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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25 18:57 수정 : 2015.01.19 16:21

손기웅 DMZ협의회 대표

[짬] 손기웅 DMZ협의회 대표

지금 한반도에는 신뢰도 없고 프로세스도 없다. 남북관계는 2010년 천안함 사건 뒤 이명박 정부가 취한 5·24 조치에 갇혀 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 탓이라고 말하겠지만, 이 정부가 비판했던 이명박 정부보다 남북관계가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다.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를 짓누르고 있고 임기가 1년 반도 채 안 된 시점임에도 임기 말의 레임덕에 빠진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24일 오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의 오피스빌딩인 용비어천가 10층에 있는 ㈔코리아디엠제트(DMZ·비무장지대)협의회에서 손기웅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만났다. 그는 이 협의회의 공동대표이자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또한 ㈔한국디엠제트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사무실 문 안쪽에는 예스러운 붓글씨체로 ‘비무장 지대 변화의 첫걸음’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그에게 이 첫걸음은 박근혜 대통령의 디엠제트 세계평화공원 구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출발점이라는 뜻도 담겨 있는 듯했다.

미·중·유엔 최종 보장해야 하고
세계인 모두 찾게 돼 의미
김정은 위원장도 새 리더십 기회
5·24조치 뒤 경협 막혀있지만
북도 평화공원 반대하지는 않아
올해안 남북워크숍 열겠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북쪽이 5·24 조치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사과와 재발 방지 등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남쪽이 일방적으로 이 조처를 해제할 수도 없어요. 서해상의 유감스러운 사태에 대해 남북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요. 반면에 갈등과 분쟁의 상징인 비무장지대에서 일부 지역이지만 세계평화공원에 합의한다면 5·24 조치와 별개로 남북의 협력과 대북지원이 가능할 것이고 이에 대해선 국민들도 동의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5·24 조치를 풀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봐요.”

그는 비무장지대를 중심에 놓고 남북관계를 본다. “디엠제트가 평화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어떤 남북간의 합의, 선언, 경협사업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어요.”

얼마 전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남북정상회담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사업”이라는 말도 했다. 물론 거기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세계평화공원은 서해 사태와 별개로 남북이 접근할 수 있는 우회로이며 세계평화공원이 최종 합의에 이르려면 남북의 정상이 만나야 한다.” 게다가 미국, 중국, 유엔이 보장해야 하는 것이고 남북만이 아닌 세계인이 모두 이곳을 찾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그는 “북쪽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게는 전세계에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은 바람일 뿐이다. 지난해 5월8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의 일환으로 디엠제트 세계평화공원 구상을 처음으로 제시했을 때 북의 반응은 “개성공단이 엉망인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였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한달 뒤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에 이를 잘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고, 7월27일 정전협정 기념일에 이를 공식 천명한 뒤 8·15 경축사에서는 직접 북쪽에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제의했다. 그러곤 멈춰서 있는 상태다.

북이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지난 2010년 한국계 어린이 평화운동가로 명망이 있는 조너선 리가 비무장지대 평화의 숲을 제안하자 북은 그를 공식 초청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그 뜻을 전하도록 하기도 했다. 다만 북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미국이 먼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하면 “비무장지대 전체를 평화의 숲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손 공동대표가 지난해 9월 말 북한을 방문한 학자를 통해 확인한 북한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과 맞물려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북의 공식적인 의사표명은 지난 4월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공개질문장에 나와 있다. 세계평화공원 조성보다 “서해 5개 섬 열점지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것이 더 절실한 문제”라는 것이다. 평화공원 그 자체에 반대하는 말은 없다.

손 공동대표를 만난 것도 북쪽과 모종의 논의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6월 중순 3국에서 과학기술 협력을 주제로 한 국제회의에서 북쪽 사람들과 만났다. 그는 이 회의에서 그린데탕트(환경 생태협력을 통한 긴장 완화)를 비롯해 접경지역 공유하천 관련 남북교류협력 방안과 세계평화공원 구상, 지난 3월 말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에 대해 발표했다. 드레스덴 연설 뒤 북은 극단적인 언사로 공식적으로 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 북쪽 대표들은 경청했으며 토론 과정에서도 비난하지 않았다. ‘알면 다친다’는 식으로 말을 아꼈지만 그는 올해 내 비무장지대 접경지역 협력을 주제로 한 남북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와 그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 뮌헨에서 베를린자유대학으로 옮겨 정치생태학을 전공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이 대학 정치학과엔 국제정치·비교정치 말고도 정치생태 분야가 있었다. 그에게 분단과 통일은 베를린으로 갈 때 동독 지역을 통과하면서 경험한 섬뜩함과 견고한 장벽이 붕괴된 날 현장에서의 생생함으로 각인돼 있다. 그가 98년부터 비무장지대를 화두로 삼아 남북관계를 환경생태적으로 평화적으로 바꿔가는 데 매달려 온 이유일 것이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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