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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9 05:00 수정 : 2018.05.20 10:13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참히 폭행하는 모습. 5·18기념재단 제공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09
정태옥 대변인 “역사의 강물에 띄우고 화합과 상생”
다른 4개 정당은 5·18 철저한 진상규명 일제히 촉구
2월 특별법 제정 때도 “합의를 위해서 처리” 소극적
전두환 신군부가 만든 민주정의당 후신의 한계인 듯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참히 폭행하는 모습. 5·18기념재단 제공

5·18 38주년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자유한국당에서 문자로 발송한 대변인 논평을 읽었습니다. 백기완 님의 시로 시작되는 자유한국당의 논평은 인상적이었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의 고귀한 뜻, 푸른 5월의 정신이 되어라.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백기완 묏비나리 中)

원래 5월은 푸르고 청춘이고 아름답고 즐겁다. 그러나 우리들의 5월은 핏빛이고 어둡고 슬프고 가슴이 아린다.

5월 민주 영령들의 너무나 큰 희생, 너무나 깊은 아픔, 너무나 가슴 아린 사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큰 희생과 아픔은 우리들에게 자유와 민주의 후퇴할 수 없는 배수진이 되었고, 그들의 원력(願力)으로 자유와 민주는 전진했다.

세월은 흘러 오늘 5.18 민주화 운동 38주년이 되었다. 그 고귀한 희생과 깊은 아픔은 우리 가슴속에 자유와 민주의 꽃으로 피어나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5월 민주화 운동의 뜨거운 정신은 푸른 역사의 강물에 띄우고, 대한민국의 화합과 상생과 발전이라는 더 푸른 5월 정신으로 승화하기를 기원한다.

자유한국당은 5.18 민주화 운동 38주년을 기념하며, 민주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그 유가족들의 큰 아픔에 다시 한 번 위로 드린다.

2018. 5. 18.

자유한국당 대변인 정 태 옥

여의도 버스 환승센터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걸어가며 스마트폰에 떠 있는 글을 두 번쯤 읽었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제 자유한국당에서도 5·18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이런 감성적인 논평을 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혼자 감상에 젖었습니다.

정태옥 대변인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대구 북구갑 지역구 국회의원입니다. 대구 국회의원이 5·18을 맞아 5·18 논평을 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국회에 도착해서 논평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봤습니다.

“이제 5월 민주화 운동의 뜨거운 정신은 푸른 역사의 강물에 띄우고, 대한민국의 화합과 상생과 발전이라는 더 푸른 5월 정신으로 승화하기를 기원한다”는 대목이 걸렸습니다. 결국 ‘5·18은 이제 역사에 묻고 화합으로 나아가자’는 의미였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유한국당은 5·18 가해자들의 후신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1980년 5·18의 실체는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선 광주의 항쟁입니다. 광주를 총칼로 짓밟은 사람들은 민주정의당을 창당해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 민정당의 법통이 민주자유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의 5·18 논평은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결정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 ‘진상규명’이라는 네 글자가 빠져 있다는 점, 둘째,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당에서 ‘화합’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날 쏟아져 나온 다른 정당의 논평이나 브리핑을 살펴보면 이 점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계엄군의 집단발포와 헬기사격, 집단성폭행 등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이 저지른 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당사자인 전두환 씨는 여전히 ‘나는 5·18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의의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한 추상같은 단죄가 필요하다.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통해, 5·18 광주의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이 분명히 이뤄져야 한다.”(더불어민주당 김현 대변인)

“지난 2월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됐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38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법이 마련된 것입니다.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은폐와 조작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당시 최초 발포명령자, 헬기기총소사, 암매장지, 성폭력을 비롯한 인권유린 등 5·18에 대한 진실이 낱낱이 밝혀져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것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과 아픔을 안고 살아온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바른미래당 신용현 수석대변인)

“5·18의 진실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고, 가해자에 대한 완전한 처벌도 되지 않았다. 일부 세력들은 아직도 ‘북한군 개입설’, ‘폭도들의 난’으로 5·18을 폄훼 왜곡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전두환 군부가 헬기와 전투기까지 동원해서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려 했다는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최근 공개된 미국의 군 기밀문서는 최초 발포명령자와 북한군 개입설의 최초 유포자로 전두환을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전두환은 속죄도 사과도 한마디 없이 자신이 피해자라는 인면수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9월이면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하게 된다. 이번이 진상규명을 위한 마지막 기회이다.”(민주평화당 최경환 대변인)

“‘그 날’, 국가가 시민들에게 가한 잔혹한 폭력의 실체는 최근에도 드러나고 있다. 당시 최종진압 작전의 내용을 담은 비밀 문건과 계엄군의 성폭행 증언은 여전히 밝혀야 할 진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 증거들은 한목소리로 끔찍한 살상의 최종 책임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임을 지목하고 있다.

9월에 출범하는 진상규명위원회는 단 하나의 진실도 놓치지 않고, 광주의 상처를 낱낱이 드러내고 치유하는 역사적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이제라도 광주 민주화 영령들과 유족들의 오랜 한이 풀릴 수 있길 바란다.”(정의당 최석 대변인)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일제히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회는 지난 2월 28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법률안 제안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37년이 지났지만 아직 실체적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관련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음.

특히, 최근 광주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의 78%가 헬기 사격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발포명령하달’이 표기된 광주주둔 505보안부대 문서가 언론에 보도되고 5·18 당시 암매장 현장을 목격했다는 시민 증언 등을 토대로 5·18 행방불명자 진상조사 등이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보 등을 통한 진상규명 관련 진술 확보를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음.

또한 1988년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청문회가 열릴 당시 국방부와 군 보안사, 한국국방연구원 등 관계기관들은 5·18 진상을 감추기 위해 5.11 연구위원회(5.11 분석반)를 설치해 조직적으로 역사적 진실을 왜곡·조작했다는 증거도 드러나고 있음.

그러나 현재까지 대부분의 5·18 관련 군 기록들은 군사기밀로 묶여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진상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

이에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려는 것임.”

올해 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은 김동철 최경환 이개호 의원 등이 제안한 4개의 법률안을 통합·조정한 ‘국방위원회 대안’입니다. 국회 국방위원장은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입니다.

자유한국당은 5·18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찬성했을까요?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2월 28일 오후에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윤재옥 수석부대표가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법안과 관련해서는 쟁점 법안이 있다. 합의를 위해서 5·18 특별법은 오늘 처리된다. 독소조항은 법사위에서 걸렀다. 영장청구 의뢰라는 위헌적 소지가 있는 부분을 빼내는 조건으로 통과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이 원하는 다른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양보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도 자유한국당이 ‘독소조항’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제외했다는 설명입니다. 5·18 진상규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어쩌면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만든 민정당의 후신 정당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인 것 같습니다.

‘이제 5월 민주화 운동의 뜨거운 정신은 푸른 역사의 강물에 띄우고, 대한민국의 화합과 상생과 발전이라는 더 푸른 5월 정신으로 승화하기를 기원한다’는 정태옥 대변인의 논평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지난해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묘역에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공동사진기자단

어쨌든 진상규명 특별법은 제정됐습니다. 특별법에 따른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오는 9월에 출범합니다.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5·18 당시 계엄군과 보안사 수사관들의 성폭행 등 그동안 감춰졌던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성폭행 범죄에 대해 분노한 것 같습니다. 5월18일 오후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 전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보듬는 것에서 진실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입니다. 한 세대를 넘는, 긴 시간입니다.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이뤄낸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광주 영령들을 숙연한 마음으로 추모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많은 시민들의 눈물을 돌아봅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던 여고생이 군용차량에 강제로 태워졌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던 회사원이 총을 든 군인들에게 끌려갔습니다. 평범한 광주의 딸과 누이들의 삶이 짓밟혔습니다. 가족들의 삶까지 함께 무너졌습니다.

한 사람의 삶, 한 여성의 모든 것을 너무나 쉽게 유린한 지난날의 국가폭력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오늘 우리가 더욱 부끄러운 것은 광주가 겪은 상처의 깊이를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 알지 못하고, 어루만져주지도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와 진실의 온전한 복원을 위한 우리의 결의가 더욱 절실합니다.

성폭행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국방부와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가 함께 공동조사단을 꾸릴 것입니다. 피해자 한 분 한 분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월 광주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광주는 고립된 가운데서도 어떤 약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먹밥을 나누고 헌혈의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총격을 무릅쓰고 부상자를 돌봤습니다. 서로 돕고 용기를 북돋우며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 불의한 국가폭력에 대항해 이기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역사에 남겨주었습니다.

오월 광주로 인해 평범한 우리들은 정의를 잊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광주와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촛불광장은 오월의 부활이었고, 그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보듬는 것에서 진실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만큼 소중한, 한 사람의 삶을 치유하는데 무심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겠습니다. 광주라는 이름으로 통칭되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 돌보고 서로 나누며 광주의 정신을 이뤘습니다. 그 정신이 더 많은 민주주의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온전히 누려야 할 삶의 권리, 인권과 평화, 존엄성이 일상적 가치가 될 수 있도록 국민들께서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기념식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뜻깊은 기념사가 될 것입니다. 저도 마음을 다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2018년 5월 18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송강호씨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택시운전사’가 지난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독일인 카메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다큐멘터리가 최근 극장가에서 개봉했습니다.

5월15일 용산역 영화관에서 열린 시사회에 저도 참석했습니다. 영화 시작 전에 힌츠페터의 부인,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의 아들, 힌츠페터 영상에 나왔던 광주의 시민군이 나란히 무대에 서서 관객들에게 인사했습니다. 관객들은 힘찬 박수와 눈물로 이들을 맞았습니다.

힌츠페터는 ‘택시운전사’ 영화의 내용과 달리 1980년 5월 광주에 모두 세 차례 들어가서 취재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도 여러 차례 한국에 와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취재 도중 어느 날 경찰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카메라 기자 생활을 접어야 했습니다.

힌츠페터는 죽어서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독일에서 갑자기 쓰러져 숨졌기 때문입니다.

힌츠페터 영화는 다큐멘터리입니다. ‘택시운전사’와 달리 실화입니다. 1980년 광주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진상규명은 이렇게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직은 ‘역사의 강물에 띄울’ 때가 아닙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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