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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1 11:58 수정 : 2016.05.11 13:57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노동자 실명 및 중추신경계 장해를 일으킨 해당 업체의 작업장 모습. 노동건강연대 제공

[뉴스AS]
메탄올 급성중독에 시력 잃고 고통받는 파견노동자들 이야기
옥시 사태와 너무도 닮은 부천 메탄올 사건의 진상과 그 이후

기체 상태의 독성 물질을 코로 마셨습니다. 독성 물질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날 그렇게 사람의 폐에 도달했습니다. 그 일이 벌어진 곳은 달나라도 아니고 상당수 사람들이 매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익숙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다 치명적인 건강 피해를 입었습니다. 2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과 비슷하지요? 이 사건은 지난 1월 경기 부천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다 다량의 메탄올 증기를 마신 뒤 시력을 잃어버리고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얘기입니다. 메탄올 사고 당시 많은 산업의학 전문가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사건을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반면 피해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고 그 이후 한국 사회는 무엇이 바뀌었는지 뉴스AS가 전해드립니다.

1. 사건의 시작…메탄올 급성중독

사건이 일어난 건 지난 1월입니다. 경기 부천에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는 3차 하청 ㅇ업체와 ㄷ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피해자입니다. 2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ㅇ업체에서 넉 달째 파견 노동자로 일하던 29살의 여성 노동자한테 첫 신호가 찾아왔습니다. 야간조이던 이 노동자는 1월15일 밤 출근 전 심한 구토 증세로 병원에 들렀다 공장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 다시 병원에 들른 뒤 공장에 돌아와 근무를 계속 했습니다. 다음날인 16일 오전 8시45분께 여성 노동자의 시야가 흐려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낮 동안 잠을 자고 일어나도 차도가 없자 대형병원인 서울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김현주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직업병을 의심하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습니다. 고용부가 현장을 조사한 결과 메탄올 급성중독에 의한 사고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29살 동갑내기 남성 노동자와 ㄷ업체에서 일하던 25살 남성 노동자도 같은 증상으로 시력을 거의 잃거나 아예 실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모두 파견 노동자였습니다.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노동자 실명 및 중추신경계 장해를 일으킨 해당 업체의 작업장 모습. 노동건강연대 제공
2. 노동자들은 어쩌다 메탄올을 흡입했나

ㅇ업체와 ㄷ업체는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의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작은 금속 부품을 가공해 납품하는 영세 업체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금형에서 찍어낸 부품에 구멍을 뚫는 등 정밀 가공을 하는 곳입니다. 업계에선 시엔시(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라고 부릅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금속 도구를 이용해 금속 재료에 구멍을 뚫는 등 가공을 하는 과정에선 높은 열이 발생합니다.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금속 재료의 성질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냉각액을 동시에 뿌려 식혀줘야 합니다. 업계에서 주로 쓰는 제품은 에탄올과 메탄올인데, ㄷ업체는 메탄올을 썼습니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메탄올이 분사되는 기계 바로 옆에서 작업이 끝난 금속 부품의 불량을 검사하거나 강한 바람이 분출되는 에어건을 이용해 메탄올을 날려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환기시설도 없는 공장에서 마스크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몇 달 동안 일하는 과정에서 차츰 메탄올에 중독된 것입니다.

 

3. 에탄올 아닌 ‘유해한’ 메탄올 쓴 이유는

에탄올은 그 자체로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마시는 술의 주성분도 에탄올이지요. 대개 맥주는 10% 미만, 중국 음식점 등에서 마시는 독주의 경우는 성분의 50% 안팎이 에탄올입니다. 반면 메탄올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다량 흡입하게 되면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치명적 손상을 끼칩니다. 그럼에도 업체들이 에탄올을 쓰지 않고 메탄올을 쓰는 이유는 값이 싸기 때문입니다. 메탄올은 1kg에 500원 정도인 반면, 에탄올은 1200원가량이라고 합니다. 노동자의 건강보단 이윤 창출에 눈이 먼 기업들이 과감하게 메탄올을 쓰는 까닭입니다. 고용부가 2014년 작업환경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작업 중 메탄올을 쓰는 국내 공장은 310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전국의 모든 공장에서 메탄올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에탄올보단 싸지만 메탄올보다 더 위험한 화학제품을 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고를 초래한 메탄올 대신 에탄올을 쓰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4. 추산 불가능한 피해 상황…피해자는 5명뿐일까

드러난 피해자는 지금까지 모두 5명입니다. ㅇ업체에서 일하던 4번째 피해자, 20살 남성 노동자는 현재까지는 경미한 증세를 보여 추적 관찰이 진행 중입니다. 2월17일에는 인천 남동공단에서 5번째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엘지전자의 하청업체인 ㄷ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여성 노동자가 메탄올에 의한 심각한 시력 손상을 입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문제는 피해자가 정확하게 몇 명이나 되는지 정확하게 추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사업주조차 공장에서 쓰는 물질이 정확하게 무엇이고 인체에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작은 공장에서 단기 파견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메탄올에 노출돼 일부 시력을 잃은 노동자가 메탄올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습관이나 유전적 요인으로 치부하고 지나갔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국산업보건학회 회장인 박두용 한성대 교수는 “사업장이나 공정 등 사고의 정황으로 볼 때 그동안 유사한 피해사례가 있었을 개연성이 크지만, 얼마나 많은 사업장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메탄올에 노출되는 일을 했는지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노동자 실명 및 중추신경계 장해를 일으킨 해당 업체의 작업장 모습. 노동건강연대 제공
그래서 메탄올의 악몽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겹칩니다. 가습기 살균제도 1994년 첫 제품이 시판된 뒤 2011년 판매 중단까지 17년 동안 전국적으로 80여종이 팔린 탓에 피해 규모를 엄밀하게 추산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증기 형태로 코나 입을 통해 흡입돼 인체에 피해를 끼친 사실은 두 사건의 두 번째 공통점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공간이 특수한 곳이 아니라 가정이나 일터처럼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곳이라는 점은 세 번째 공통점입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들이 모두 약자입니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를 필요로 하는 임신부나 어린이 등 가정의 약자한테 피해를 끼쳤고, 메탄올은 최저임금을 받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법파견 상태의 노동자를 공격했습니다.

 

5.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나

노동계는 물론이고 전문가들은 다단계 하청구조와 파견 노동의 위험성을 주요 요인으로 지목합니다. 사고가 난 업체들은 모두 삼성전자나 엘지전자의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금속부품을 만드는 3차 하청업체였습니다. 원청인 재벌 전자회사→1차 하청업체→2차 하청업체→3차 하청업체에 이르는 다단계 구조에서 아랫 단계 하청업체가 제대로 된 이윤을 보장받기는 힘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주가 노동자에 대한 산업안전 보호조처를 제대로 하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그렇다고 법을 위반해 노동자를 치명적 위험에 빠뜨린 사업주에 면죄부가 주어질 수는 없지만요.

남발되는 파견도 문제입니다. 파견은 근본적으로 노동자가 가져가야 할 이윤을 파견업체가 중간에 빼앗는 중간착취 제도입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은 9조에서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금지합니다. 파견은 유일하게 파견법으로 합법화한 중간착취 고용체계입니다. 다른 나라에도 파견 제도는 있습니다만, 한국처럼 파견업체가 파견 노동자를 제대로 고용하지 않고 인력 소개소처럼 운용되도록 방치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유럽의 파견 노동자 50∼100%는 파견업체에 고용돼 기본소득을 보장받고 일이 없을 땐 교육훈련을 받습니다. 한국에는 이런 상용형 파견이 전혀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야말로 ‘뜨내기 노동’입니다.

특히, 이번에 사고가 난 사업장처럼 제조업을 하는 업체의 직접생산 공정에는 파견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전국의 모든 공단에 이미 심각하게 만연해 있다는 사실은 고용부조차 인정합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며 장시간 노동을 하는 데다 심지어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하는 파견 노동자가 자신이 쓰는 물질이 무엇인지, 건강 위해성은 밝혀졌는지 등을 묻거나 교체를 요구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첫 피해자로 알려진 29살 여성 노동자는 사고 직후 노동단체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장갑과 마스크를 안 끼고 일을 했다. 작업장엔 아무 것도 없었다. 메탄올이 위험한 것인지도 몰랐고 그냥 알코올이겠거니 했다”고 말했습니다.

박두용 교수가 “(이번 사건엔) 하청과 파견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성찰과 해결 없이 산업보건제도만 논한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하는 배경입니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도 성명에서 “다단계 하청시스템과 파견근로를 기반으로 하는, 구조적으로 취약한 소규모사업장에서 생계에 쫓겨 채용된 근로자들이 어떻게 유해한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으로서, 우리나라의 소규모사업장 직업보건관리 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고 이번 사건을 규정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새누리당과 고용노동부는 55살 이상 노동자, 고소득 전문직을 비롯해 이번에 사고가 난 업체들과 같은 뿌리산업에도 파견을 전면 허용하자고 나서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배짱일까요.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엘지전자같은 원청기업이 다단계로 내려가는 하청업체의 노동조건에도 일정한 책임을 지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인 업체와는 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노동자의 건강권을 무시해 중대한 사고를 내는 업체가 아예 문을 닫을 정도의 경제적·형사적 제재를 가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6. 피해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피해자들은 사건 초기 어지럼증과 구토, 시력손상을 호소했습니다. 이후에도 인지능력이 갈수록 약화해 예전처럼 말과 행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들을 접촉해 온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노무사)는 “한 피해자는 병원에 입원 중이고 나머지 피해자들은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며 “당사자들이 갈수록 심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 5명 가운데 경미한 시력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진 20살 남성 노동자를 뺀 나머지 4명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본인들의 장해 상태에 따라 치료에 따른 요양급여와 이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하는 데 따르는 휴업급여를 받습니다. 노동력을 상실해 앞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장해급여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 이들 노동자들이 받는 급여의 수준은 최저임금과 비슷한 금액이라 실질적인 피해 배상이 되진 않습니다. 그래서 피해자 3명은 지난달 2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함께 이번 사건의 관련 업체들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부천 파견노동자 메탄올 급성중독 사건. 인터넷 갈무리
사건 이후 고용부는 2014년에 파악된 3100여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태점검에 나서 메탄올 등 독성 화학물질 사용 및 산업안전보건 실태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각 지방청의 점검결과를 취합중으로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며 “결과를 발표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고용부는 또 사고가 난 사업장 3곳의 사업주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24조는 “원재료·가스·증기·분진·흄(fume)·미스트(mist)·산소결핍·병원체 등에 의한 건강장해,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기체·액체 또는 찌꺼기 등에 의한 건강장해, 환기·채광·조명·보온·방습·청결 등의 적정기준을 유지하지 아니해 발생하는 건강장해”에 대해 사업주가 필요한 예방적 조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위반한 혐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가 고소·고발을 한 뒤 4년 가까이 사건을 사실상 방치해 비난을 산 검찰이 이번 ‘일터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해결의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검찰이 계속 사건 재지휘를 하고 있어 수사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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