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효창동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책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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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올해 11회째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인재진 총감독
초기적자 딛고 작년 27만 방문
문체부 선정 ‘한국 최우수 축제’
28일 ‘문화다움기획상131’ 받아
재즈가수 아내 나윤선 내조 큰힘
대학 졸업을 앞두고 광고회사, 신문사, 방송사, 심지어 비행기 조종사 시험까지 줄기차게 도전했지만, 1차 문턱도 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의류회사는 6개월 만에 그만뒀다. “10살 위 팀장을 보며 ‘나도 10년 뒤에는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틀에 박힌 일, 예측 가능한 미래가 싫었죠. 나는 무조건 다르게 살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거든요.” 친구들과 ‘대학생판 벼룩시장’ 격인 대학생활정보지를 창간했지만, 3개월 만에 ‘쫄딱’ 망했다. 자신의 말마따나 “형극의 길”로 들어섰다.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결혼식부터 프로야구 응원단, 프로축구 개막전까지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밴드를 섭외·공급하는 일을 했다. “그 무렵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차인표가 색소폰 부는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재즈 열풍이 불었어요. 당시 누구도 안 하던 재즈 기획 일을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아무도 안 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돈이 안 됐어요. 노점에서 어묵도 팔고, 밤에 택시 불법영업(나라시)도 하며 번 돈으로 재즈 공연을 했다가 싹 말아먹는 식이었죠.” 그러다 98년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인 ‘딸기극장’을 인수해 365일 재즈 공연판을 펼치기 시작했다. 매일 공연을 열고 보면서 재즈라는 음악을 본격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2001년 우연히 초청받아 가게 된 핀란드 포리재즈페스티벌에서 신세계를 발견했다. 인구 8만명의 작은 도시에 20만명이 몰리는 축제였다. 이후 “우리에게도 이런 축제가 필요하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지만,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문화기획 성공전략 특강을 하면서 여느 때처럼 재즈 페스티벌 얘기를 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경기도 가평군 공무원이 두 달 뒤 전화를 걸어 왔다. “가평에서도 재즈 페스티벌을 할 수 있을까요?” 축구장 등 몇몇 장소를 둘러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그 공무원이 말했다. “비가 오면 잠기는 섬이 있는데, 거기라도 가보시겠어요?” 남한강에 방치되다시피 한 자라섬을 보고 인 감독은 얼떨결에 외쳤다. “우와, 여기 정말 멋지네요.” 마침내 2004년 9월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첫 막을 올렸다. 첫날 어느 정도 관객이 들어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이튿날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곳곳에서 물이 차오르고, 무대에는 전기가 찌릿찌릿 올랐다. 진흙창에 차가 빠져서 못 나오기 일쑤였다. 공연 전면 취소를 발표하니 관객들은 거세게 항의하며 환불을 요구했다. 대기하던 연주자들에게 공연 취소를 알리러 가는 차 안에서 한 직원이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나도 눈물이 나려는데 꾹 참았죠.” 첫 회 축제의 관객은 2만여명, 절반의 성공이었다. 4회까지 야속한 비가 내렸지만 축제는 계속됐고, 관객들은 꾸준히 늘었다. 경춘선 전철이 생기면서 관객이 폭발적으로 늘어 8회부터 20만명을 넘기기 시작했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재즈는 잘 몰라도 “자연, 가족, 휴식, 음악이 어우러지는 소풍”으로 찾는 이들도 많다. 지난해 10회 축제 때는 27만명이 찾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대한민국 최우수 축제’로도 꼽혔다. “지역사회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면 지역 축제가 존속할 수 없어요.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재즈 막걸리’, ‘재즈 와인’, ‘재즈 잣 피자’ 등을 선보이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 내 음악 전공 학생에게 ‘재즈 장학금’을 주는 이유죠. 이제는 일흔 넘는 할머니도 재즈가 뭔지는 몰라도 우리 동네 큰 축제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됐어요.” 인 감독은 8년 전 아예 가평으로 이사했다. 축제 초기 적자가 너무 심해 어머니 명의의 서울 집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 주민이 되니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하더라. 크게 한탕 노리는 허황된 생각을 버리고, 때를 기다리는 소박한 마음을 지니게 됐다”고 했다. 그에게 아내 나윤선씨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인 나씨의 매니지먼트 일을 하다 연애까지 하게 됐고, 2010년 외국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는 ‘당신은 특별한 일을 하고 있고,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거야’라며 늘 용기를 줬어요. 제가 지금껏 가장 잘한 일은 아내와 결혼한 거예요. 아내가 외국 활동이 많아 1년 중 7개월을 떨어져 지내고 있어 늘 애틋하고 그립죠.” 인 감독은 오는 28일 서울 대학로 일석기념관에서 ‘2014 문화다움기획상 131’을 수상한다. 여러 분야에서 문화기획자로 10년 넘게 일한 전문가 131명이 투표로 매년 문화기획자 1명을 선정해 시상하는 자리다. 인 감독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모두가 즐겁게 지내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 기획자라고 생각한다”며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획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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