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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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안두희 평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1917~96) 평전이 나왔다. “지금껏 안두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책 한 권 없었다. 그를 응징하려던 추적자들 몇 사람이 남긴 단편적인 기록들, 신문이나 잡지 등에 난 기사들이 거의 전부다. 그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본 책은 이게 처음이다.”
지난 6월26일 백범 암살 65주기에 맞춰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책보세 펴냄)를 써낸 김삼웅(71·사진) 전 독립기념관장은 “김구 선생 암살은 백범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우리 국가·민족의 한 세기를 망쳐버린 사건”이었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백범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6·25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르고, 1950년 5월로 예정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때 이승만은 대패해 권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백범 암살은 지금껏 제대로된 조사기록 하나 없다.”
백범은 잘 짜인 각본 따라 암살돼 친일파·이승만·미국 등의 합작품
안은 암살범으로 여러모로 ‘적격’
10년형도 안 살고 잘 먹고 잘살아 해방정국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돈은 4·19혁명 뒤 그레고리 핸더슨의 초청으로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를 훗날 회고록에 남겼다. 핸더슨은 백범 사건 당시 주한 미 대사관 부영사였다. “헨더슨이 ‘왜 이승만 박사가 하와이로 망명했는지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자기가 알기로는, 김구 암살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만의 하와이 망명은 백범 암살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난처해졌을 ‘안두희의 고용자’ 주한 미군 또는 미국도 원한 일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승만은 49년 5월 김약수 국회 부의장을 비롯해 노일환 등 현역 의원 13명을 북한 공산당에서 잠입시킨 프락치로 몰아 체포했다. 이어 6월6일 경찰을 동원해 헌법기관인 반민특위를 짓밟았다. 그리고 6월26일 김구가 암살당했다. 결코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암살은 당시의 친일·반공 우파 권력 실세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연장하는 데 유일하고도 가장 큰 위협이었던 ‘제1 정적’ 백범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한 편의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자행됐다.” 김 전 관장이 정리한 안두희의 이력은 이렇다. ‘1917년 3월 신의주에서 40여리 떨어진 평북 용천군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미쓰비시 등 일제 기업들 제품을 취급하며 돈을 벌어 신의주 호상이 된 그의 아버지는 토지측량기사 자격까지 딴 뒤 도정업에 손을 대고 쌀 군납까지 하면서 평안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거부가 됐다. 아버지 덕에 상업학교를 나와 만주로, 베이징으로 흘러다니며 허랑방탕한 세월을 보냈고, 금융조합 서기 노릇도 했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해방과 함께 진주한 소련군이 재산을 몰수하자 47년 단신 월남해 이북 출신 반공우파 조직인 서북청년단에 들어가 종로지부 총무까지 올라간다. 육사 8기생으로 입대해 이승만의 사조직이라 할 친일·친미파 소굴 ‘8·8구락부’의 정예요원으로 간택받아, 소위 임관 뒤 3개월 남짓 만에 백범을 암살한다. ’ 그는 재미 방선주 박사와 함께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자료를 뒤져 ‘김구 암살 관련 배경 자료’, 이른바 <실리 보고서>를 발굴한 정병준 교수가 정리한 ‘암살범 안두희의 적격성’도 소개했다. “첫째, 인텔리 출신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권투·검도·격투기로 몸을 다진 싸움꾼이기도 했다. 둘째, 부유한 지주집안 출신으로 반공·반북이 신념화된 월남 실향민이었다. 셋째, 미 군정기 서북청년단의 핵심 간부였고, 대북 첩보공작을 주도한 전문가였다. 넷째, 미군 971CIC(방첩대) 파견대와 긴밀한 연계를 맺어온 정보요원으로 미국이 보증한 친미인사였다. 다섯째, 대북 테러의 본산인 ‘백의사’의 단원이자 반공극우 테러 암살단원이었다. 일곱째, 사건 조작·은폐에 유리한 현역 육군 소위였다.” 한국전쟁 때 종군했던 고 강원용 목사 역시 회고록에서, 국군 북상 때 평북 순천에서 제2사령부 인사참모 박남표 장군에게 ‘김구 선생을 죽인 안두희가 지금 이 부대에 있는데, 이 대통령이 ‘내 허락 없이는 인사이동을 하지 말라’는 지령을 내린 사람이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이승만은 한강 다리를 폭파시키고 피난갈 때도 김창룡에게 형무소의 안두희을 빼내오게 해서 데리고 갔다. 휴전 뒤 군에 복귀해 대령 대우를 받다가 1년7개월만에 잔형면제로 풀려난 안두희는 그게 말썽이 나자 군납업자로 변신해 잘 먹고 잘 살았다. “아직도 명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백범 암살은 친일파와 극우반공주의자들, 이승만과 미국의 합작품이었을 것이다. 빨갱이들 때문에 재산을 몰수당했다고 믿었을, 일종의 ‘싸이코 패스’ 안두희는 그 하수인이었을 뿐이다.” 여생의 목표인 ‘평전 20권 쓰기’를 ‘30권 쓰기’로 늘려잡았다는 김 전 관장은 “정통성이 결여된 권력은 사악해지고, 그 권력은 다시 악인을 양산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와 이후 박근혜 정부의 인사 소동에 대해 그는 “그게 한국 보수의 수준이다. 세상이 갈수록 6월항쟁 전야처럼 돼 간다”고도 걱정했다. sdha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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