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김시곤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의 세월호 참사 당시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공개된 녹취록은 2건인데 모두 KBS의 보도 내용·논조를 비판하면서 뉴스 편성을 바꿔달라는 내용입니다. 사실상 보도지침에 따른 보도통제라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정현, 세월호 보도 KBS국장에 “해경 비판 나중에” 압박)
저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취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을 여러번 돌려 들었습니다. 청와대가 언론을 전화 몇통으로 쥐락펴락하려 한다는데 대한 단순한 분노를 넘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지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핵심을 추려 네 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1. 해경의 거짓 기자회견은 누구의 지시였을까
‘세월호 참사 당시 출동한 해양경찰이 퇴선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도에 대해 이정현 전 수석은 “해경을 그렇게 조져야 겠느냐”,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런것 아니냐”, “조지려면 좀 지나서 조져라”고 말하며 김 전 국장을 몰아세웁니다. 퇴선명령을 하지 않은 선장을 비판할 일이지, 해경을 비판해서 되겠냐는 취지입니다. 해경에 대한 비판이 곧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얘기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 통화가 이뤄진 시점입니다. 통화는 2014년 4월21일 이뤄졌는데요. 일주일 뒤인 4월28일, 세월호 참사 당시 침몰하던 배를 눈 앞에서 봤던 김경일 당시 123정장이 “퇴선명령을 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날은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해경을 압수수색한 날로 123정장의 기자회견은 해경의 책임을 덜기 위해 국면 전환용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검찰 수사결과, 이 기자회견은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퇴선명령은 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김 전 정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습니다.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은 지난해 12월 특조위 청문회에 나와 이 기자회견이 “우리가 했던 (구조활동)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내가) 기자회견을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세한 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기자회견에 ‘퇴선명령을 했다’는 거짓 내용이 포함됐는지 여부는 몰랐다는 식으로 발뺌했습니다. (▶관련 기사: “세월호에 퇴선 명령했다” 당시 123정장 거짓 회견…김석균 전 해경청장 “회견 지시했지만 내용은 몰라” 발뺌)
이런 사실을 바탕에 두고 이정현 전 수석과 김시곤 전 국장의 녹취록으로 돌아오면, 이정현 전 수석과 청와대가 해경에 대한 비판에 그만큼 민감했다는 점에서 과연 이 거짓 기자회견이 김석균 전 청장 선에서 나온 지시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당시 해경은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이라는 문서를 만들어, 언론의 비판에 대해 사실과 다른 면피용 매뉴얼까지 만들어 둔 상태였습니다. 청와대가 해경 책임을 덜도록 사력을 다하고 있었는데, 해경 책임을 덜려는 ‘거짓’ 기자회견이 단순히 김석균 전 청장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었을까요? 아님 그 윗선의 누군가였을까요? 특조위의 조사 대상이기도 한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합니다.
2. “극적으로 도와준” 언론은 어디일까
같은 통화에서 이정현 전 수석은 김시곤 전 국장에게 “선장이 잘못이지 해경이 무슨 잘못이냐”고 따져 물으며 “도와달라”고 합니다. 김시곤 전 국장이 “우리만큼 도와 준 언론이 어디있냐”고 하자 “좀 더 극적으로 도와달라”고 합니다. 결국 정부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세월호 선장이나 선사인 청해진해운을 비판하는 보도를 많이 해달라는 취지로 읽힙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1주일 정도 지난 4월23일께부터 보수언론과 종합편성채널을 중심으로 청해진 해운과 ‘구원파’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4월23일은 이정현 전 수석이 김시곤 전 국장에게 전화한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이기도 합니다. <조선일보>의 경우 4월23일부터 28일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이름이 1면에 등장합니다. 물론 청해진 해운과 유병언 회장 일가는 이번 참사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병언 일가의 일거수일투족과 과거행적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와 세월호 참사 자체와 구조구난 실패에 대한 보도는 점차 줄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기사: <미디어오늘> 청와대의 남탓, 세월호 물타기, 방송이 확대 재생산)
평소 ‘소처럼 일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는 이정현 전 수석이 이렇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한 언론은 KBS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세월호 보도가 구원파 보도로 급속도로 변하게 되는 시점에 이정현 전 수석의 ‘극적인 도움 요청’이 큰 역할을 한 건 아니었을까요?
3. “되게되면 나한테 전화 한번 좀 해달라”고 물은 이유는
이정현 전 수석은 2014년 4월30일 해군과 해경 사이에 구조작업 혼선 내용을 비판한 KBS <뉴스 9>의 리포트를 2시간 뒤인 오후 11시부터 방송되는 ‘뉴스라인’에선 빼달라고 부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당 뉴스를 봤고,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니 녹음을 다시 하거나 빼달라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이정현 전 수석은 “되게 되면 나한테 전화 한번 좀 해달라”고 두번 부탁합니다.
됐는지 안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용도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청탁’ 자체가 이정현 전 수석보다 윗선의 지시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보도내용 하나씩 검토하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한 뉴스를 빼달라고 하고, 이를 재확인 하려했던 것은 누구였을까요. 이렇게 꼼꼼한 그 분은 참사 당시에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4. MBC는 왜 특조위 조사를 거부했나
녹취록을 여러번 들으면서 가장 소름돋고, 같은 기자로서 자존심 상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4월21일 첫 통화 말미에 나온 내용인데요. 김시곤 전 국장이 해경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자 이정현 전 수석이 “내가 진짜 그렇게 내가 얘기를 했는데도 계속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몰아세운 내용이었습니다. ‘한번 얘기했으면 알아 듣지 왜 계속 같은말 반복하게 하냐’는 취지입니다. ‘더이상 토 달지 말라’는 뜻으로 보이는데 청와대가 언론을, 기자를,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을 이렇게 대해 왔다는 것에 대해 분노가 쌓이고 한편으로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이쯤에서 또 떠오르는 것은 같은 공영방송인 <문화방송>(MBC)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통화 당사자인 김시곤 전 국장은 특조위의 조사에 불응했다가 ‘동행명령장’이 발부된 이후에는 특조위 조사에 응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똑같이 특조위에서 동행명령장이 발부된 이진숙 당시 MBC 보도본부장(현 대전문화방송 사장) 등 3명은 동행명령을 거부하고 “특조위 조사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지난 5월 “특조위를 고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한편에서는(▶관련 기사: MBC, 세월호 특조위 비난…“조사 거부할 것”) 지난달 30일 특조위가 동행명령장 발부사실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세월호 특조위와 이를 보도한 기자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특조위는 조사 대상에 참사 관련 ‘언론 보도의 공정성·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포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정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특조위가 굳이 왜 언론에 대한 조사를 하느냐는 비판도 일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번 녹취록 공개를 계기로 이에 관한 적절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풍문으로나 떠돌았던 ‘정부의 보도지침’이 실존했을 가능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정부기관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세월호와 관련한 ‘음모론’이 일게 된 배경이 된 만큼 언론 보도가 공정하고 적정했는지 여부는 따져봐야 할 부분입니다. 이를 조사할 수 있는 곳은 특조위 밖에 없습니다.
이정현 전 수석과 길환영 KBS 전 사장은 방송법 위반 혐의로 세월호 특조위에 의해 고발된 상태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특조위가 고발을 하면, 검찰총장은 3개월 이내에 수사결과를 내놓도록 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이 수사를 제대로 할지에 대한 관심이 모아집니다. 만약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또다른 반발에 부딪히게 되고, 언론통제 의혹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밖에도 검찰 고발로 해결되지 못할 많은 의혹들이 남아있는 가운데 특조위는 정부가 6월말부터 예산을 끊어버린 탓에 공식적인 조사활동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조위는 예산이 끊겼어도 예전처럼 업무를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부가 부인하고 있는 특조위에 대해 누가 조사에 성실히 응할지도 의문입니다. 한 기관은 지난달 28일 특조위에 자료제출을 거부하면서 “이틀 뒤면 끝나는데 뭐하려고 해주냐”는 말을 했다는군요. 이 기관은 그 뒤에 결국 자료를 제출하긴 했습니다. 정부의 특조위 옭아매기로 풀지 못할 의혹은 점차 쌓여만 갑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관련기사] [전문] 이정현 전 홍보수석 ‘KBS 세월호 보도 개입’ 녹취록 나왔다 [디스팩트 시즌3#10_이정현 보도 개입, "통상 업무"가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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