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06
북-미 정상회담 초대형 이슈에 선거 분위기 못느껴
문 대통령 지지도에 여당 후보들 편승…‘묻지마 투표’ 가능성
“선거 한번 해 봅시다”는 홍 대표가 후보들 제치고 야당뉴스 독점
무리한 색깔론으로 국내선거에 외교·안보 현안 끌어들여 고립 자초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6월13일에 치러집니다.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최종 후보 등록은 5월24일과 25일입니다. 2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선거 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초단체장은 고사하고 광역단체장 후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방선거는 내가 사는 지역의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구성할 사람들을 뽑는 선거입니다. 총선보다 인물의 비중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후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1995년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래 이번처럼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선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번처럼 후보들이 잘 보이지 않는 선거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왜 이럴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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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북쪽으로 ‘깜짝 월경’한 뒤 다시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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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 때문입니다.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과 곧이어 열릴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운명과 동북아 정세를 통째로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초대형 태풍입니다. 지각변동입니다.
우선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은 2000년 김대중-김정일 1차 남북 정상회담, 2007년 노무현-김정일 2차 남북 정상회담보다 훨씬 큰 의미와 비중을 갖고 있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첫 번째라는 상징성이 강했습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첫 번째 정상회담 성과를 바탕으로 북-미 관계 개선을 유도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클린턴에서 부시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은 경제협력과 남북교류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간 합의는 사실상 백지화됐습니다.
2018년의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은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 합의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를 의제로 다뤘다는 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예비회담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차나 2차 정상회담보다 의미와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과 주변 열강이 동북아판 비핵화 ‘그레이트 게임’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북한의 비핵화, 대북제재 해제, 북-미 수교, 북한의 개방 등이 가시권에 들어오면 우리는 70년 분단체제를 끝내고 남북교류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천지개벽이 이뤄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과 곧이어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세계인들이 이런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습니다. 당사자인 우리 국민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 2007년 남북 정상회담과는 차원이 다른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장평화 쇼’라고 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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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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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3일 지방선거는 이처럼 한반도의 운명과 동북아 정세를 뒤바꿀 강력한 태풍의 와중에 치러집니다. 선거에 대한 관심 자체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렇다고 지방선거 일정을 뒤로 미룰 수도 없는 일입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에 비해 최고 수준입니다.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대통령 당선 직후 수준으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많은 전문가가 취임 1년 정도면 조정기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지도가 다시 상승 국면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정당 지지도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에 나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존재감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나섰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영선 우상호 의원은 민주당에서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후보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민주당 경선은 흥행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관심이 온통 문재인 대통령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후보 이력에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쓸 수 있었던 후보는 그렇지 않은 후보에 비해 훨씬 유리했습니다. 후보가 누군지 잘 살펴보지도 않고 ‘노무현 사람’이나 ‘문재인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보고 지지해준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6·13 지방선거 본선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도권과 호남, 충청, 부산·경남 등지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무조건 찍어주는 ‘묻지 마 투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셋째, ‘홍준표 현상’입니다.
이번처럼 야당이 크게 불리한 선거 지형에서 야당이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은 당 지도부보다 후보를 앞세우는 전략입니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대표는 정세균 현 국회의장이었습니다. 당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앞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서울시장 한명숙, 인천시장 송영길, 강원지사 이광재, 충남지사 안희정 등 새로운 후보들을 내세워 승부를 걸었습니다. 경남지사는 민주당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 김두관 후보를 지원했습니다.
이런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는 아슬아슬하게 낙선했지만, 돌풍의 진원지 구실을 했습니다. 다른 젊은 후보들은 대부분 당선됐습니다. 자신이 나서지 않고 후보들을 앞세운 정세균 대표의 전략이 통한 것입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야당발 정치뉴스를 홍준표 대표가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홍준표의, 홍준표에 의한, 홍준표를 위한’ 자유한국당인 것 같습니다. 가끔 김성태 원내대표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존재감에서 홍준표 대표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홍준표 정치’의 특징은 당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5월6일 페이스북에서 그는 과거사를 끄집어냈습니다.
2008년 5월 MB 정권 초기 광우병 파동으로 정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원내대표를 맡아 대혼란을 수습하고 매일 같이 국회가 민주당에 점거당하는 국회 상황을 일 년 동안 당하면서 이를 헤쳐 나갔습니다.
2011년 7월 당 대표를 맡을 당시에는 친이-친박의 협공 속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국회 본회장의 혼란을 넘어 한미 FTA를 통과시켰으나 내가 하지도 않은 디도스 파동의 책임을 지고 5개월 만에 당 대표직을 물러났습니다.
2017년 5월에는 탄핵 대선이라는 절망적 상황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어 궤멸된 당을 재건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017년 7월에는 무너진 당을 맡아 잔박들의 저항 속에서 당협위원장 3분의 1을 교체하는 조직혁신과 친박 핵심 청산을 통해 인적청산 작업을 했고 정책혁신을 하여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신보수 정당으로 당을 거듭 태어나게 해서 후안무치한 문 정권을 상대로 지금 지방선거에 임하고 있습니다.
늘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당은 나를 불렀습니다. 하기사 태평성대였다면 자기들이 하지 나를 부를 리가 없지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나는 봅니다.
(후략)
‘비주류’ 출신 정치인으로서 이른바 ‘주류’를 향한 반감과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의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입니다. 요즘 페이스북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선거 한번 해봅시다”라는 것입니다.
“선거 한번 해 봅시다. 민심이 과연 어떤지 확인해봅시다.”(4.2)
“선거 한번 해 봅시다.”(4.6)
“6·13 민심을 한번 확인해 봅시다.”(4.20)
“선거 한번 해봅시다. 진짜 민심이 무엇인지 확인해 봅시다.”(5.5)
“국민들이 과연 어떻게 반응하는지 선거 한번 해봅시다.”(5.5)
“선거 한번 해봅시다. 과연 국민들이 중앙권력에 이어 지방권력까지 통째로 저들에게 넘겨주는지 민심을 한번 확인해 봅시다.”(5.6)
무모할 정도로 강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홍준표 대표는 2000년 총선 직전 김대중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했지만 한나라당이 승리한 사례를 들어 “외교·안보 현안과 국내선거는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 국민은 외교·안보 현안과 국내선거를 분리해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권 차원에서 외교·안보 현안을 선거에 이용하려 들면 오히려 역풍을 맞기 쉽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폭침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선거에서 패배한 사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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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자, 홍준표 대표가 농성장을 찾아 단식중단을 설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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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나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지각변동입니다. ‘문재인 정권이 외교·안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한다’는 홍준표 대표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겨우 지방선거 이기려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했을까요? 너무나 비상식적인 주장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과연 평창동계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매도하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위장평화 쇼’라고 깎아내리는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에 표를 몰아줄까요?
지금 국내 정치에 자꾸 외교·안보 현안을 끌어들이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오히려 홍준표 대표 자신입니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결정적 판단 착오로 무리한 색깔론을 펴면서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을 고립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입니다. 자칫하면 6·13 지방선거가 홍준표 대표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지경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를 제대로 치르려면 이제라도 홍준표 대표가 아니라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등 광역단체장 후보들을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4년 동안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이끌어 갈 공직자들을 뽑는 지방선거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자유한국당을 살리는 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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