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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14일째를 맞은 지난해 4월29일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에서 시신 인양 작업을 마친 잠수부들이 언딘 소유의 바지선 리베로에 오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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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언딘’ 해경간부 특혜사건 대법서 “관할위반해 잘못 기소” 판결
검 “형식논리로 관할 정할 게 아니라 실질 봐야 한다” 항변
대법원 “피고인 출석하기 좋은 곳서 재판은 방어권 차원서 필요”
지난 25일 검찰이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 구조업체 ‘언딘’에 특혜를 준 혐의로 해양경찰청 간부들을 기소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관할을 위반해 잘못 기소했다고 판결한 기사(
▶바로가기)를 보도해드렸습니다.
검찰이 관할 문제로 3심까지 상소해 기소한 지 1년이 지나서 다시 법원을 배당하게 된 상황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도 “검찰이 시간을 지체해 3심까지 간 것은 기소권 남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기사가 나간 다음날 여환섭 대검찰청 대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여 대변인의 설명을 들어보니 검찰이 3심까지 재판 관할을 두고 다툰 것이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여 대변인의 설명은 3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세월호 사건 재판 대부분을 광주지법에서 했다. 복잡하고 거대한 세월호 사건을 전반적으로 아는 광주지법에서 재판해야 한다.
둘째, 광주지법으로 나가던 증인들이 해남이나 인천으로 나가면 불편함이 크다.
셋째, 광주지법과 광주지검이 해남지원과 해남지청보다 규모가 더 크다. 해남지청과 해남지원은 각각 판사·검사가 2명씩밖에 안 돼 세월호와 같은 큰 사건은 재판과 수사를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
여 대변인은 “형식 논리적으로 관할을 정할 것이 아니라 실질을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의 말이 맞다면 왜 대법원까지 3번의 재판에서 연거푸 졌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검찰의 설명에 대해 대법원 쪽의 반박을 들어봤습니다. 먼저 대법원은 어떤 곳에서 재판을 받을지는 ‘피고인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재판 관할은 범죄지(범죄가 일어난 장소) 주변이나 피고인의 주소지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재상 교수가 쓴 <형사소송법>에는 법원의 관할을 정하는 데 두가지 기준이 있다고 설명돼 있습니다. ‘기술적인 필요’와 ‘피고인의 방어권’입니다. 재판을 심리하기 편한 곳이나 사건을 능률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법원으로 관할을 정하는 것은 ‘기술적인 필요’ 측면에서 필요한 일입니다. 검찰에서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피고인이 자신이 출석하기 좋은 곳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필요합니다. 기술적 필요보다는 피고인의 권리가 앞선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입니다. 김대환 대법원 홍보심의관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선 아무리 혐의가 짙은 피고인이라도 변호사 접견권이나 재판받을 법원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해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 주장 첫째와 둘째에 대해, 대법원에선 인천지법에서 이미 똑같은 혐의로 기소된 해경 간부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재판의 효율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애초에 최상환 전 해경 차장은 지난해 10월 해경 수색과장 박아무개 총경과 재난대비계 나아무개 경감과 함께 광주지법으로 기소됐지만, 최 전 차장은 관할 위반이 아닌 재판 이송을 신청해 인천지법에서 재판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인천지법에 계류중인 최 전 차장 사건은 지난 4월 1차 공판준비기일만 이뤄진 상태입니다. 박 총경과 나 경감의 관할 위반 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보고 나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었습니다. 인천지법은 대법원에서 박 총경과 나 경감의 재판이 관할 위반이라고 확정 판결할 경우, 이 두 사람과 최 전 차장의 재판을 인천지법에서 함께 진행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또 검찰은 광주지검 해남지청과 광주지원 해남지원이 규모가 작아서 제대로 수사와 재판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세월호 관련 재판 중에선 규모가 작은 목포지원에서 진행한 사례도 있습니다. 세월호 증축을 인가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인천항만청 전현직 공무원들과 뇌물을 준 청해진해운 대표에 대한 재판은 목포지원 형사1부에서 진행했습니다. 목포지원은 지난해 12월 청해진해운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박아무개 전 인천항만청 선원해사안전과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는 등의 판결을 했습니다.
김대현 대법원 홍보심의관은 “검찰이 재판의 효율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1년 동안 재판 관할 문제로 소송을 끈 것은 더욱 효율성을 해친 것이 아닌가”라면서 “관할 위반 재판 1심에서 졌다면 항소를 포기하고 해남지원이나 인천지법에서 소송을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리해본다면, 검찰 말대로 주요 세월호 재판이 이뤄진 광주지법에서 재판이 진행되면 효율성 측면에서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재판 받을 법원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피고인이 어떤 의도에서든 관할 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면 검찰이 이기기는 어려워진 것입니다. 게다가 인천지법이나 해남지원에서 재판을 하는 것도 관련 재판 등을 봤을 때 완전히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관할 위반 여부를 따지는 재판을 3심까지 하느라 1년동안 본안 사건 재판을 하지 못하는 것보단, 1심에서 패소했을 때 관할 위반 재판은 포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게 법원 쪽의 생각입니다.
이 문제를 다루다 보니 다른 의문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럼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이 1심부터 범죄지 관할이 아닌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은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검찰은 애초에 이 선장 등 구속 피의자가 수감돼 있는 목포를 관할하는 광주지법 목포지원에 기소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목포지원은 재판부가 한 곳뿐이고 가장 큰 재판정도 방청석이 63석에 불과했습니다. 생중계가 이뤄질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쏠린 재판이기 때문에 검찰은 인력이 많은 광주지법에 기소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만약 이준석 선장 등 피고인 쪽이 재판정에서 진술을 하기 전에 재판 관할 위반이라며 다른 법원에서 재판을 해달라고 신청했다면 관할을 따지느라 재판이 늦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선장은 재판 관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진술을 시작했기 때문에 관할권 문제가 사라진 것(관할권 결여의 치유)입니다. 이 선장 등 피고인들도 재판 관할 같은 사소한 문제로 재판을 연기하다가는 국민 감정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목포지원의 재판 관할을 두고 흥미로운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요. 검찰이 이 선장 등의 재판이 목포지원에서 이뤄지는 걸 원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재판정의 규모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목포지원의 유일한 형사합의부를 담당하는 ㅈ부장판사의 이력도 검찰에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ㅈ부장판사는 지난 2010년 ‘남녘 통일 애국열사 추모제’에 학생들을 데리고 참가하고, 이적 표현물을 소지·전파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전교조 소속 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보수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바 있습니다.
법원의 관할 문제는 피고인의 권리부터 재판의 중요도, 재판장의 성향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관할 위반 판결은 이 문제가 재판에서 중요하고도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켜준 판결이었습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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