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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08 18:37 수정 : 2015.01.19 16:18

안연선 프랑크푸르트대 교수

[짬] 일본군 위안부 연구 권위자 안연선 프랑크푸르트대 교수

최근 일본군 ‘위안부’ 논쟁이 잇따라 불붙었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언, 아베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 보고서,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소송까지 쉴 새 없이 논란이 거듭됐다.

이 분야 연구의 권위자인 안연선(51·프랑크푸르트대 한국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 정부가 그들의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도 이에 반응하며 동반 강화되었는데,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두고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위안부 경험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드러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술적 장에서 벌어지는 논쟁이 아니라 법정 공방으로 문제가 번진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해당 여성들의 ‘나이’가 적은지 많은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이나, ‘피해’냐 ‘성매매’냐를 놓고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시각도 누구든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식민주의·성이슈 이분법은 곤란
‘여성의 정조’ 강조도 가부장적

“전쟁 폭력 맞서는 방식 파괴력 커”
국내 피해자 ‘나비기금’은 좋은 예

성폭력 상담 중 위안부 문제 몰두
유럽서 일본군 인터뷰 출간 반향

“정반대의 입장일지라도 여성의 ‘순결성’을 중요시하는 방법론적 틀은 같다. 순진무구한 소녀를 데려간 건 인신매매고, 이른바 ‘매춘 여성’이라면 피해가 아니라는 식의 이원론, 이분법적 시각이 문제다.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안 교수는 1992년 한국정신대연구회에서 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증언집을 내는 데 참여했고,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994년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위안부’ 관련 논문을 쓴 뒤 유럽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일본에서 현장연구를 통해 일본 군인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당당함과 위악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를 모아 한국에서 2003년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를 출간했고, 2012년 암스테르담의 국제학술 출판사인 ‘브릴’에서는 일본 식민지사 관련 책을 낸 바 있다.

그는 식민지 여성의 억압을 ‘식민주의’ 아니면 ‘성 이슈’로 다루려는 이분법적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족주의 담론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여성의 순결한 정조를 짓밟은 것에 분노하는 가부장의 억압적인 시각이며, ‘여성’의 피해만 강조해서는 식민주의 정책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일본 수구 정권이 군사사료 등을 틀어쥐고 입맛에 맞게 ‘증거싸움’을 걸어오는 것에 대해 한국이 너무 수세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군 사료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성병을 불명예라 여겨 기록하지 않고 단순 전사자로 분류하는 등 문제가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 일부 학자·운동가들도 일본 자료를 우위에 두는 듯하다. 그렇게 집착할수록 이 문제의 중요한 흐름을 놓친다. 역사의 없어진 페이지를 쓰는 데 가장 중요한 사료는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우리가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안 교수는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에서 여는 아시아·아프리카 비정부 공익부문 여성인재 양성 과정인 제6회 이화글로벌임파워먼트 프로그램(EGEP)에 강사로 참여해 전시 성폭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는 “동부 콩고 지방에서 전시 성폭력을 당한 피해 여성들이 식량을 더 잘 조달받기 위해 난민촌에서 성적 서비스를 하는데, 이를 도덕적으로 ‘매춘’이라 비난한다면 피해자의 경험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는 어느 날 갑자기 ‘매춘부’로 비난받는 등 편협한 시각에 시달린다. 그 피해가 ‘강제에 의한 성폭력’이냐 아니냐며 둘로 나눌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많다. 일본군 ‘위안부’는 모집 통로가 다양하고 복잡해 논란을 벌이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군이 체계적으로 간여해 동원했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군 ‘위안부’의 운동 과정을 보면, 1990년대 처음 문제제기가 되었을 때부터 민족주의 레토릭을 구사하는 사례가 많았다. 안 교수는 “민족주의 담론이 한국 대중의 지지를 받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식민지의 잔재로서 이를 규정해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시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 넓혀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국제적 압력을 이끌어내는 데도 전략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은 초국적 연대 만들기에 앞장서왔다. 다른 나라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 활동이나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매우 중요한 사례다.

“2012년 우리나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다른 나라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연대기금인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콩고 내전 때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보낸 할머니들의 편지는 특히 감동적이었다. 위안부 운동이 단순히 민족주의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 문제를 해결하는 초국적 연대로 발전하는 커다란 한 걸음이 됐던 것이다.”

이런 성과에도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다시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 안 교수는 큰 우려를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겨우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국제연대를 통해 좁은 시각의 지평을 넓혀두었는데, 다시 옛날의 틀을 되가져오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환기하려는 시도를 두고서도 안 교수는 “단순히 민족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는지, 그게 아니면 전시 성폭력에 대한 국제연대의 입장을 갖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전쟁 폭력에 맞서는 국제연대를 강조하려 한다면 대단히 긍정적이다. 내전이 계속되는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전시 성폭력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 사안은 파괴력이 크고 연대의 장도 넓다. 우리의 문제를 알려나가는 데도 많은 국제적 지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 문제와 남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도덕적 우월성’이다.”

이유진 기자 sfrog@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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