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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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장
이상일 사진가
군 복무 중 80년 광주서 사진채증
책임감에 30년째 ‘망월동’ 기록
내년에도 부산서 ‘광주’ 사진전 지역 첫 사진 전문 전시공간
“국립미술관에 사진분과 없어
사립서 예술·사회성 부담 문제” “그때 내가 찍은 채증 사진들이 작전에 활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군사작전에서 상대의 취약점이나 움직임 같은 것을 파악하는 데 사진이 활용되는 것이니…. 그러나 구체적으로 내가 찍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지난 5일 만난 이 관장은 “솔직히 죄책감이 있었고 또 80년 5월 이후 광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명령에 따라 정보수집을 했지만 광주에서 일어난 일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쓰러지고 맞고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으나 ‘광주’를 몰랐다. 그날 망월동에서 밤을 새울 때도 내 손엔 카메라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두번째 광주를 갔을 때부터 그는 망월동의 영정을 찍기 시작했다. 어떤 책임의식 같은 것을 느껴서 다만 찍었을 뿐이지 그 사진으로 뭘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2년 만에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대학에 입학해서 10년이나 어린 학생들과 경쟁하게 됐을 때 그에게 자신있는 건 ‘체력’과 ‘사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조직생활만 해온 그는 그때까지 일반인과 어울려 지낸 적이 거의 없었다.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학교에 갔고, 사진을 배웠으니 밥을 먹고 살기 위해 작업실을 열었다. 대구에서 광주로 갈 때면 산청에 들러 어머니 모습을 찍었고 90년대 대학원 과제로 온산공단 기록사진을 찍기도 했다. 스스로 사진가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그가 사진가로서 정체성을 자각하고 이름을 얻게 된 계기는 바로 ‘광주’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이상일의 망월동>을 전시했다. ‘5월 광주’라는 사회적 주제, 계엄군 출신이라는 개인적인 화제, 그리고 비엔날레 최우수 기획전 상을 받은 미학적 평가까지 겹쳐 일약 ‘스타’가 된 것이다. “그제야 내가 사진가가 됐구나 싶었다.” 2009년 동강사진상, 2011년 도쿄 니콘살롱에서 주최하는 ‘이나 노부오 상’을 받는 등 기록사진 전문 작가로 이력을 다져온 그는 2007년 부산대 대학원에서 예술학 박사(예술문화영상학과) 학위를 받고 대구예술대, 백제예술대, 경일대 등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강사 생활을 오래 하다가 전임교수도 몇 년 했다. 사진비평과 더불어 삶의 태도와 철학을 가르쳤다. 학생들과 처음 만나면 무조건 일대일 면담을 해서 혹시 그들에게 상처가 있는지를 살폈다. 상처는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치유가 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징후가 나타나는데도 애써 덮어버리면 쌓여서 큰 변고로 연결된다. 80년 광주도 그랬지만 이번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상처를 어루만진 뒤에는 바른 삶에 대해 강조했다. 삶의 태도가 어긋나면 아무리 사진작업이 좋아도 한순간에 무너진다. 사진가의 작품은 그의 삶이고 그의 얼굴이다.” 2010년 지역 최초의 사진 전문 전시공간인 고은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한 그는 현재 전시중인 <시선>(Sehen Zen·視禪)을 포함해 25회의 전시를 직접 기획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엔 사진분과가 없다. 미국·독일·프랑스 등에서는 국립미술관이 사진의 예술적·사회적 기능도 수행하고 있는데, 우리는 ‘고은’이라는 사립미술관에서 대중성과 사회성을 모두 안고 가야 하니 어려움이 많다. 사진 교육, 사진작가의 미래 등 한국 사진계의 여러 문제들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더 이상 작가의 유명세에 기대는 전시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목표다.” 그는 개인적으로 2013년 5월18일 11명의 작가가 함께 부산에서 연 <광주항쟁 33돌 기념 전시회-그날의 훌라송>의 여운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사진의 기능은 현실사회와 역사적·문화인류학적 가치까지 포함하고 있다. 어떻게 들여다보는가의 문제다. ‘33년’은 종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기로, 모든 것이 다 틀어지고 새로 태어난다고 한다. 광주의 문제를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 특히 지역감정에 이용당한 영남에서 풀고 싶었다.” 아직도 해마다 5월이면 몸살과 가슴앓이를 한다는 그는 “언제부턴가 마음의 안식처가 됐다”는 망월동을 수시로 찾아가 찍고 있다. 그는 내년 5월에도 부산에서 ‘망월동’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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