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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9월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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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36
언론인 남시욱·태영호 전 공사 등 보수인사들
노무현·문재인 정부 가르켜 ‘진보 정권’이라 궤변
‘정부 개입’-‘남북 대화’-‘미국과 불화’ 주장하지만
이승만·박정희·노태우·김영삼 때 훨씬 더 심해
보수-진보 분열시켜 ‘기득권 세력 공간’ 확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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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9월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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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했습니다. ‘정명’(正名)입니다. 공자는 정명을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자어로는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입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014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논어의 ‘정명’ 개념을 빌려서 '청청(靑靑) 여여(與與) 야야(野野) 언언(言言)‘이라고 한 일이 있습니다. 청와대는 청와대다워야 하고, 여당은 여당다워야 하고,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고, 언론은 언론다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명은 쉽게 말해서 이름과 실제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은 독재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정명이 아닙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민주정의당을 창당한 것도 정명이 아닙니다. 북한이 주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것도 정명이 아닙니다.
‘정명’이 떠오른 것은 며칠 전 신문에서 본 광고, 그리고 인터뷰 기사 때문입니다. 광고는 ‘한국 진보세력 연구’라는 책 광고였습니다. 원로 언론인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이 2009년 펴낸 같은 제목의 책을 2018년 6월 개정증보판으로 출판한 것입니다.
그런데 광고에 난 책 표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박헌영 여운형 조봉암과 함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실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박헌영 여운형 조봉암처럼 공산당이나 진보당 계열로 분류한 것인데, 저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인터넷에서 책 소개와 목차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1945년 해방공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난 70여년간 이 땅의 진정한 진보세력들은 누구인가? 진보라 자처하며 종북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은 누구이며, 제3세력은 누군가? 국내 진보인사들을 총망라하며 그들의 인맥과 행적을 상세히 기술한 저자 남시욱의 역저. 초판 발간 이후 지금까지 9년 동안 한국진보세력이 걸어온 발자취를 추가 설명하기 위해 쓰였다.”
제1부 건국과 전쟁 시기
Ⅰ. 해방 직후 좌익세력의 형성과 분화
Ⅱ. 건국 이후의 좌파세력
제2부 권위주의 통치와 산업화 시기
Ⅲ. 4.19 후의 혁신세력
Ⅳ. 권위주의 정권과 좌파세력
제3부 민주화와 세계화 시기
Ⅴ. 민주화 과정의 변혁세력
Ⅵ. 민주주의 공고화와 진보세력
제4부 진보정권 시기
Ⅶ. 김대중 정부와 진보세력
Ⅷ. 노무현 정부와 진보세력
제5부 북핵과 안보위기 시기
Ⅸ.이명박·박근혜 정권하의 진보세력
Ⅹ. 9년 만에 정권 되찾은 진보세력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책 소개와 목차만 살펴봐도 저자의 편향된 시각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진보세력’이나 ’진보정권’이라고 규정한 것이 참 이채로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문화일보> 10월26일 치 주말 섹션에 실린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31면과 32면 두 개 면에 걸친 대형 인터뷰였습니다. 31면의 제목은 “文정부, 김정은 비핵화 선의만 믿고 무장해제… 안보 구멍”이었고, 32면의 제목은 “왜 대한민국 진보정권의 인권은 휴전선 앞에 가서 멈추나”였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도 문재인 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한 것입니다. 인터뷰 내용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권 정책에 대한 논란이 있다. 어떻게 보나.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 협상하면서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겠다. 하지만 국내의 북한 인권 예산도 다 없애고 재단 사무실도 없애고 이건 문제다. 예산 108억 원 중 100억 원 덜어내고 겨우 8억 원 남겼다. 선진국은 진보세력이 인권에 더 관심이 있는데 왜 대한민국 진보정권의 인권은 휴전선 앞에 가서 멈추나. 탈북민 출신 기자 논란도 그렇다. 북한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정부가 스스로 돌발 상황을 우려해 배제했다고 하던데 이해할 수가 없다. 스스로 알아서 북한에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한 건데, 대단히 잘못됐다고 본다.”
- 한국의 진보가 북의 핵, 세습, 인권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경우가 더러 있다.
“한국은 북한과 접경에 있는 반공의 최전선 같은 지역이다. 내가 유럽에서 오래 생활하지 않았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나 진보 중에 북한을 지지하는 곳은 거의 없다. 유럽 공산당은 북한과 거의 단절했다. 진보는 반인권, 세습 이런 것과는 대척점에 있다. 세습과 불평등의 나라 북한은 공산주의의 완전한 이단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는 용공도 아니고 거의 다 친공(親共) 쪽이다. 그게 참 특이하다. 외국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북한 권력층도 내심 한국의 진보가 왜 저러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태영호 전 공사가 “한국의 진보는 용공도 아니고 거의 다 친공(親共) 쪽이다”라고 말한 대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도 그가 우리 내부 사정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남시욱 전 사장이나 태영호 전 공사처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진보정권, 종북, 친공으로 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입니다.
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종북’이나 ‘친공’이라는 단어는 너무 터무니없는 말이라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참 궁금합니다. 제가 가진 상식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진보정권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중도개혁’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50~1960년대에 ‘민주당 신파’ 출신 보수 정치인이었습니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패한 뒤 정치적 탄압을 받는 바람에 자기 뜻과 관계없이 ‘재야인사’가 됐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그를 ‘용공’ ‘빨갱이’로 몰았지만, 진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아무도 김대중 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정부가 진보정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진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퇴임 이후 <진보의 미래>라는 책을 준비하면서부터입니다.
그가 남긴 메모를 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정권이었나”, “제3의 길, 유럽의 진보주의를 기준으로 평가해 보자”,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평가를 받은 정부,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 “한국에서 진보의 시대는 가능할 것인가” 등의 내용이 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정부를 진보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출판한 <문재인의 운명>에는 ‘진보·개혁 진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을 ‘진보’, 노무현 정부를 ‘개혁’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3년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줄곧 ‘민주정부 10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좌파는커녕 중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중도우파 노선 정치세력이 극우 세력으로부터 ‘종북좌파’로 몰리는 건, 한국만의 후진적 정치 현실일 뿐”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자,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진보정권인지 아닌지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우선 ‘진보’란 무엇일까요? 학술적인 얘기는 집어치우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진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쓰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그들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진보라고 합니다. ‘사회주의 진보’입니다. 이른바 보수 정당이나 재벌은 경제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는 규제 완화만 해주고 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시장에 깊숙이 개입해 시장을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에 진보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정부가 북한에 온건한 정책을 쓰면 진보라고 합니다. ‘종북 진보’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고 ‘퍼주기’를 했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과 정상회담을 했고 남북교류를 서두르기 때문에 진보라고 합니다.
셋째, 그들은 정부가 미국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면 진보라고 합니다. ‘반미 진보’입니다. 남북교류 및 군사협정의 속도가 북미 비핵화 협상의 속도에 비해 너무 빠르다며 진보라고 비판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며 진보라고 비판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경제 및 한반도 정책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아예 ‘진보정권’이라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규정일까요? 공자가 말하는 정명(正名)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진보라면 박정희 정부가 가장 진보적인 정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부가 나서서 자원을 배분했고 관치와 정경유착으로 재벌을 육성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건강보험)도 실시했습니다. 그들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거의 사회주의 아닌가요?
노태우 정부는 토지공개념을 추진했고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강제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최경환 경제 부총리는 재벌의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박정희 노태우 박근혜 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둘째,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것이 진보라면 박정희 정부의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은 뭘까요?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 북한을 방문했던 것은 또 뭘까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외세(外勢)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거의 ‘종북’ 아닌가요?
셋째, 미국과의 불협화음이 진보라면 미국과 의논하지 않고 반공포로를 석방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진보인가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과의 마찰을 무릅쓰고 핵을 개발하고 우리 힘으로 무기를 생산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국에 작전권 환수를 요구한 일도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미국과 사이가 너무 나빠서 당시 미국 행정부는 북한보다 우리나라를 더 골칫거리로 생각했습니다.
쉽게 말해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정부는 지금 문재인 정부보다 훨씬 더 미국과 사이가 나빴습니다. 재임 기간에 거의 ‘반미’였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진보의 기준은 이처럼 오락 가락입니다. 자기들과 정치적 이해가 다른 세력이나 사람들에게 그냥 ‘진보’라고 딱지를 붙이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저기 아무 데나 진보의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들은 기득권 세력입니다. 진보의 상대적인 개념은 보수입니다. 기득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진보로 만들면 자신들은 보수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가짜 보수’입니다.
해방 직후 좌우대립 공간에서 친일파가 우파로 스며든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진짜 보수는 백범 김구였습니다. 친일파는 가짜 보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은 ‘가짜 보수 기득권 세력’이거나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분열과 갈라치기는 그들의 생존공간입니다.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분단 체제에 기생해서 오랫동안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지금도 국민을 보수와 진보로 갈라서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어야 그들이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결코 분열과 증오를 부추기는 기득권 세력의 선동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흡연은 질병입니다. 치료는 금연입니다.”
“졸음은 질병입니다. 치료는 휴식입니다.”
광고 문구를 흉내 내 보겠습니다.
“분열과 증오는 질병입니다. 치료는 통합과 사랑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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