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택배 거부’ 사태, 총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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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진 ‘택배반송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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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차량 진입 금지로 택배사들이 배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3일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진 ‘택배 반송 스티커’에 쓰인 글입니다. “걸어서 배송하라는 아파트 쪽 입장에 해결 방법이 없어 반송조치한다”며 “CJ대한통운, 한진택배, 현대택배, 로젠택배로 도착하는 상품은 전량 반송 조치된다”는 내용입니다.
왜 아파트에 택배 차량 진입이 안 된다는 걸까요? <한겨레>가 뉴스AS에서 사건의 앞뒤를 짚어봤습니다.
■ 온라인 달군 ‘아파트 갑질’
SNS와 커뮤니티에서 ‘택배반송 스티커’가 논란이 되자 누리꾼들은 가장 먼저 해당 아파트가 어디인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문제의 아파트는 어디일까요? 누리꾼들은 검색 등을 통해 아파트 입주자협의회와 택배업체 간에 비슷한 갈등을 빚은 적 있는 수원의 ㅅ아파트, 울산의 ㅎ아파트 커뮤니티 사이트의 글들을 갈무리해 퍼 나르며 이 아파트들을 당사자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일부 뉴스에선 3500세대가 거주하는 수원의 ㅅ아파트라고 보도했는데요. ㅅ아파트 쪽에서는 “(뉴스에 나온) 택배 반송 스티커는 우리 아파트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부인하고 있습니다. ㅅ아파트 관리사무소 쪽은 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택배차를 포함해 모든 차량을 지하(주차장)로 유도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택배차라고 해서 진입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고, 짐칸이 낮은 차량은 주차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또 택배 차가 화물을 내릴 수 있는 무인택배함을 따로 운영하고 있어 배송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문제의 스티커에 포함된 한 국내 택배사도 “현재 ㅅ아파트에선 반송 없이 배송이 이뤄지는 중”이라고 5일 밝혀왔습니다. “논란이 일면서 현재 배송 분쟁 지역들을 확인중이지만, 비슷한 일들이 요 몇 년 사이 울산 등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 와 수년 전 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본사 차원이 아니라 (지국이나 대리점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스티커를 제작했을 수도 있다는 추정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마디로 이 ‘스티커’가 어느 아파트 때문에 만들어졌는지 구체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으나, 비슷한 일들은 수년 전부터 우후죽순 벌어져 왔다는 얘기입니다.
■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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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한 ‘차 없는 아파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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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갈등은 지상에 차량 통행을 막는 대단지 아파트들이 속속 지어지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라고 해서 보행자 안전 및 조경을 강조하는 설계가 최근 몇 년간 고급형 아파트 단지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상은 모두 공원처럼 꾸미고, 차들은 지하도로 및 지하주차장을 통해서만 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건축업계에서는 “조경 면적을 늘리는 형태의 설계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분양가 자율화 이후 아파트 고급화의 일환으로 시작된 지 대략 10년쯤 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합니다.
아파트 쪽은 모든 차량이 지하통로 및 주차장으로 통행하고 있어, 택배 차량만 예외가 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단지 내부가 공원식으로 조경이 돼 있어 차가 다니기 적합하지 않다는 겁니다. 일부 아파트의 경우엔 아예 차량 통행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리석 등의 자재로 보도를 포장해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분양 때 약속과 다르다’는 입주민들의 항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차가 없는 아파트’라고 해서 자녀들이 안심하고 지상에서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하고 입주했는데, 택배 차량이 예외가 되어 자주 드나들면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택배 차량은 수시로 드나드는데다, 빠르게 운행하는 경향이 있다는 불만도 나옵니다.
문제는 지하주차장으로 차량이 통행하게 설계돼 있지만, 대부분 아파트에서 지하주차장의 높이가 현재 쓰이는 택배 차량에 견줘 낮다는 데서 발생합니다. 국토교통부의 법령에 따르면, 주거시설인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층높이 규격은 2.3m입니다. 하지만 현재 택배 차량으로 상용화된, 소위 ‘탑차’라고 불리는 소형 화물 차량(1.1t~1.5t 트럭)은 대략 2.5m~3m 높이의 짐칸을 가진 모델입니다. 운전석 지붕보다 짐칸이 더 높기 때문에 ‘하이탑’이라 불리는데, 대부분의 택배 차량이 이 형태여서 그냥 ‘탑차’라고 부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대형마트의 가정 배송 차량이 대개 3m 높이입니다. 택배사 관계자는 “화물차량 중 운전석 지붕과 짐칸의 높이가 같은(2.2m 내외) 기본형이 있지만, 택배차는 거의 ‘탑차’를 쓴다고 보면 된다. 보다 많은 물품을 실을 수 있어 택배 사업자가 선호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 택배 차량은 비상도로 쓰면 안 되나
물론 ‘차 없는 아파트’라고 해서 아예 지상에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방법 등에 따라 아파트로 접근할 수 있는 비상도로를 지상에 두게 돼 있습니다. 화재 등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소방차 등이 이곳으로 통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택배를 포함한 일반 외부차량의 비상도로 진입 허가는 관리사무소의 재량에 맡겨져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서는 “아파트 내 도로와 주차장은 근거법상 원칙적으로는 사유지로, 입주민 간 협의가 있다면 일반 차량의 통행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일부 누리꾼들이 지적하는 대로, 택배 차량을 고려하지 않고 아파트를 지은 시공사의 탓일까요? 한 누리꾼은 논란이 된 글에 “우리 아파트의 경우 분양 단계부터 지하주차장의 층높이를 높이는 방안을 논의했고, 건설 단계에서 30㎝ 정도 높이는 데 합의해 택배 차량 진입에 문제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설계 단계의 문제”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건축사협회에서는 “택배 차량 통행 여부는 아파트의 관리 운용에 달린 문제”라고 말합니다. “설계 단계에서는 소방차는 물론, 고가 사다리가 달린 이삿짐차, 쓰레기 분리수거차, 화물차 등이 당연히 지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전제한다. 여러 차량 가운데 택배 차량의 접근만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아 보인다”는 겁니다.
물론 설계 단계에서 합의가 있다면 지하주차장의 층높이를 높이는 방향의 설계가 가능하겠지만, 현실적 한계가 많다고도 했습니다. “입주민 합의가 있다면 설계 단계에서 지하주차장 층높이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 짓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분양 단가가 큰 단위로 상승할 것이다. 소형화물차 진입 문제 하나 때문에 관련 법규를 바꾸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을까. 건축 제한 법령은 안전과 관련된 측면에서 최소한도로 이뤄지는 것이 맞다고 본다.” 대한건축사협회의 얘깁니다.
■ 택배 배달 거부, 법적 문제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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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택배기사가 아파트에서 물건을 부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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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말, 경기 남양주시의 ㅈ아파트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지하주차장 높이 때문에 정문에서 내려 손수레를 끌고 각 가정으로 배달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택배 기사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결국 7개 업체에서 공동으로 배송을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입주가 시작된 지 6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이 아파트 입주자협의회 쪽에서는 “좀 더 작은 차량을 이용하면 지하주차장을 통해 어디든 배달이 가능하다. 우체국은 계속 배달해 주고 있는데 다른 업체들은 왜 안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시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도보 배송은 어렵다’는 이유로 택배 회사들이 동시에 배송을 거부한다면, 법적 문제는 없는 걸까요? 공정거래위원회의 카르텔조사과에 물어보니 “아직까지 해당 문제로 인한 담합 조사 민원이 들어온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공정위 담당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만약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 진입을 제한하는 경우라면, 택배 업체 쪽에도 배송이 어렵다고 판단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섣불리 (택배 업체들의 부당한 담합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공정위가 제시한 ‘택배 표준약관’(2008년 개정안)을 보면 △운송장에 필요한 내용을 기재하지 않은 경우 △운송물의 크기나 무게가 사전 규약을 초과하거나, 물품 가액이 3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인도예정일(시)에 따른 운송이 불가능하거나 △기타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불가능한 경우 등에 대해서는 택배업체가 운송물의 수탁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 해결책은 없나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여러 아파트들은 택배사와의 협의를 통해 세 가지 정도의 협의점을 찾았다고 합니다. △무인 택배함 시설 설치 △유인 택배 집하장 설치 △택배 차량을 높이가 낮은 차량으로 바꾸기 등입니다.
무인 택배함이나 택배 집하장 등의 시설을 만들 경우, 택배사가 아파트의 특정 장소에 택배를 내려 두면 주민들이 직접 물건을 찾아가게 됩니다. 다양한 크기별 택배함이 있고, 기사가 물건을 넣으면 따로 전화 연락을 하지 않아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고객의 스마트폰에 통보가 갑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부피가 지나치게 큰 물건 등은 배송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택배함에서 집까지는 고객들이 직접 물건을 운반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부 아파트는 따로 관리하는 사람을 고용해 물건을 한 장소에 모아두고, 원하는 개별 가정에는 배송을 해주기도 합니다. 당연히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2012년 비슷한 갈등을 겪은 서울 송파구의 ㄹ아파트는 초기에 유인 택배 집하장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관리와 운영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냉동식품이나 냉장식품의 경우 보관과 배송을 두고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잦았다고 합니다. 결국 ㄹ아파트에서는 유인 택배 집하장을 포기하고, 택배사가 소형 택배차량을 사용해 지하주차장에 진입하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택배사가 소형 택배차량을 사용할 경우, 차량 교체 부담이 택배 기사들에게 떠넘겨질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택배 기사가 택배업체에 직고용된 형태였다면, 짐칸이 낮은 소형차량을 도입할 책임은 택배 기사 개인이 아닌 회사에서 지게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택배 기사들은 직접 차량을 구입하고 세금이나 보험도 직접 지불하며, 택배회사와 계약해 배달 건당 ‘수수료’를 받는 개인 사업자입니다. 소형 차량으로 교체할 경우 비용 문제도 있거니와,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짐의 양도 줄어들게 됩니다. 택배 한 건당 800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 택배 기사들에게 한 번 이동에 얼마나 더 많은 택배를 실을 수 있으냐 여부는 중요한 일입니다.
결국 아파트 주민들이 택배 차량의 진입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2010년 갈등을 빚었던 남양주 ㅈ아파트의 경우, 결국 지상에 택배 차량의 진입을 허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ㅈ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입주 초기 입주자 협의회에서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대부분 주민들이 편리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 택배업의 열악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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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은 지난 2013년 5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생존권 사수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회사 쪽에 사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촉구했다. 택배 노동자들이 도로 옆에 빼곡히 주차된 택배 차량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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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빈번했던 문제가 이번에 공론화되면서, 택배사에서도 대책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택배사 관계자는 “비슷한 갈등이 일어날 경우 택배사에서 영업지점 등을 통해 최대한 주민들과 협의를 한다. 특정 장소에 물건을 내려놓기도 하고, 아파트가 일정 시간대만 택배 차량에 문을 열어주는 방식도 있다. 둘 다 어려울 경우엔 짐칸이 낮은 소형 차량을 이용해 지하주차장에 진입하기도 하는데, 그러려면 택배사가 해당 아파트 단지로만 가는 짐칸이 낮은 소형 차량을 따로 배정해야 한다. (계약한 차량) 10대 중 8~9대꼴로 ‘탑차’를 쓰고 있어 현실적으로 도입이 쉽지는 않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간혹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생깁니다. 이 관계자는 “택배 차량 금지를 결정하려면 입주민 과반수가 동의해야 한다. 다행히 대부분은 택배를 받을 수 있게끔 결론이 나는 편이다. 그러나 간혹 모든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경우엔 정문에서 손수레를 끌고 배송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실제로 몇몇 아파트 단지에서 손수레 배송이 이뤄지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형태의 아파트 단지가 생길 때마다 이같은 갈등은 반복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입을 모아 아파트의 ‘갑질’을 비판하고, 택배 기사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비자들이 택배 기사들이 처한 열악한 택배업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택배 기사는 본인의 화물차나 임대한 화물차로 택배 일을 의뢰받는 ‘지입 기사’입니다. 회사에 직접 고용돼 정해진 월급을 받는 형태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서 택배회사와 계약을 한 뒤 배송 건당 수수료를 받아서 소득을 내는 구조입니다. 기름값, 보험료, 수리비 등 차에 드는 운영 비용은 택배 회사가 아니라 고스란히 기사의 몫입니다. 그런데 택배회사가 분배해 주는 배송 수수료는 앞서 말씀드렸듯 건당 800원꼴에 불과합니다. 2500원의 ‘저렴한 택배 요금’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수익을 내려면 야간 배송도 마다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택배회사는 ‘지입 차량’과의 계약을 통해 차량 구입비와 운용 및 폐기 비용을 떠넘기는 셈입니다. 배송 책임도 기사가 집니다. 배송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매겨지는 벌금(페널티)이나 물건을 분실하기라도 하면 발생하는 보상책임이 택배 기사에게 전가되는 구조는 고질적인 문제로 꼽힙니다. 당장 하루 할당량을 배송할 ‘시간’도 부족한데, 차량 출입까지 어렵다면 ‘배송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합니다. 2500원 요금 속에 숨겨진 땀방울,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걸까요?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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