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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20 14:37 수정 : 2016.10.20 15:17

대체복무 도입 논쟁 ‘15년 도돌이표’ 역사 총정리

지난 2011년 5월 성소수자 병역거부자 이정식씨가 출소한 지 닷새 만에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병역거부권 인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최근 항소심(2심) 법원에서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했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하급심(1심)에서 9건의 무죄 판결이 이어져오다, 이번엔 항소심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온 겁니다. 18일 광주지방법원 형사3부(재판장 김영식)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김아무개씨의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대를 하지 않으면 병역법 제88조 1항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판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군대에 가지 않을 ‘정당한 사유’라고 본 것이지요. 판결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는 어김 없이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 자체가 잘못됐다. 군대가는 사람은 양심이 없냐?” “양심이 있다면, 군대를 가야지”

지난 2001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은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총을 들 수 없다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은 채 형사처벌만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하냐는 질문을 처음으로 던집니다. 2004년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에게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대체복무제 도입 논쟁사를 정리해보았습니다.

■ 양심이 없어, 군대를 안가는 걸까요?

대한민국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1항: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2001년 <한겨레21> 신윤동욱 기자는 2001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권 문제로 보도했다.
‘국방의 의무’에 견줘 ‘양심의 자유’라는 권리는 손에 잘 닿지를 않습니다. 법률상 ‘양심’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양심(선량한 마음)’과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양심에 대해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합니다. 이러한 정의 역시 추상적인데요. 법학자들은 양심의 자유를 ‘정신적 기본권’이라고 표현합니다. 국가가 특정 체제나 이념을 믿도록 개인들에게 강요할 권한은 없습니다. 개인이 설령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에 구체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그러한 사상을 버려라, 마라 간섭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전국민 ‘정신 무장’ 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살아있는 현실에서, 아직 손에 쥐지 못한 우리의 권리이지요. 이번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광주지방법원 형사3부는 피고인이 지닌 ‘양심의 자유’를 보호해야 하는 까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피고인은 2014년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 관할 병무청장에게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양심에 따라 병역에 임할 수 없음음 알려드린다. (중략) 이러한 결정을 존중해주길 바란다’는 취지의 글과 여호와의 증인임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제출했다. 피고인은 사법경찰관 피의자신문에서 “위에 있는 권위에 순종하라는 성경 구절이 있기는 하나 하느님 말씀과 상충되는 법을 따를 수 없어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아버지·작은아버지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형을 복역했고 사촌형제 2명이 같은 이유로 징역형에 복역했다. 피고인이 병역의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정은 법의 명령보다 더 높은 것으로서 종교적 양심상 명령에 따르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이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그야말로 절박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다.

■ 군대 안 가면 감옥행, 당연한 거 아닌가요?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스웨덴·브라질·대만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국가가 보호해야 할 기본권임을 인정해, 총을 들지 않고도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대체복무의 길을 터 준 겁니다. 우리와 같이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이미 1949년 제정된 헌법에 ‘누구든지 양심에 반하여 전쟁복무를 강요당하지 않는다’며 병역거부권을 따로 명시해 두었지요. 한때 병역거부자를 13년씩이나 가두던 대만은 2000년 여야 모두의 찬성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했습니다. 최근까지 영토를 놓고 아제르바이잔과 무력 충돌이 있었던 아르메니아도 2013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감옥에 갇혀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석방했습니다. 총을 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닌 한국인이 현재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양심을 꺾고 입대를 하거나 통상 1년6개월의 실형을 사는 것 뿐입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3부는 18일 판결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국방의 의무만을 확보하면서 양심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법률 해석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공익근무 등 대체복무형태가 군복무의 13%에 이르는 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전체 입영 인원의 0.2%에 불과해 이로 인한 군사력 저하를 논하기 어려운 점, 국제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 점, 군 복무와의 형평성을 고려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무죄에 해당된다.

■ 한국전쟁 때도 병역거부자는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야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가 등장했지만, 이미 일제시대부터 ‘양심에 따라 군 복무나 집총을 할 수 없다’는 개인들이 있었습니다. 군 항명죄나 병역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힌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해마다 500여명으로 지난 60여년간 2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강력한 형사처벌을 뒤따랐던 건 아닙니다. 우리 민족에겐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젊은이들은 총을 들기를 거부했는데요. 당시 남·북 군대는 이들을 비무장 후방부대에 편입시키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바로가기: [한겨레21] 한국전쟁 당시 융통성 있게 넘어갔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1961년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 사회에서 양심에 따라 병역을 가지 않는 건 죄질이 나쁜 범죄가 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 예비군 훈련 거부해도 49차례 기소

5·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병영국가 체계가 잡히면서, 병역거부는 ‘죄질이 나쁜 범죄’가 되었습니다. 1972년 들어선 유신체제는 ‘열외’를 인정하지 않았지요.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이완찬(63)씨는 1975년 집회(예배)를 보던 도중 훈련소로 끌려갔습니다. 총을 못들겠다고 하자 다시 헌병대로 보내져 석 달가량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합니다. 같은 종교를 택한 두 아들도 결국 징역살이를 했습니다. 군 복무를 한 이후, 종교를 갖거나 신념의 변화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33살 신동혁씨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15조 8항 위반 혐의로 2006년부터 8년동안 무려 49차례나 기소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예비군 훈련에 불응할 경우 한 번 처벌받은 뒤에도 계속 훈련에 소집되고 이를 또 거부하면 다시 처벌받게 되는데요. 결국 누범이 돼 벌금 액수도 높아지고 때로는 실형이 선고되기도 합니다.

▶바로가기: [한겨레21] 국가는 삼부자를 마음대로 가두었다

■ 한국, 양심 침해국이자 인권후진국

국제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는 한국은 심각한 인권 침해국입니다. 지난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을 기반으로 한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이행 상황을 감시하는 기구)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처벌받은 여호와의 증인 등 한국인 50명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낸 개인청원을 검토한 뒤 “한국 정부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자의적 구금’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마련해야 하며, 진정인들의 전과기록을 없애고 배상 등 구제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고 통보합니다. 여기서 자의적 구금이란 국가가 개인을 예측가능성이 없이 마음대로 체포하거나 억류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2013년 프랑스 정부는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하는 일은 내 신념과 어긋난다’는 한국인 병역거부자를 난민으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범죄 이력도 없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직접 처벌해야 하는 일선 법관들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형량을 조정할 수도 없습니다. 징역 1년6개월보다 적은 형량을 선고하면, 앞에 선 피고인은 또 다시 징집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잇따르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바로가기: [한겨레21]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양심적 무죄판결

2008년 8월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들이 서울 망원동 사무실에서 국방부의 대체복무 도입 백지화 움직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 정부·국회·법원, 삼권의 외면

그런데 말입니다. 국제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구금을 인권 침해라고 거듭 지적하고 있음에도 ‘대체복무제’는 왜 도입되지 않았던 걸까요? 도입 움직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지난 2007년 9월 국방부는 대체복무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12월 국방부는 ‘여론조사’를 빌미로 국민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계획을 번복해 버립니다. 소수자 인권 문제에 ‘다수결’을 들이민 것이죠.

2004년 7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합니다. 단 1명만이 무죄 입장을 내놨습니다만, 12명 가운데 6명은 대체복무제 입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과 2011년 두 번에 걸쳐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습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3부는 18일 판결문에서 대법원과 헌재의 판단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민주적 다수를 대변하는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다고 말하기 곤란하다거나, 안보와 관련해선 국가에게 광범위한 입법 재량이 있으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형벌로만 다스린다 하더라도 (병역법 조항이) 위헌은 아니라고 했다. 이는 헌법적 가치 실현의 책임을 입법자에게만 맡겨둔 채 사실상 사법기관의 존재 이유인 소수자 권리구제를 외면하는 것이다.

사법부는 입법부에 문제 해결을 ‘퉁’했고, 입법부 역시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17~18대 국회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뼈대로 한 병역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이렇게 행정·입법·사법부는 15년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신체적 구속과 사회적 낙인을 면해 줄 방법을 찾지 않은 채 국가 안보논리와 무관심에 기대어 뒷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근거인 병역법 조항에 대해 사건을 심리 중인데요. 이르면 올해 안에 결정을 내릴 예정입니다. 15년 도돌이표 역사는 언제쯤 새로운 장을 쓸 수 있을까요?

▶바로가기: [한겨레] 헌재 공개변론 현장 “대체복무, 국방력 손실 안 커” vs “병역기피 막을 방안부터”

▶바로가기: [한겨레21] 2001년 첫 보도부터 2007년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발표까지의 역사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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