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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9 15:18 수정 : 2014.11.13 16:15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 앞에서 직원들이 나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뉴스AS]
서울중앙지법, 증거조작 사건 주도한 국정원 직원에게
“국가과 국민 위해 봉사해왔다”며 집행유예…
국정원 지위 이용해 저지른 범죄, 국정원 직원이라며 형량 깎아

국정원 직원들이 직위를 이용해 멀쩡한 시민을 간첩으로 둔갑시킨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그들 대부분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이 제시한 집행유예의 핵심 근거는 ‘이들이 국정원 직원이기 때문’이랍니다. 법원의 이해하기 힘든 양형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김우규)는 29일 증거 조작을 주도한 혐의(모해증거 위조 등)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 4명과 이들에게 협조한 중국동포 2명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구속기소된 김보현 과장에겐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불구속 기소된 나머지 3명 중 2명은 집행유예, 1명은 실형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하지 않았습니다. ▶관련 기사 김 과장의 윗선인 이재윤 대공수사 차장은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방어권 보장 등을 이유로 법정구속을 면했습니다. 권세영 과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이인철 영사는 징역 1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이들은 여섯 차례나 증거를 조작해 사법 체계를 철저히 농락했습니다. 만약 간첩으로 몰린 피해자가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면 조작된 증거를 근거로 간첩죄의 법정 최고형인 사형 선고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권력기관이 국민을 죄인으로 만들고 이 과정에서 사법기관을 속인 사건입니다. 이 엽기적인 사건의 주동자들에게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김우수)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20년 이상을 국정원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국가안보 수호에 일익을 담당하는 등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왔다”는 점을 집행유예의 첫번째이자 공통된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그동안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도 뒤이어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재판부가 불리한 양형사유 즉, ‘피고인들의 죄는 이래서 나쁘다’며 제시한 근거를 보겠습니다. 재판부는 “이들이 국정원 직원으로 대공수사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어 더욱 엄격한 준법의식으로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와 증거수집 업무를 행해야 할 책무가 있다(그런데 그러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히 방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기대 및 신뢰를 훼손했고 공문서의 진실성에 관한 공공의 신용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습니다.

말이 돌고도는 느낌입니다. ‘국정원 직원으로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죄가 무겁다’고 했다가 ‘국정원 직원으로서 그동안 고생했기 때문에 형을 깎아준다’는 얘기입니다. 국정원 직원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저지른 범죄행위를 처벌하면서 국정원 직원이라는 근거를 들어 형을 깎아주고 있습니다. 기업 총수의 비리를 처벌하면서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며 형을 깎아주던 행태와 닮은 모습입니다. “법조인 생활을 오래했다며 깎아주고 기업 총수라 깎아주고 3선 의원이라며 깎아주는데 왜 농사를 오래 짓고 노동자로 성실히 살았다는 이유로는 깎아주지 않냐”고 했던 노회찬 전 의원의 일갈이 생각납니다.

법원 판결이 이해되지 않기는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몰렸던 유우성씨 만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유씨의 변호인단은 29일 판결이 나온 뒤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이라고 밝혔습니다.

변호인단은 “피고인들이 20년 이상 국정원에서 근무한 점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보았으나 최근 유우성 사건 이외에도 조작된 간첩사건이 밝혀지고 있다. 과거 국정원이 조작한 사건들이 밝혀지고 있는 마당에 피고인들이 과거에도 조작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지난 20년간 관행적으로 증거를 조작해 오던 습관으로 이 사건을 조작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피고인들을 감형해 주는 사유로 20년 동안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했다는 사유를 들고 있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협조한 중국동포 2명은 처음부터 구속기소됐고 법원도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들 중국동포의 양형사유에도 국정원 이인철 영사와 마찬가지로 “범행을 주도하지 아니한 점”이 제시됐지만 집행유예를 받은 이 영사와 달리 이들에겐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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