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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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S]
도둑 때렸는데 뇌사…정당방위인가, 과잉방어인가?
재판부 “흉기 없었고 저항없이 도망…심하게 폭행”
누리꾼 “판사 너희 집에 도둑 들면 보고만 있을 건가”
정당방위(형법 21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거실에 침입한 절도범을 때려 1심에서 징역 1년6월형이 선고된 한 남성에 관한 기사(▶ 관련 링크 : http://www.ytn.co.kr/_mn/0115_201410240524510380)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아니 뜨겁다기보다는 이 기사를 계기로 판결을 선고한 판사나 절도범을 비난하는 반응이 지배적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테지요. 정당방위일 수 있는데 너무 가혹하게 처벌했다는 겁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누리꾼들은 “죄(절도와 가택 침입)를 지었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 죗값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말합니다. 비난의 밑바탕에 깔린 생각입니다. “내 집에 침입한 도둑을, 이미 그 자체로 절도죄를 저지른 그가, 나에게 어떤 피해를 끼칠지 모르는데, 그럼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이냐”는 항변이 많습니다. “판사 너희 집에 도둑놈이 들어왔다면 넌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냐”라는 반응도 나옵니다. 가해자나 범죄 혐의자에 대한 총기사고가 빈번한 미국 사례를 예로 들며 “한국은 도둑 강도를 모셔야 하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비꼰 반응들도 보이는군요. 우선 기사 내용을 좀 더 뜯어봤습니다. ‘20대 남성이 50대 절도범을 둔기 등으로 때려 50대 절도범이 뇌사상태에 이르게 했다. 법원은 정당방위가 아닌 지나친 폭행으로 판단하고 20대 남성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만으로 이 행위가 정당방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위의 형법 21조에서 보듯 ‘상당한 이유’에 대한 판단을 할 근거를 살피기엔 조금 부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결문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이 지난 8월13일에 내린 판결이었습니다. 재판부가 인정한 내용을 보면, 이 재판의 피고인인 강원도 원주에 사는 20대 최아무개씨는 지난 3월 새벽 3시께 귀가하다 거실 서랍장을 뒤지던 피해자이자 절도범인 50대 김아무개씨를 발견합니다. 최씨는 “당신 누구냐?”고 말한 뒤 주먹으로 김씨의 얼굴을 여러 차례 때려 넘어뜨렸습니다. 최씨는 넘어진 김씨가 도망가려고 하자 팔로 감싸고 있던 김씨의 뒤통수를 여러 번 차고 이어 빨래 건조대로 김씨의 등을 여러 차례 때렸습니다. 이어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김씨의 등을 여러 차례 때렸습니다. 이날 일로 김씨는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앞으로도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씨는 법정에서 ‘형법에 규정된 정당방위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정도가 초과된 정당방위 과정, 즉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형법은 “방위 행위가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해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과잉방위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당방위의 범위를 벗어났지만, 방위의 이유는 인정될 때 적용되는 법 조항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최씨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씨가 절도범을 제압하기 위해 김씨를 폭행했다고 하더라도 흉기 등을 전혀 소지하지 않고 아무런 저항없이 도망만 가려고 했던 김씨의 머리 부위를 발로 차는 등 장시간 심하게 때려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정당방위나 과잉방위 모두를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폭행의 정도가 심했고, 흉기도 없고 저항 의사도 없는 대상을 향한 일방적 폭행이었다는 판단입니다.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는 이유도 자세히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아무런 저항 없이 도망가려던 피해자의 머리 부위 등을 때려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는 피해자가 절도범이라는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비난 가능성이 작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당시 피해자 김씨의 보호자였던 피해자의 형은 피해자의 병원비(2000만원 이상) 등에 책임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피해자의 유족인 조카가 최씨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판단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피고인인 최씨 처지에선 위기의 상황에서 절도범인 김씨가 흉기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와 저항 의사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저항 능력을 상실한 남성의 머리를 발로 여러 차례 찼다는 점을 봤을 때 법원의 판결에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 판결은 김씨의 절도죄에 대한 판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심 선고 뒤 최씨는 항소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입니다. 2심 재판부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요? 만약 여러분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까요? 여전히 판사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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