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1.10 17:06 수정 : 2019.11.11 02:01

지난해 4월 백화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항의하며 유니폼 대신 사복을 입고 부분 파업을 하고 있다. 엘카코리아노동조합 제공

소송 쟁점은 ‘30분 조기출근’ 사실관계 입증인데
언론 오보에 “화장이 노동이냐” 누리꾼들 악플

‘공짜노동’ 보상 못 받은 직원들 2차 피해 입어

지난해 4월 백화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항의하며 유니폼 대신 사복을 입고 부분 파업을 하고 있다. 엘카코리아노동조합 제공

지난 7일 샤넬노조 조합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사건이 ‘꾸밈 노동’(회사가 정한 제품·가이드에 따라 용모를 꾸미는 것) 인정을 둘러싼 엉뚱한 논란으로 번지면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앞서 샤넬 화장품 판매 직원 335명은 2017년 9월 서류상 정해진 근무 시작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근해 회사에 ‘공짜노동’을 제공해왔다며 2014년 7월부터 3년2개월 동안 하루 30분씩 추가근무를 한 데 대한 수당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직원들이 거의 모든 근무일마다 30분씩 조기 출근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쪽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왜 이런 결정이 나왔을까요? 소송의 쟁점은 ‘꾸밈 노동’의 인정 여부가 아니라 직원들이 실제 30분 일찍 출근했는지, 회사의 주장대로 영업 준비를 1시간 이내에 끝낼 수 있는지 등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 문제였습니다. 법원과 회사 모두 ‘꾸밈 노동’이 직원들의 업무라는 걸 전제로 재판을 진행한 것이죠. 문제는 샤넬이 직원용 출퇴근 기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직원들은 백화점 개장 전 꾸밈 노동을 비롯해 매장청소·재고정리를 마쳐야 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일을 1시간 안에 끝내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식 근무시간보다 30~40분 일찍 나와 일을 시작하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노조는 이러한 ‘공짜노동’을 증명하기 위해 교통카드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지만, 카드 여러 개를 번갈아 사용하거나, 버스·지하철·택시 등 교통편을 환승한 경우 조기 출근의 패턴을 입증하기 어려웠습니다. 매장 내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에선 오전 9시께 출근한 직원들이 확인됐지만, 소송 제기 뒤 촬영됐다는 이유로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 취지를 잘못 해석한 일부 언론이 “법원이 ‘꾸밈 노동’을 근로시간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잘못된 보도를 내면서 샤넬노조는 누리꾼들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출근을 위해 화장하는 것까지 수당으로 인정해달라는 거냐”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사명감이 없다”는 악성 댓글이 그 예입니다.

샤넬 직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김소연 샤넬노조 위원장은 “10년 넘게 암묵적인 ‘공짜노동’을 강요한 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요구한 것인데, ‘샤넬 직원들이 배가 불러 화장하는 것까지 노동으로 인정해달라고 한다’는 식의 댓글이 달리니 충격이 크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의 배경에 여성 노동자들의 업무를 평가절하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유성규 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우리 사회는 여성 노동자에게만 화장과 꾸밈 등의 노동을 요구한다”며 “샤넬노조에 대한 악성 댓글은 ‘화장이 무슨 노동이냐’는 남성 중심적 사고가 깔린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뉴스AS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