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21
광주·전남·전북 합동연설회 현장 열기
대표·최고위원 후보들 호남 민심 잡기 안간힘
권리당원 3분의 2 몰린 호남·수도권이 승부처
김진표 “호남 차별 없어졌으니 경제 살려야”
송영길 “이제 호남의 아들에게 기회를 달라”
이해찬 “호남서 전략공천 없다···총선 불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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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정기대의원대회 및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가 열려 추미애 대표와 차기 지도부 후보가 연단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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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거는 재미있습니다.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습니다. 대세론이 있고 역전극이 있습니다. 밴드왜건 효과가 있고 언더독 효과가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을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가 8월 25일 열립니다. 방송토론과 시도당 대의원대회 및 합동연설회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8월 2일 광주문화방송 주관으로 토론회를 했고 3일에는 제주 대의원대회와 합동연설회를 했습니다. 4일 토요일에는 광주, 전남, 전북 대의원대회 및 합동연설회가 잇따라 열렸습니다. 광주는 김대중컨벤션센터, 전남은 담양문화회관, 전북은 우석대 체육관이었습니다. 광주·전남·전북 합동연설회를 취재하기 위해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호남의 분위기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호남은 민주·개혁·진보 세력의 심장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뿌리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역사를 더듬으면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했던 평화민주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호남은 1987년 대선, 1992년 대선,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고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뤄냈습니다. 2002년 노무현 후보, 2007년 정동영 후보, 2012년 문재인 후보, 2017년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곳도 바로 호남이었습니다.
1988년 이후 지금까지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호남은 넓은 의미의 민주·개혁·진보 지지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그리고 자민련은 호남에서 발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지지 정당이 갈린 적은 있었습니다. 민주·개혁·진보 세력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나뉘었던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선에서는 호남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렸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는 안철수 전 대표가 창당한 국민의당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켰습니다. ‘문재인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반발이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대선에서 호남은 안철수 후보가 아니라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광주 61.14%, 전남 59.87%, 전북 64.84%였습니다.
호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식당에서 오가는 유권자들의 대화 수준이 거의 방송토론 패널 수준입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의해 오랫동안 차별을 받았던 곳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최초의 정권교체와 노무현 열풍의 진원지였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호남은 이번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선출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대의원 투표 45%, 권리당원 투표 40%, 국민 여론조사 10%, 당원 여론조사 5%를 반영해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합니다. 대의원이 1만7000여명, 권리당원은 73만여 명입니다.
대의원은 8월 25일 전당대회 당일에 모여서 한꺼번에 투표합니다. 권리당원은 8월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 동안 자동응답장치(ARS)로 투표합니다. 권리당원은 권역별로 서울·경기 40%, 호남 27%, 영남 12%, 충청 13% 정도입니다. 나머지 8%는 인천·강원·제주입니다.
호남의 권리당원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사실은 과거보다 많이 낮아진 것입니다. 1987년 평화민주당 이래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정당에서 호남 당원의 비중은 50% 안팎으로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당내 선거를 할 때면 호남 편중을 완화하기 위해 권역별로 가중치를 부여해서 보정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부터 인터넷을 이용한 당원 가입이 가능해지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수도권 30~40대가 대거 입당하면서 수도권의 비중이 높아졌고 호남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입니다.
아무튼 권역별 인구와 견주어보면 호남의 비중은 여전히 높은 편입니다. 수도권 당원 중에서도 원적지를 따지면 영남이나 충청보다 호남 출신이 훨씬 많다고 봐야 합니다. 이번 전당대회에 나선 후보들이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현장에 가서 느낀 광주, 전남, 전북 대의원대회 및 합동연설회의 열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기록적인 폭염보다 더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역시 호남이었습니다.
오전 11시에 광주 합동연설회가 열린 김대중컨벤션센터는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지지자들의 연호와 함성으로 시끌벅적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색깔인 파란색 물결이 온통 행사장 앞을 뒤덮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팻말과 등에 새겨진 후보 이름을 살피지 않으면 누구의 지지자인지 알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후보들이 입장할 때는 지지자들의 연호가 뒤엉켜 누구의 이름인지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의자를 1000석이나 깔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상당수는 선 채로 연설을 들었습니다.
오후 1시 전남 합동연설회가 열린 담양문화회관도 700석 좌석이 턱없이 부족해 행사장 안으로 입장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입구에서는 후보 홍보물을 나눠주는 사람들과 구호를 외치는 운동원, 그리고 대의원·당원들이 뒤섞여 대혼란을 빚었습니다. 오후 4시부터 우석대 체육관에서 열린 전북 대의원대회 및 합동연설회도 분위기가 비슷했습니다.
이날 오전이나 오후나 호남 지방의 날씨는 무더웠습니다. 행사장은 예외 없이 땀과 구호와 연호가 뒤범벅이었지만 짜증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폭염 속에서 모처럼 정치축제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세 차례 호남 연설회에서 후보들은 주로 자신과 호남의 인연을 강조하거나 자신이 지도부에 입성하면 호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역설했습니다. 인상적인 발언과 장면만 간추려 전해드리겠습니다. 연설 순서는 세 차례 모두 달랐습니다. 기호순으로 소개합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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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송영길 후보의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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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영길
“문재인 이용섭(김영록·송하진)으로 이어진 엄지 척 승리의 기호 1번 송영길입니다. 저는 당내 계보도 세력도 없습니다. 저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습니다. 전남의 아들 송영길의 손을 잡아주시겠습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이해찬 후보는 53세에 국무총리를 했습니다. 김진표 후보는 57세에 경제 부총리를 했습니다. 저는 56세로 4선 국회의원이고 인천시장을 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통합의 리더십으로 당을 이끌겠습니다.”
(송영길 후보는 연설문을 보지 않고 연단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대표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박수와 환호, 연호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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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김진표 후보의 지지자들이 연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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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진표
“호남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어냈습니다. 민주주의의 심장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저를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제 부총리로 발탁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겼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호남 홀대론은 공직에서 해소됐습니다. 이제 호남의 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당에 호남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책임의원제를 실시하겠습니다.”
(김진표 후보는 광주, 전남, 전북에서 각각 지역발전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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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이해찬 후보의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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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해찬
“두 가지를 약속하겠습니다. 첫째, 호남에서 이제 전략공천은 없습니다. 정무적 판단은 절대로 없습니다. 당원과 지역의 뜻을 받들어 공천하겠습니다. 둘째,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성공시키겠습니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를 풍요와 번영의 광주로 만들어내겠습니다. 저는 어제 다른 후보들에게 원팀을 제안했습니다. 제가 안 되면 적폐청산과 당 현대화에 기꺼이 헌신하겠습니다. 저는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이해찬 후보도 광주, 전남, 전북에서 각 지역 특성에 맞는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최고위원]
1. 김해영
“아버지의 고향이 광주입니다. 어릴 때 저도 광주에서 자랐습니다. 북구 용전마을입니다. 큰아버지와 친척들이 살고 계십니다. 큰어머니 오셨던데 어디 계십니까? 아버지는 일자리를 찾아서 부산으로 갔는데 제가 부산에서 국회의원이 돼서 돌아왔습니다. 미래에 투자해야 합니다. 두 표 가운데 한 표는 저에게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박주민
“광주의 정신은 2016년 촛불의 정신으로 부활했습니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7년 대통령 선거에 나설 때 제시했던 민주정부 7대 과제는 2017년 문재인 정부의 과제와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힘없는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으로 만들겠습니다.”
3. 설훈
“옛 전남도청 앞 5·18 기념비에 헌화하면서 다짐했습니다. 광주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발포명령자는 누구인지 밝혀야 합니다. 저는 광주항쟁유공자입니다. 보상금 1억2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광주 핏값입니다. 전남 담양 한빛고에 전액 기부했습니다. 광주 영령 앞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광주는 제 정치의 본원입니다.”
4. 박광온
“땅끝마을 해남이 낳고 광주가 키워준 문재인 대통령의 대변인, 광주의 대변인, 민주당의 대변인 박광온입니다. 1980년 5월 집을 나간 아들딸 240명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5·18법을 개정해 광주를 왜곡하고 유족을 모욕하는 세력을 뿌리 뽑겠습니다. 광주를 민주주의의 심장에서 일자리의 심장으로 바꾸겠습니다.”
5. 황명선
“자치분권의 대표 주자입니다. 2015년 전당대회에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이 도전했고 제가 두 번째 도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13일의 단식으로 만들어낸 지방자치입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후보가 국회의원입니다. 당에 현장과 지역의 목소리를 전달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황명선 후보는 논산시장입니다.)
6. 박정
“아버지가 전남 영암 출신입니다. 파주까지 가서 저를 낳았습니다. 저는 야간중학을 나와서 탁구선수로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갔습니다. 유전공학자의 꿈을 이루려고 학비를 벌기 위해 박정 어학원을 차려서 성공했습니다. 평화 경제의 선봉장이 되겠습니다.”
7. 남인순
“2012년 혁신과 통합으로 민주당에 들어와 그동안 혁신과 변화에 앞장섰습니다. 저는 광주를 살리는 남인순이 되겠습니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 광주 정신을 국민에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했습니다. 국립 심혈관센터 설립을 지원하겠습니다.”
8. 유승희
“8월에는 기호 8번 유승희입니다. 호남의 며느리 유승희입니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 민주당의 뿌리입니다. 저는 여성과 약자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3선 국회의원입니다. 민주당 지도부에는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유승희 후보의 남편은 전북 출신으로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낸 유종성 교수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호남 사람이라면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민주당 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들은 일요일인 5일에는 대전·세종·충남 대의원대회 및 합동연설회를 합니다.
8월 25일 열리는 이번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의 최종 승부는 어디서 결정될까요?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원입니다. 대의원 한 표가 대략 권리당원 50표에 해당합니다. 대의원 투표율이 권리당원 투표율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의원 1표가 권리당원 70~80표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대의원 대부분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역구에서 선출된 사람들입니다.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의 ‘오더’를 받겠지만, 오더에 반드시 따른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은 아직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판세를 살피고 있습니다. 8월 25일 전당대회 당일 어느 후보가 연설을 잘하느냐에 따라 대의원들의 판단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둘째, 73만 권리당원의 표심입니다.
2년 전 2016년 8·27 전당대회를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8·27 전당대회는 대의원 1만4272명 가운데 8481명이 투표해서 투표율 59.42%를 기록했습니다. 권리당원은 총 선거인 수 19만9401명 가운데 5만5124명이 투표해 27.64%의 투표율을 보였습니다.
추미애 후보가 총 54.03%의 압도적 득표율로 이종걸 후보(23.89%)와 김상곤 후보(22.08%)를 손쉽게 꺾었습니다.
그런데 최고위원 투표에서는 권리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양향자 후보가 현장 대의원 투표에서 표를 많이 받은 유은혜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권리당원들의 표심이 대의원 표심을 누른 것입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권리당원 숫자가 2년 만에 19만9천에서 73만 명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인단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예측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새로 권리당원이 된 것일까요? 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선거인단 규모가 커질수록 민심과 닮아간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요? 결국 개표를 해봐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도권과 호남 권리당원들의 표심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서울·경기 40%, 호남 27%를 합치면 67%로 3분의 2를 넘기 때문입니다. 수도권과 호남의 더불어민주당 당심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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