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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25 19:05 수정 : 2015.01.19 16:24

지난 24일 오후 광주시 망월동 5·18 구묘역에서 열린 ‘박승희·조성만·윤용하·정상순 합동 추모제’에 참석한 고 박승희씨의 아버지 박심배(70·오른쪽)씨와 어머니 이양순(70)씨가 오월의 햇살이 쏟아지는 딸의 묘 위로 삐죽이 올라온 잔디를 뽑고 있다. 묘지 앞 영정 속의 박승희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한겨레 ] 23년 전 분신한 승희씨 그리며
장학재단 만든 박심배 씨

딸은 스무살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딸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지? 자주 좀 봐야 하는데….” 딸은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 건강하셔야 해요.” 딸의 손을 잡으려다가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박심배(70·사진·전남 목포시)씨는 “요즘 부쩍 딸의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딸 승희는 23년 전인 1991년 4월29일 훌쩍 떠나버렸다. 전남대 식품영양학과 2학년 때였다. 전남대 교지 <용봉>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딸은 전남대 도서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분신했다. 그 해 4월 26일 당시 명지대 1학년생이던 강경대(당시 20살)씨가 시위 도중 경찰 ‘백골단’에 의해 쇠파이프로 집단구타 당해 숨져 정국이 들끓던 때였다. “살인정권을 규탄한다”며 분신했던 딸은 21일만인 5월25일 숨을 거뒀다. 딸은 유서와 함께 코스모스 씨앗을 남겼다. 딸을 가슴에 묻었지만, 코스모스를 볼 때면 딸이 더욱 그리워진다.

“내 몸이 안 좋응께, 딸이 자주 꿈에서 보이는가 봐요.”

지난 24일 오후 광주시 망월동 5·18 구묘역에서 열린 ‘박승희·조성만·윤용하·정상순 합동 추모제’에서 만난 박씨는 “아빠에게 힘을 주려고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분신정국’에서 세상을 떴던 고인들을 함께 기억하자는 의미의 첫 합동 추모제였다.

박씨는 “지난 2월 건강검진을 하다가 이상증세를 발견해 한 대학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을 하지도 못할 정도를 악화된 상태여서, 지금은 항암치료만 받고 있다. “나의 의지로, 평상시와 똑같이 생활해요. 암이라는 사실을 잊으려고 하고요….” 그는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난생 처음 만난 환자들에게 말을 붙여 “우리, 한번 이겨봅시다”라고 말할 정도로 낙천적이다. 새까맣게 타 버린 딸의 주검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그래,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딸 묻고도 15년간 사망신고 못해
폐암 투병…“세월 갈수록 더 생각”
민주화 보상금 전액에 동문뜻 보태

“부모 마음이 그러네요. 지금이나 그 때나 똑같고, 세월이 흐를수록 생각이 더 나요….” 말을 잇지 못하고 아버지는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박씨는 오랫동안 딸을 보내지 못했다. 딸을 땅에 묻은 뒤에도 주민등록증을 없애질 못했다. 딸의 여운마저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2005년 9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지만, 주민등록증이 말소되지 않아 보상금을 수령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이제, 딸을 보내라. 보상금을 받아 좋은 곳에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2006년 그는 결국 딸의 사망신고를 했다. 그리고는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딸의 보상금 전액을 2011년 추모사업회에 기부했다.

추모사업회는 박승희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했다. 이날 합동 추모식은 박승희장학재단의 설립을 선포하는 날이었다. 민주화운동 보상금 기부액 1억4000만원에 딸의 출신학교인 정명여고 동창생과 전남대 동문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았다.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2억원이 마련돼 지난 13일 광주시청에서 설립허가를 받았다. 새달 1일 장학재단 설립 등기가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해 해직됐다가 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대변인을 맡아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었던 홍광석(65·소설가)씨가 장학재단 이사장을 맡는다. 박승희의 고교 동창 전민제(43)씨는 “승희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명훈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의장은 “박승희 동지가 남긴 정신은 ‘비겁하지 말아라. 가만히 있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투병중인데도 지팡이를 짚고 추모식에 참석한 오종렬 진보연대 총의장은 “우리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먼저 간 자식들에게 떳떳한 부모가 됩시다”라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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