 유권해석 요청, 공문발송 등을 통해 국내 첫 공개된 자료입니다.” 곽 비서관의 말입니다.

 

근로소득은 그래도 일한 것에 대한 대가이지만, 금융소득은 노력을 통해서가 아닌 물려받은 돈이 돈을 버는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통계입니다. 또 근로소득 불평등보다도 소득 분배를 악화시키는 효과가 큽니다. 소득 분배 악화는 앞서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이 경고했듯 경기 침체의 위험 신호로도 여겨집니다. 열심히 일해도 부모 잘 만나 은수저 문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는 나라라면, 경제 활성화를 위한 동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세계적 화제가 된 <21세기 자본> 한국어본 간행과 맞물려 한국을 찾은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20일 오후 연세대 특강에서 이처럼 위험한 ‘부의 편중 현상’의 구체적인 특징으로 △저성장 기조 속 자본 축적 △수퍼 경영자들의 고액 연봉 △교육불평등 △민영화 현상 등을 꼽은 바 있습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1차 세계대전을 했던 이유는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21세기 자본>의 핵심은, 일해서 얻은 돈보다도 물려받은 돈이 계층을 결정하는 ‘세습자본주의’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미 가진 사람들만 더 부자가 되고 있다는 건데요. ‘자본소득비율’, 즉 소득 대비 자본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불평등 현상이 심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케티 교수는 “자본 축적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연금이나 부동산 등 자본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선진국이 상위 10%가 자본의 50%를 소유하고 있고, 미래에는 70%에 이를 수도 있다”, “자본소득의 불평등은 노동소득의 불평등보다 크다. 자본소득비율이 높으면 부의 편중이 생기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는 것입니다.( ▶ 관련 기사 )

 

특히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상속형 부의 축적이 심한 나라로 지목됩니다.

<조선일보>는 최근 나라별로 억만장자의 형태를 분석한 루치르 샤르마(모건스탠리 신흥시장 및 세계거시경제 담당 총괄 대표)의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기사화( ▶ 관련 링크 ) 했는데요, 거기서도 한국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처럼 억만장자 가운데 84%가 부모로부터 부를 물려받은 상속형”이라고 분석됐다고 합니다. 얼마 전 <티비조선>에서도 “증여로 추정되는 1억이 넘는 통장을 갖고 있는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가 859명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 ▶ 관련 링크 )

반면, 한국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재산을 축적했다는 ‘자수성가형’은 부자 중 16%에 불과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은 페이스북 창업 사례처럼 기술 혁신을 통한 창업으로 억만장자가 되는 특징도 관찰됐다고 합니다. 14일(현지시각) 빌 게이츠가 “피케티의 생각은 틀렸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런 비판 역시 이같은 ‘혁신기업’ 토양이 있는 미국적 현상에 기반한 것입니다. 게이츠는 “불안정, 인플레이션, 세금, 자선활동 및 소비 등을 통해 미국에서는 ‘물려받는 돈(old money)’이 사라진 지 오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좋은 자선활동이 사회에 혜택을 주고, 상속 재산(dynastic wealth)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는데요, 남다른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는 빌 게이츠 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네요.( ▶관련 링크 )

앞으로도 <한겨레>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돈이 돈을 버는’ 한국 경제의 한계에 주목하는 기사들을 계속해서 보도할 예정입니다. 김소연 기자는 “이번 공개한 자료만으로는 대표적 자본 소득 중 하나인 부동산 소득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점이 있다. 중국의 경우 부동산 소득이 부의 편중에 미치는 영향도 큰 것으로 최근 보도됐다”며 후속 취재를 예고했습니다. 누리꾼 여러분도 관련한 제보 및 아이디어가 있다면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에게 이메일을 보내 주십시오.

 

▷ 관련 기사 : [단독] 돈이 돈 불려줘 ‘부의 쏠림’ 고착화…“과세강화로 재분배를”

▷ 관련 기사 : [단독] 배당 많은 대기업 주식, 재벌가 손안에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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