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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18 18:58 수정 : 2015.01.19 16:13

윤건차 가나가와대 교수

[짬] ‘재일조선인 정신사’ 집필 윤건차 가나가와대 교수

“이른바 ‘자이니치(재일조선인) 정신사’ 같은 것을 정리하고자 한다.” 2009년 7월 만났을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 막 출간한 책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에서 그는 “자이니치를 존재의 불안, 과객의 불안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이니치를 낳은 시대를 직시하고 이와 격투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의미있는 흔적을 남겨가는 것이 나의 책무가 아닐까”라며 이런 얘기도 했다. “5년 남은 정년 때까지 마지막 일로 생각한다. 자이니치 1세는 이미 쓸 사람이 없고, 3세는 잘 모르니 2세인 내가 할 수밖에 없는데, 2세로서도 거의 마지막 작업이 될 것이다.”

윤건차(70·사진) 일본 가나가와대 교수. 지난 13일 <한겨레>를 다시 찾은 그는 <재일의 정신사-3개의 국가 사이에서>란 제목을 단 200자 원고지 2800장 분량의 방대한 책의 집필 계획서를 내밀었다. ‘탈식민지화의 과제와 좌익 내셔널리즘-김두용의 경우’(220장), ‘3개의 국가 사이 끼인 고투와 비참-작가 김달수의 경우’(110장), ‘조선인 관리와 밀항, 외국인 등록 제도’(190장), ‘재일조선인 운동과 일본공산당-계급인가 민족인가’(200장) 등 8개 항목은 이미 집필이 끝났고, 그 4배쯤으로 보이는 집필 예정 항목들이 계획서에 촘촘히 적혀 있었다.

재일조선인 30여명 구술 받아
2세로서의 자신의 역사도 포함해
주체성·자기확립 등 정신사 집중
광복 70년 맞는 내년 출간 계획
“일 식민지배·모순 보여주는 증인
보통사람들 모르는 이야기 담을 것”

“왜 자이니치 정신사인가? 그 자이니치 이야기를 재일조선인 2세인 ‘나’를 주어로 놓고 써나가는 책이다. 자이니치들을 직접 만나 구술 형태로 풀어나간다. 내 자서전도 포함된다. 인생을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 역사에 대한 책임, 재일조선인이 살아온 역사, 정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서술하려 한다.”

윤 교수는 “폭넓은 ‘민족통일전선체’로서의 동포단체는 왜 형성되지 못했을까 같은 문제도 들어 있다”며 “이는 선배들을 위한 ‘진혼’이자 그들의 ‘재생’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했다. 재일조선인의 주체성·자기회복·자기확립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는 그와 자이니치들의 영원한 숙제였다.

그는 재일조선인을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의 소산이며 일본의 가혹한 이민족 지배를 가장 예리한 형태로 체현한 역사의 살아 있는 증인”이자 “근대 일본의 모순을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존재”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일본이 해결하지 못한 최대의 사상적 과제라 할 ‘천황제와 조선(한반도) 문제’, 즉 과거사 문제나 한-일 간 사상적 교착 문제도 재일조선인을 응시할 때 가장 선명하게 그 실상이 떠오를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계획의 반이 넘는 1600장 정도는 이미 집필을 끝냈다. 내년 7월까지 이와나미(암파) 출판사에 완성된 원고를 넘겨, 늦어도 ‘광복’ 70돌인 내년 말까지는 출간을 완료할 생각이다.” 그는 “앞으로 자이니치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을 때 이 책을 가장 먼저 찾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그는 집필을 위해 30여명의 자이니치들을 만나 구술을 받았다. “대개 70대 후반 80대 초반의 재일조선인 1, 2세들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뒤 도일한 이른바 ‘뉴커머’들도 있지만 주로 그런 노년층이다. 민단, 총련, 밀항자들 가리지 않고 다 만났다. 책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게 될 것이다.”

교토대와 도쿄대 대학원을 나와 역사가 가지무라 히데키가 있던 가나가와대학에서 일본과 한국 근현대 사상사와 한일관계사를 강의해 온 그는 올해 정년퇴임한다. “퇴임 뒤에 갈 자리를 마련해 놓은 건 아니다. 칠순 노인을 누가 반기겠는가. 지금까지 해온 연구 작업과 집필을 계속할 것이다. 리쓰메이칸대에서 몇 사람이 함께 쓰는 연구실을 마련해 줬다.”

지난해 고향 교토에 새로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는 그는 “처음으로 책을 모두 모아 제대로 정리해놓고 연구에 몰두했다. 대신 학교는 교토에서 신칸센을 타고 1주일에 한 번씩 (도쿄 인근) 가나가와까지 가서 호텔에서 1박하며 하루 낮과 밤 주야간 강의를 강행했다”고 일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방한에서 오는 10월 상순 서울대에서 ‘재일동포가 이야기하는 일본과 한국’을 주제로 세 차례 연속 특강을 하기로 확정했다. 같은 시기에 해외교포문제연구소가 주최하는 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4박5일 닷새간 길지 않은 이번 일정 중에도 그는 한국에 유학와 있는 재일조선인들을 열심히 만났다. 서준식·조용수·김동식씨 등에 관한 자료도 모았다. 특히 8~9년 전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만났던 서준식씨를 그는 애타게 찾고 있었다. “서씨는 중요한 사람이다. 만나본 이들 가운데 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자이니치와 일본, 한일, 남북 문제 등에 대해 그만큼 깊게 진실되게 고민한 사람도 드물다. 그런데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10월에 다시 왔을 때는 꼭 만나보고 싶다. 자이니치의 고민과 좌절, 그들의 진실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

윤 교수는 한국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국가보안법 등으로 징역살이를 한 재일조선인 정치범 피해자들 얘기를 쓰는 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좌절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거나 북과의 관계, 북에 있는 가족 일부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 책의 한글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내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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