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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0 17:18 수정 : 2014.12.11 11:02

[뉴스 AS] ‘일못유’ 운영자 여정훈씨 인터뷰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운영자 여정훈씨.
‘한겨레’ 보도 뒤 1133명의 새 조합원 가입
만든 계기 “일 한다는 것 같이 고민해보고자”
팟캐스트 ‘일 못하는 라디오’도 런칭 계획중

페이스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하 일못유) 페이지에 가입 신청 버튼을 눌렀다. (▶ ‘일못유’ 페이스북 바로가기) 가입 승인 메시지가 5분 만에 떴다. 아니,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라더니, 가입 신청을 하자마자 바로 수락하는 페이지 운영자 여정훈(30)씨는 알고 보면 부지런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 아닐까.

궁금함은 그렇게 시작됐다. 19일치 <한겨레> 기사 ‘‘회사에서 또 사고쳤어요 ㅠㅠ’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화제’(▶ 기사보기)가 나간 뒤 기자 외에도 1133명의 새로운 조합원들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입했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나 일을 못해요”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운영자 여씨는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생이다. 여씨는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못유를 만든 계기에 대해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자는 취지”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치열한 능력 중심 사회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 걸까. 그는 그 질문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측면이 있어요. 자기계발은 경쟁을 전제로 해요. 성경 요한복음에 ‘베데스다 연못’ 이야기가 있는데 1년에 한 번, 천사가 그 연못에 내려와요. 그때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하죠. 연못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고 해요.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 아닌 사회 구조에요.”

대학 시절 그는 스펙 쌓기 대신 통기타를 메고 농촌 봉사활동이나 선교 활동을 다녔다. 자연스럽게 사회가 원하는 스펙과 거리가 멀어졌다. 졸업 뒤 일하게 된 한 시민사회단체에서 그는 기획서 작성부터 예산과 결산 정리, 이른바 ‘높으신 분들’에 대한 예우 등 사무실 생활 거의 모든 부분에서 ‘모자란’ 자신을 발견했다. 일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반기를 들고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운영자 여정훈씨. 사진/김민의 페이스북.
“틀이 짜인 직장생활은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신학도여서 교회에 머물러 있을 것 같아요. 기독교적인 가치 중에 가장 늦게 온 사람에게도 같은 임금을 주는 게 있는데, 그런 가치가 교회를 통해 구현돼야죠.” (웃음)

그렇다면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능력을 타고나야 하는 걸까. 여씨는 ‘상사의 의중을 잘 읽어내는 능력’도 일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란 점을 강조했다.

“빠른 시간 내에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자들이죠. 특히 ‘언어화 되지 않은’ 일의 각본을 잘 읽어 내는 것도 일 잘하는 사람의 특징인데, 여기에는 상사의 의중을 잘 읽어내는 능력도 포함돼요. 대학 입시에서 요구되는 능력과 일치하는 것 같아요. 사회 전체가 특정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에요.”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캡쳐.
‘일못유’를 신인류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일 못하는 것은 금기였으니까, 일을 못하면 안 되는 거였죠. 전 이게 노동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기업이 사회 위에 군림하면서 사회화 과정 전체를 기업에 맞는 형태의 개인 만들어내기로 구축하는 과정 가운데 있는 것 같아요. 경영·경제학과의 비대화, 자기계발서 유행도 그 맥락에 있는 것 같아요.”

눈꺼풀이 무겁고, 몸이 찌뿌둥해 월요병이 정점에 이르는 20일 월요일 오후 3시 30분. 이 시간에도 ‘일못유’ 페이지에는 조합원들의 성토 글이 속속 게시되고 있다. 페이스북은 익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곳이 아닌데 ‘실패담’이 줄을 잇는다. 실수도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사무실에서 쿨하지 못해 미안한 조합원들은 자신의 하루를 늘어놓는다.

“안녕하세요. ‘일못테리안’의 신**입니다. 말로 들은 지시사항 수행 하러 가다가 ‘어? 머였더라’ 기억 안 나서 전화로 지시사항이 뭐였죠? 다시 물었던 경험 다들 있으시죠?”

사실 남의 실수담은 언제나 재미있다. 그러나 자기 실수를 허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일 못하는 기자 역시 스스로 “여기 구멍 한 명 추가요”라 자백하고 ‘일못유’ 조합원에게 지혜를 구했다. 조합원들의 구성은 꽤 다양하다. 학생, 직장인, 구직 희망자, 시민단체 활동가, 개발자 등 개성 넘치는 조합원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왜 ‘일못유’의 새내기 조합원이 됐을까? 조합원들은 실시간으로 ‘좋아요’로 화답하거나, 친절하게 댓글을 남겼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캡쳐.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캡쳐.
“처음에는 그룹 이름이 특이해서 가입을 했어요. 이 그룹에 남겨진 글을 보면, 제 실수와 잘못이 여기에서는 평범해 지더군요. 글이 재미있는 건 부록이고, 댓글의 기발함은 보너스! 공감대와 즐거움은 덤입니다”(포카**), “이름에서 이미 비장한 소속감을 느꼈습니다. 일을 못하는 걸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치부하는 이 사회에서 보호구역에 들어온 느낌이에요”(Sun-ah***), “능력 있는 사람, 일등만을 알아주는 경쟁 사회에서 나의 실수를 얘기하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편안한 곳을 만났습니다. 비난이나 무시가 아닌 따뜻한 마음들이 느껴지는 곳”(하정*), “일을 못 한다 보다는 못하는 사람을 품어주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박상은), “나 정상이구나. 평범하구나. 다행이다 하는”(SSeong Ch***).

‘일못유’ 조합원 성토대회라도 열리면, 1박 2일의 시간이 모자랄 듯하다. 어떤 사연에는 웃음이 나고,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뭔가 기대를 갖고 가입한 것은 아니지만, 순간 마음의 안정이 찾아 왔다. ‘휴! 밥벌이의 어려움이란 다 똑같구나.’ 모두 이렇게 견디고, 무뎌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애환 배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뭐였는지 여씨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다가 정류장을 지나친 이야기 아닌가 싶어요. 개인의 모자람과 사회적 피로감이 한 소재에 다 담겨 있잖아요."

그는 일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팟캐스트 ‘일 못하는 라디오(가칭)’ 런칭을 계획 중이다. 일하다 부당한 상황이 벌어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도 담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일 시키는 상사님(팀장, 과장, 부장 등)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완성되어 있는 사람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지 않습니다. 협력을 통해 일의 과정을 익히고,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 서로의 능력을 증진시켜 주는 것이 직장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 ‘일못유’의 신조어 따라잡기

1. 일못유 =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줄임말이다.
2. 심쿵 = 심장이 쿵쾅쿵쾅거린다는 뜻으로 대개 깜짝 놀랄만한 것을 보거나 외모가 훤칠한 사람을 보고 두근거릴 때 쓰는 단어다.
3. 노답 = 영어 “NO”와 국어의 “답” 이 결합된 말로 해결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하는 짓이 변변치않거나 정말 엉뚱하게 행동하는 경우를 뜻한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사진 여정훈씨의 친구들 형태씨, 김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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