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5.07 17:38
수정 : 2015.05.0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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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를 찾은 시민이 과일과 채소 등 신선식품의 가격표를 살펴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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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S]
소비자물가지수, 다른 시선으로 분석해보니…
통계청은 매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합니다. 2015년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0.39%입니다. 1년 전과 비교해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5개월 동안 ‘전년 대비 0%대 물가상승률’이 이어지고 있다며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걱정하는 경제 전문가도 있습니다. 숫자만 봐서는 이런 걱정이 나올만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 연합인포맥스 기사 바로가기 : 4월 소비자물가 전년비 0.39%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물가가 안정됐다’는 이야기에 동의하시나요? <한겨레>는 그래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소비자물가지수를 분석했습니다. 최근 1년간 교통비나 여행비 등 소득 수준이 높은 계층이 주로 구매하는 품목 중심으로 물가가 내린 반면 채소류·집세 등 저소득 계층의 지출 비중이 큰 품목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많이 올랐다는 분석입니다.
▶ 관련 기사 : 디플레가 걱정? 전월세·채소·담배 등 ‘서민 물가’는 고공행진
‘뉴스 AS’에서는 이 기사보다 좀 더 세밀하게 항목별 물가를 분석하고, 인터랙티브 라이브 데이터 그래픽으로 항목별 물가를 한 눈에 견주어볼 수 있게 설명하려 합니다.
우선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지난 1년 하락 폭을 모두 놓고 볼 때, 물가를 안정시킨 1등 공신은 ‘세계적인 저유가 현상’입니다. 1년 새 난방용 등유의 가격은 26.3% 떨어졌고, 자동차용 LPG, 경유, 휘발유는 20% 가까이, 취사용 LPG와 도시가스도 15% 안팎으로 떨어졌습니다. 저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은 통계 분류는 ‘교통’과 ‘주택·수도·전기 및 연료’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각각 9.5%와 0.4%씩 지수가 내려갔습니다.
■ 자가용 몰아야 체감할 수 있는 ‘교통비 인하’
차를 자주 몰고 다니는 분들은 지난해에 견줘 크게 내린 기름값을 피부로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석유에서 비롯되는 가스나 전기로 굴러가는 대중교통 요금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전체 지표를 보면 ‘교통비가 크게 내려갔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자료에 의문부호를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유가에 따른 착시현상은 ‘주택·수도·전기 및 연료’ 분류에서도 나타납니다. 무주택자에게 부담을 주는 전셋값은 3.3%나 올랐고, 월세도 0.25% 올랐습니다. 하지만 난방비 부담이 줄어든 까닭에 전체 지수는 0.4% 하락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이 분야 물가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실과는 차이가 있는 겁니다.
지난 1년 석유 관련 품목이 낮춰놓은 소비자물가의 상당 부분은 ‘담배’가 상쇄했습니다. 국산 담배의 가격은 83.7%, 수입 담배는 66.7% 올랐습니다.
■ 물가는 안정됐다는데, 왜 장바구니는 가벼워질까
지난해 4월과 비교해 전 품목 중 가격이 가장 크게 떨어진 품목은 ‘수박’입니다. 무려 38.2%나 떨어졌습니다. 4월에 수확되지 않을 것 같은 복숭아, 포도, 감, 귤, 배의 가격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비닐하우스 재배와 냉장보관, 장거리 운송 기술이 발전했다 하지만 ‘제철을 벗어난 과일’은 소비의 대세와 동떨어진 ‘기호품’ 성격이 강합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졌다 해도 여전히 가격 자체는 비싼 과일이기 때문에 선뜻 장바구니에 담기 어렵기도 합니다.
반면 밥상에서 거의 매일 접하는 채소 가격은 높은 폭으로 뛰었습니다. 400여 개가 넘는 전체 품목 중 담배 다음으로 3위를 차지한 양배추의 가격은 지난해에 견줘 40.9%나 올랐습니다. 배추, 파, 부추의 가격도 30%가 넘게 올랐고, 감자, 시금치, 고구마, 무, 미나리, 마늘 등의 가격도 20% 안팎으로 뛰었습니다. 1년 동안 석유 관련 품목들이 낮춰놓은 물가를 담배와 찬거리 채소가 높여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5일치 보도에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만, 지난해 4월에 견줘 물가지수가 10%p 이상 오르거나 떨어진 품목 중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11.6% 내려간 국제항공료와 10.7% 오른 학교 급식비입니다. 항공료가 내리면 누가 좋고, 급식비가 오르면 누가 부담스러울까요.
■ 도시가스 요금 내린 ‘새줌마’? 글쎄…
얼마 전 국회의원 재보선을 앞두고 여러 곳에 ‘생활비 줄이는 새줌마 / 도시가스 요금을 10.3% 인하합니다’ 문구를 담은 빨간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새누리당의 정책 홍보 현수막입니다. 4월 도시가스요금은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14.0% 내렸습니다.
당정의 도시가스 요금 인하 결정이 서민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국제유가 하락이라는 거대한 외생변수 없이 정부와 여당의 정치력만으로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유가가 오르고 수출길이 막히는 위기 상황에서도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진짜 정치’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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