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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7 13:53 수정 : 2016.11.17 16:50

[뉴스AS] 10월25일~11월10일 나온 시국선언문 173건 분석

<한겨레>는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각계 민심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10월25일부터 11월10일까지 총 253건의 시국선언문을 수집해 봤습니다. 본문이 없거나 짧은 선언 성격의 글을 제외한 173건의 시국선언문 전문을 문장에서 단어를 추출하는 ‘텍스트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해 봤습니다.

173건의 시국선언문에서 10차례 이상 언급된 단어로 그린 워드클라우드. 언급 횟수가 많을수록 중앙에 가깝고 글자가 크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시국선언문이 말하는 민심 1 - 하루 만에 완전 실패한 ‘개헌’ 깜짝 카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통령 연임제’ 등의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발표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헌을 역설했을 때 “참 나쁜 대통령” 등의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공격했을 만큼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박 대통령의 개헌안이 앞서 불거진 '대통령 연설문 유출 파문'을 덮기 위한 깜짝 카드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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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개헌안은 ‘아주 잠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담화 다음날인 지난달 25일치 각계 시국선언문에 사용된 412건(중복단어 포함)의 단어 가운데 ‘개헌’은 약 4.1%에 해당하는 17건 사용됐습니다. ‘대통령’, ‘박근혜’, ‘국민’, ‘민주’ 등 대정부 시국선언문에 자주 언급된 단어를 제외하면 이날 가장 많이 쓰인 단어입니다. 박 대통령의 깜짝 개헌 카드에 각계가 일제히 우려 입장을 낸 것입니다.

하지만 ‘개헌’이라는 단어는 26일부터 긍정이건 부정이건 거짓말처럼 언급되지 않습니다. 한 번도 언급되지 않거나 1000단어당 1번 이하로 언급되는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대통령의 연설 당일 저녁부터 이튿날까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대미문의 국기 문란 사건’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했던 24일 저녁 JTBC는 ‘최순실의 태블릿’을 보도합니다. 한겨레는 이튿날인 25일 최순실씨가 정호성 비서실장이 가져온 청와대 자료로 비선 회의를 했다는 단독 보도를 내보냅니다. 비선 실세들의 구체적인 행각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 하루 만에 ‘대국민 녹화 사과’를 하기에 이릅니다.

시국선언문의 작성과 발표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25일 발표된 선언문에는 24일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내용이, 26일 이후 선언문에는 25일 대국민 사과 내용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개헌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식은 누리꾼들이 말하는 ‘악플보다 못한 무플’같은 상황이 됐습니다.

시국선언문이 말하는 민심 2 - 갈수록 ‘탄핵’보다 ‘하야’…앞으로도 계속?

민심은 분명히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원하고 있습니다. 각계의 시국선언문들은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는 ‘하야’와 국회의 표결과 헌재의 결정을 거쳐 자리를 잃는 ‘탄핵’ 가운데 양자택일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말하는 ‘대통령의 2선 후퇴’ 등은 민심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작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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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퇴진 요구 목소리는 대국민 사과 다음날인 지난달 27일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탄핵과 하야 여론이 비등하다가 탄핵보다 하야 여론이 근소하게 앞서는 모양새입니다. 민심은 지난한 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고 부결될 경우 역풍이 우려되는 탄핵보다는 자발적 하야가 그나마 국정 혼란을 덜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청와대가 하야를 거부하고 있어 앞으로도 여론 변화와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국선언문이 말하는 민심 3 - 최순실? 박근혜? 국정 농단의 몸통은 누구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국민 사과에서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최씨 일가의 국정 농단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비슷한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해명은 효과가 있었을까요? 전체 173건의 시국선언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대통령’으로, 중복 사용을 포함한 전체 단어 사용 건수 3만6000여번 가운데 1390번 반복됐습니다. 그 뒤를 ‘‘박근혜’(1241번), ‘국민’(1224번), ‘우리’(794번), ‘최순실’(765번)이 이었습니다. 사람 이름만 따지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1위와 2위입니다. 정윤회, 정유라를 포함한 ‘최씨 일가’는 모두 813번 언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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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문에서 대통령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1241-813’이라는 숫자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이 최씨 일가보다 더 비난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개헌 깜짝 카드’로 이슈를 장악한 지난달 25일을 제외하고, 최씨 일가 전원과 박 대통령의 언급 횟수를 비율로 환산해 날짜별 증감을 확인한 결과, 날이 갈수록 민심이 최씨 일가로 대표되는 비선 실세가 아니라 박 대통령에 집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최씨 일가가 박 대통령보다 많이 언급된 날은 지난달 26일과 27일 이틀뿐입니다. ‘최순실 태블릿’과 ‘청와대 비서실의 비선 개입’ 등 구체적 보도를 처음 접한 민심이 강하게 반응한 결과입니다. 자신의 ‘오장육부’와도 같은 최씨 일가의 전횡이 계속 밝혀져야 덜 주목받는 박 대통령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데이터로 예상한 박 대통령의 다음 대응은 ‘물타기'

데이터를 살펴보면, 민심이 최순실에 집중할수록 박 대통령은 덜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최씨 일가가 저지른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박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달가워할 리 없겠지요. 그러니 박 대통령은 본인과 직접 관계가 적은 이슈를 계속 끌어들여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를 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100만 촛불’ 이후 침묵해온 박 대통령이 17일 대변인을 통해 내뱉은 공개적 일성이 “엘시티 사건 엄단” 지시였다는 건 그런 반격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글 그래픽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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