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4 18:37
수정 : 2015.01.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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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환경운동을 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6년째 에너지 정책을 연구중인 염광희씨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과감하게 ‘탈원전 선언’을 한 독일 정치 지도자의 미래지향적인 선택을 한국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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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독일 대학서 에너지정책 배우는 염광희 환경운동가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뒤 “탈원전”
주민들의 재생에너지 사업이 핵심
태양광·풍력발전소 짓고 이익 나눠
한국은 소비증가 내세워 원전 확충
핵폐기물 완벽한 처리기술은 없어
재난 발생하기 전에 빨리 폐쇄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곧바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 떠났다. 이곳에 수출한 원자로 설치 행사 참석을 위해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가 주된 화두로 떠올랐지만, 사고가 곧 재앙인 원전에 대한 여전한 ‘안전불감증’은 박 대통령의 행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원전으로 인한 재난은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 그 피해 규모를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한국 정부는 유독 원전에 관대하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대형 원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안전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에서 ‘에너지 정책’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염광희(39) 연구원은 이처럼 거꾸로 가는 한국 정부의 행보를 하루빨리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2년부터 6년 동안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가로 일했던 그는 2008년부터 유럽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독일의 ‘탈원전 대안 에너지 개발 정책’을 현장에서 학습하고 있다.
한겨레정책연구소가 6월 한달간 개설하는 ‘미래 한국의 좌표, 독일서 찾다’ 강좌 시리즈 기획 자문을 위해 지난달 베를린 현지에서 만난 그는 “환경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책과 정치에 달렸다”고 말했다.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결정하는 가치관과 정책이 에너지 문제의 핵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뒤 독일에서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가 소집됐다. 교수, 산업계, 환경 관료 등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는 8주간의 활동 끝에 17기의 원전 모두를 10년 안에 폐쇄할 것을 권고했다. 원전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어떤 기간시설보다 피해의 공간적, 시간적 범위가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 권고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국의 대응은 정반대였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위기가 기회’라는 발언을 통해 원전 확대에 힘을 실었다. 2024년까지 모두 13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을 강행중이다. 국내 최고령 핵 발전소인 고리 원전 1호기는 2007년 설계수명 30년이 끝난 뒤에도 10년간 더 가동하도록 승인됐다. 2년 전 전원공급장치 문제로 가동이 멈췄지만, 지난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되던 그날 재가동에 들어갔다. 사고와 고장만 130번에 이르지만, 고리 원전은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염 연구원은 “원전은 하루빨리 폐쇄해야 한다”며 “원자로 폭발이라는 재앙이 아니더라도, 아직 핵 폐기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우리 세대는 물론 후손들까지 원전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에 동의했느냐”며 되물었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원전이 여전히 활개를 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원피아’(원자력 마피아)의 카르텔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에너지 산업체, 연구자, 관료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분야라 일반인들은 접근하기도 쉽지 않아요. 정부 지원금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다시 로비를 하고 카르텔은 날로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독일은 원전을 없애고 205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5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그 핵심에 ‘시민발전소’ 사업이 있다. 지역 주민이 함께 출자해 조합을 만들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를 설치하고 그 이익을 분배하는 형태다. “외부 기업이 우리 땅에 와서 돈만 벌어간다는 부정적 인식을 없앨 뿐 아니라, 주민들의 새로운 수익사업으로도 효과적입니다. 프로젝트 개발 기업과 지역 주민이 상생하는 윈윈 경제죠.”
환경 규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두 나라 간 차이가 크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규제개혁’을 선언하자마자 열린 ‘환경규제개혁회의’에서는 환경 규제의 10%를 올해 안에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환경 규제가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환경 규제가 엄격하기로 이름난 독일은 광활한 원시 자연만 남아 있어야 해요.” 염 연구원은 환경 문제로 인한 갈등은 오히려 규제가 약해서 일어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한다. 규제가 강하면 오히려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적다. 독일은 재산권 보호가 철저해 마을의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새로운 개발사업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주민들의 동의는 형식적으로 받고 삽질부터 합니다. 그러다 주민들의 반대에 직면하고 공사는 중단되고,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거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지, 지금 있는 규제를 없애는 게 아닙니다.”
그는 지금이라도 한국 상황에 맞는 새로운 에너지 정책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은 1인당 에너지 소비가 점차 줄어드는 시나리오로 정책을 짜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갈수록 에너지 소비가 늘 것에 대비해 원전을 계속 더 짓겠다는 겁니다.”
메르켈 총리가 2011년 5월 탈핵 선언 당시 남긴 한마디가 바로 해답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후쿠시마 사고가 지금까지의 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우리에게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 객원연구원
heyday11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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