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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2 11:08 수정 : 2019.08.02 11:13

<한겨레> 자료사진

서류상 대표는 ‘바지사장’…임직원 진술 중요한데 ‘침묵’
검찰, 최근 양 전 회장 ‘웹하드 카르텔’ 관련 진술·자료 확보
한사성, “성폭력특별법 제14조 3항 왜 적용 안 됐나” 지적

<한겨레> 자료사진
잠시 잊고 지냈던 그 이름이 뉴스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누구냐고요? ‘엽기 만행’과 ‘갑질 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 얘깁니다. 지난 가을, 전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그가 재판에 넘겨진 지 어느덧 7개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2월 첫 공판이 시작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달 30일 검찰이 양 전 회장을 ‘웹하드 카르텔’ 구성 및 음란물 유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관련 기사: “웹하드 카르텔 음란물 유통 실체 밝혀져”…검찰 양진호 추가 기소)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특수강간·강요·상습폭행·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과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6가지 혐의를 적용해 양 전 회장을 재판에 넘긴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6가지 혐의에 지난해 언론보도와 여성단체들의 기자회견으로 널리 알려진 혐의가 하나 빠져 있었습니다. 그가 웹하드 카르텔의 정점에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 혐의가 수사 시작 7개월만에 뒤늦게 추가로 재판에 넘겨진 겁니다.

웹하드 카르텔 문제는 양 전 회장의 핵심 혐의입니다. 어떤 이에게 그는 직원들을 무참히 폭행한 ‘갑질의 아이콘’에 불과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양 전 회장은 수많은 여성을 공포에 떨게 만든 불법촬영물을 대량으로 유통시켜 자신의 막대한 부를 쌓은 ‘몰카제국의 황태자’이자 디지털 성범죄의 원흉입니다. 양 전 회장의 웹하드 카르텔 관련 수사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일까요?

1일 검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웹하드 카르텔 수사는 관련 업체 임직원들의 침묵으로 증거를 확보하는데 긴 시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수사의 관건은 의혹이 제기된 웹하드 카르텔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보강수사 없이 ‘어설픈 증거’만으로 양 전 회장을 기소할 경우 공소를 유지하기 어려운 만큼 재판에서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이른바 ‘빼박’ 증거를 확보해야 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양 전 회장을 상습폭행 등의 혐의로 먼저 기소한 뒤, 지난 7개월 동안 웹하드 카르텔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왔다고 합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의 주된 내용은 양 전 회장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웹하드 업체(위디스크·파일노리)와 필터링 업체(뮤레카), 디지털장의업체(나를 찾아줘), 헤비업로더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됐고, 필터링 업체가 웹하드 업체를 돕기 위해 실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규명해 기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웹하드 카르텔의 구조를 밝혀낸 최초의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 등 음란물을 대량 유통한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웹하드 카르텔’ 구조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서류상, 장부상의 자료만으론 양 전 회장과 웹하드 카르텔의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서류상 이들 회사의 대표는 양 전 회장이 아니라 일명 ‘바지사장’들이었기 때문이죠. 양 전 회장이 음란물 불법유통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웹하드 카르텔을 움직인 실질적인 소유주란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회사 내부 임직원들의 진술이 꼭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양진호 회사’가 여전히 운영중이어서 해당 임직원들은 상당 기간 수사에 협조하기를 꺼렸습니다. 자신이 계속 다녀야 할 회사와 관련한 일이니까요. 오히려 ‘바지사장‘들이 총대를 메고 양 전 회장 대신 처벌을 받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핵심 관계자들이 검찰 조사에서 ‘양진호 회장이 (카르텔 업체들의) 실소유주’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내부 자료를 제출하면서 수사에 물꼬가 트였다고 합니다.

검찰이 양 전 회장을 웹하드 카르텔 구성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했다는 소식에 디지털 성범죄를 규탄해온 여성단체들은 “다행스러운 소식”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양 전 회장의 불법촬영물 유통으로 피해를 입은 수많은 여성들의 고통과 이들의 삶을 파괴한 대가로 거액을 챙긴 그의 혐의를 고려할 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대표는 “이번에 검찰이 양 전 회장을 기소하며 적용한 혐의 가운데 가장 형량이 높은 성폭력특별법 제14조 3항(영리목적으로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자를 처벌)은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양 전 회장을 음란물 유포 ‘방조죄’ 혐의로만 기소할 수 있다면, 도대체 ‘영리 목적으로 불법촬영물을 유통한 자를 처벌한다’는 죄는 누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사성은 2일 저녁 서울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서 양 전 회장과 디지털 성범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 예정입니다. 한사성은 이날 집회에서 양 전 회장의 혐의를 적은 대형 현수막을 15m 높이의 크레인에서 떨어뜨려 펼치는 ‘양진호 선고 재판’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계획입니다. 8월의 장마가 끝나면 곧 가을이 찾아오겠지만, 1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불법촬영 제국의 황태자’ 양진호는 아직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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