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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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신동호 시인
교류 헌신하다 5·24 조치로 중단
그동안 남북교류 소회 등 담아
18년만에 시집 ‘장촌냉면집…’ 내
“남북 화해협력을 업으로 삼을 것” “2000년 6·15 공동선언을 보면서, ‘이제 남북 문제를 위해 내 삶을 바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4년 전대협 세대가 주축이 되어 만든 재단에서 문화협력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죠. 짧은 기간 적잖은 성과를 냈는데,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인한 ‘5·24 대북 제재 조치’ 이후 신규 사업이 전면 중단돼 안타깝습니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 문화국장 출신으로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세번의 옥살이를 했던 그가 북한 저작권 문제에 눈을 뜬 것은 뒤늦게 들어간 대학원에서 남한 내 북한 출판물 현황 연구 용역을 하던 98년 무렵이었다. “북한문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어서 북한 저작물의 남한 내 출간 현황을 조사해 보았어요. 놀랍게도 저 혼자 찾은 것만 해도 500여종이나 되더군요. 물론 저작권자인 북쪽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들이었지요.” 이를 계기로 합법적인 저작권 교류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거듭하던 그에게 6·15 선언은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통일부에서 북한주민 접촉 승인을 받은 그는 그동안 조사해 놓은 저작권 침해 사례와 저작권 교류 기획서를 들고 무작정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을 찾아갔다. 첫 방문에서는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지만, 2001년 금강산과 평양에서 북쪽 작가들과 만난 데 이어 2003년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창립을 준비하면서 저작권 교류 제안을 정식으로 내자 긍정적인 반응이 왔다. “마침 북한이 세계 저작권협약인 베른조약에 가입하고 저작권법도 제정한 게 2003년이었어요.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남쪽에서 출판해 온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대표의 협조가 큰 도움이 되었지요. 2005년 5월 북쪽 저작권 사무국과 ‘임꺽정’ 저작권 문제에 합의하고, 벽초 선생의 손자인 홍석중 선생의 소설 <황진이>의 영화 각색권에도 아울러 합의한 것이 남북 저작권 교류의 물꼬를 튼 셈입니다.” 출판사 자음과모음에서 낸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서산대사> 같은 역사소설들, 보리출판사의 ‘겨레고전문학선집’ 시리즈 그리고 한의학 관련서 등 200여종의 책과 사진, 방송 저작권을 남쪽에 들여오고, ‘심장에 남는 사람’ ‘휘파람’ ‘생이란 무엇인가’ 같은 북쪽 가요를 바이브, 마야, 제이케이(JK) 김동욱 같은 인기 가수들이 새로 부른 음반 <동인>(瞳人)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재단 사업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발이 날리는 개성공단에서/ 러시아 샤프카를 쓴/ 조선노동당원을 만났다/ 정권이 바뀌던 해 세밑이었다/ 반갑게 손을 잡고/ 긴급히 토론할 일을 묻자/ 그냥 보고 싶어서였단다/ 봉동관에서 송악소주를 마시고/ 낮부터 넥타이를 풀었다/(…)/ 정권이 바뀌던 해 세밑이었다/ 조선노동당원의 어깨를 부여잡고/ 언제 또 만나냐고 묻자/ 대답 대신 바람이 불었다”(‘색동 저고리’ 부분) 그동안 평양에는 열대여섯번, 개성과 금강산행은 50~60차례를 헤아린다. 그러나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봄 평양 방문을 끝으로 북녘 땅에는 더 이상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대신, 2010년 지지체 선거에서 당선한 송영길 인천시장의 남북관계 특보로 파견됐다. 중국 선양 등지에서 북쪽 사람들을 만나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가하도록 설득했다. “5·24 조치 이후 그나마 북쪽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한 사람은 아마도 내가 거의 유일할 것”이라는 그는 8일 북한의 수락 발표에 흐믓해했다. “한때는 열다섯명 정도가 일했지만 지금은 상근 네명에 불과할 정도로 재단 사업이 줄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도 있었죠. 남북교류 활동을 ‘추억’으로 회고하게끔 되자 ’시’가 다시 온 거예요. 이번 시집 원고를 정리한 뒤에도 산문시 형태로 60편 정도를 새로 썼을 정도예요.” 재단에서는 지금 <조선왕조실록> 북쪽 소장본의 남쪽 전시를 추진하고 있다. 문화관광부와 통일부 등 관련 부처의 반응도 긍정적이고 국회에서도 관련 예산을 확보해 준 상태다. 이르면 올 가을쯤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표권과 특허권 같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남북에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소홀했던 시도 더 부지런히 쓰면서, 남북간 화해와 협력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필생의 업으로 삼을 생각이에요.” bong@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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