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석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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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독립운동가 최재형장학회 황광석 이사
연해주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
선생뜻 알리려 학생들에게 장학금
“희생·배려 가치 경시하는 사회
선생의 정신 다시 일으켜세워야” 오는 5일 서울 양재동의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창립 3주년 기념식을 여는 ‘최재형 장학회’(회장 김창송 성원교역 회장)의 황광석(52) 이사는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도 최재형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고 했다. “최재형은 러시아의 언어와 실정에 익숙하여 러시아 관원의 신임을 얻었으므로 우리 겨레의 노동자를 위하여 비호한 일이 매우 많았다.” 황 이사에 따르면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집안 자식으로 태어난 최재형은 가뭄과 기근이 심했던 1869년 가족들과 연해주 한인마을 지신허로 이주했다. 11살에 집을 뛰쳐나와 러시아 무역상선 선장 부부의 도움으로 선원이 됐고 이후 6년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근대 문물을 익히고 교육을 받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무역상사에서도 일한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바로 밑의 얀치혜 지역 도로공사에서 통역관 겸 관리책임자로 능력을 인정받아 얀치혜의 도헌(읍장 또는 군수)가 됐다. “러시아어에 능통했고 성실한데다 인텔리였고 한인들 사이에 신망도 높았기 때문에 러시아 당국이 그를 전폭 신뢰했던 것 같다. 대거 투입된 한인 노무자들 관리를 그에게 맡겼는데 그는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해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군 식료품 납품 등의 사업을 벌이면서 연해주 최고의 아시아인 갑부가 됐다. “<대동공보> 등의 한인 신문들도 발간했고, 각종 항일단체의 총장, 회장 등을 도맡았다. 그때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페치카’ 즉 러시아 난로였다. 최페치카는 러시아 한인들의 정신적, 재정적 지주였다. 한인들 집집마다 그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러시아에 귀화(러시아명은 최 표트르 세메노비츠)했고,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한인대표로 참석해 러시아정부 훈장까지 받은 그는 1904~5년 러일전쟁 이후 항일독립운동에 본격 가담한다. 그는 간도관리사였던 이범윤이 부총장, 헤이그 밀사였던 이위종이 회장을 맡았던 연해주의 의병조직 ‘동의회’ 총장이었으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전폭 지원하고 그 가족을 돌봤다. 항일운동 거점이었던 ‘권업회’도 조직했다. 나중에 임시정부 국무총리가 된 이동휘와 함께 전러시아 한족대표자회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최재형 역시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1914년엔 러시아 한인들의 이주 50주년 기념회 회장으로 기념행사 조직위원회를 만들었다. 그 6년 뒤, 3·1운동이 일어난 이듬해, 볼셰비키 혁명 뒤 서방의 반혁명 개입으로 어수선했던 연해주에 밀고 들어온 일본군은 러시아 한인 저항세력의 중심이던 러시아국적의 최재형을 전격 체포해 바로 처형해버렸다. “올해는 바로 러시아 한인 이주 150주년, 최재형이 한인 이주 기념행사를 조직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오는 9월 21일 연해주 한인들의 첫 이주지인 우수리스크에서 러시아 정부와 한국 정부가 공인하고 지원하는 큰 기념행사가 열린다.” 때마침 최재형 장학회가 바라고 바라던 최재형 고택 구입건이 오랜 협상 끝에 지난달 말 타결됐다. “우리 외교부 예산으로 사들인 것인데, 최재형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거점 하나를 새로 확보했다”며 황 이사는 기뻐했다. 2011년 6월 29일 창립된 최재형 장학회는 2010년 9월, 매년 가던 연해주 고려인 한가위(추석) 행사 참관여행이 설립 계기가 됐다. “그해에 함께 갔던 분들 중에 장학회 중심 멤버가 된 분들이 많다. 공개 모집한 여행단에 70~80대의 중소기업 경영자나 원로들이 알음알음으로 많이 오셨다. 그분들이 현지에 가서 최재형을 알게 되고, 같은 기업인이어서인지 더욱 크게 공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제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나’며 뜻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들을 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직접 가 보면 누구나 감동을 느끼고 동참하고 싶어진다.” 중국 조선족과 러시아의 고려인(한인), 재일동포 등 해외 동포들을 연결하고 돕기 위해 2001년 설립한 ‘동북아 평화연대’ 사무총장 등을 지낸 황 이사는 여행단을 꾸리면서 자연히 그 일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장학금은 2010년 11월 3명의 현지 한인 대학생들에게 매달 6500루블(약 25만원)씩 주면서 시작됐다. 러시아는 고교까진 무상이지만 대학 학비는 꽤 비싼 편이다. 연간 등록금이 330만원 정도 되는데, 러시아에선 큰 돈이다. 매달 25만원씩의 장학금도 작은 돈이 아니다. 선발은 현지 고려인단체가 성실성과 집안사정 등을 보고 하는데, 3년 반 정도 지난 지금까지 모두 30여명이 혜택을 받았다. 평균 수혜기간이 3년 정도인데 지금 6명 정도가 받고 있다. 최근에는 현지 한인 학생들만이 아니라 한국에 유학온 연해주 한인 학생들도 대상에 넣었다. 대부분 장학금을 받고 오지만 생활비가 없어 아르바이트 등에 시간을 빼앗겨야 하는 그들에겐 매달 30만원 정도되는 장학금이 적지않은 도움이 된다.” ‘독서 르네상스운동’이라는 단체 사무총장도 맡고 있는 황 이사는 장학회는 “장학금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고려 청년들에게 잊혀진 민족혼을 되살리고, 러시아 국적에다 냉전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잘 모르는 최재형 선생을 널리 알리겠다는 목적도 갖고 있다”고 했다. 세월호 사태를 언급하며 그는 말했다. “희생과 타인에 대한 배려, 공익 등의 가치를 너무 경시하고 돈과 성적, 물질, 성과 위주로 내달려온 우리 사회가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성찰할 기회인데, 최재형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본받을 만한 위인이 필요하다. 그것을 외국에서만 찾을 이유는 없다.” 창립 3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5일에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서울셀렉션 펴냄) 출판 기념회, 그리고 독립운동가들 관련 책들만 모은 도서 기획전시회도 열린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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