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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7 19:05 수정 : 2015.01.15 14:40

재일 언론인 정경모(오른쪽) 선생은 구순의 노익장으로 번역한 황석영 소설 <장길산>의 일본어판 출간을 “죽기 전에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2009년 요코하마 히요시의 자택을 방문한 황석영 작가와 정원에서 함께한 모습. 요코하마/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짬]황석영 소설 번역 재일동포 정경모씨

“12년 공들인 작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모양이외다.”

<찢겨진 산하> <시대의 불침번> <일본의 본질을 묻는다> 등의 저서로 널리 알려진 재일동포 논객이자 ‘마지막 망명객’ 정경모(사진) 선생이 며칠 전 장문의 손편지를 보내왔다. 황석영의 대하 장편소설 <장길산>의 일본어 번역본(총 10권) 출간이 애초 계약을 맺은 후지와라쇼텐(藤原書店) 출판사의 돌연한 계약 조건 변경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일 출판사 갑자기 계약조건 바꿔
대산문화재단에 3억원 지원 요구
어처구니없는 조건 물거품될 판

“왜곡된 한·일 고대사 바로잡기
내 여생의 마지막 집필될 것”

정 선생은 25일 전화 통화에서 다시 한번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2003년 전부터 번역을 시작해 5~6년 전 이미 완료해놓고 출간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 전 후지와라쇼텐 쪽에서 느닷없이 새로운 조건을 통보해왔다. <장길산>이 한국의 대표적 ‘국민문학’이라 할 만큼 감동적이며, 내 일본어 번역도 출중한 만큼, 일본어판을 일개 출판사에 맡길 게 아니라 일종의 국가 프로젝트로 삼아 한국의 대산문화재단에서 출판비용을 전액 부담해준다면 자기네가 출판을 맡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권당 300만엔씩, 모두 3000만엔을 대산문화재단에서 지원받게 해달라는 얘기였다. 정 선생은 “하도 터무니없는 조건이어서, 어디다 어떻게 하소연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후지와라쇼텐은 <한겨레> ‘길을 찾아서’에 연재된 뒤 책으로 나온 정씨의 회고록 <시대의 불침번>(2010)의 일본어판을 <역사의 불침번>(2011)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출판사다. 그뿐만 아니라 정 선생은 이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오랫동안 기고하는 등 수십년간 돈독한 인연을 쌓아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후지와라에서 새로운 출판조건을 제시한 것일까?

“애초 후지와라 출판사는 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옮긴이에 대한 수고료로 1500만원, 출판사에 대해서는 지원비로 6천달러를 지원받기로 했다. 그런데 대산 쪽에서 지원하는 한국 도서의 국외번역 출판 대상 작품에 <장길산>의 일어판도 포함된 사실을 알고, 지원금을 무려 5배나 더 내놓으라는, 엉뚱한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

정 선생은 인터넷, 스마트폰 등 뉴미디어의 영향으로 활자본 출판 사정이 어려워진 건 일본도 마찬가지라며, 후지와라의 고충에 대해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이와나미(岩波) 출판사 등과 다시 출간 협의를 해볼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너무 오랜 세월을 허송한 셈이 되는데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고 안타까워했다.

해방 이전 게이오대 유학 시절 하숙집이자 처갓집인 요코하마 히요시의 자택에서, 그는 요즘 두문불출하며 또 다른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점-고대사에서부터 현대사까지>(가제)인데, 이미 절반쯤 썼다. 현대사에 대해서는 그동안 얘기도 많이 하고 책도 썼으나, 한-일 고대사에 대해선 별로 언급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고대사를 철저히 파고들어 일본이 왜곡해온 것들을 바로잡아 놓겠다.” 그는 “일본의 고대사 왜곡·은폐·거짓말을 보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며 특유의 카랑카랑한 어조를 높였다.

예컨대 일본 역대 천황 중에 첫번째 실존 인물로 추정되는 ‘제15대 오진(應神)’은 호태왕(광개토왕·391~412년 재위)의 대대적인 백제 정벌에 쫓겨 일본으로 망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진’이라는 이름부터가 그가 원래 살았던 한반도 웅진(熊津·곰나루·지금의 공주)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본다. 백제 옛 도읍인 곰나루를 고대 일본은 구마나리(久麻那利·고무나리)로 불렀다. 오진을 낳은 ‘진구(신공) 황후’가 삼한을 정벌했다는 신화는 기실 호태왕에게 쫓겨 일본으로 가야 했던 오진 일행의 패배를 승리로 뒤집어 놓은 후대의 ‘가짜 복수’였던 셈이다. “일본 극우 지배자들은 한-일 고대사의 이런 사실들을 감춘 채 가르치지 않거나 거꾸로 가르치고 있다”고 정 선생은 설명했다.

“이 책이 나의 ‘백조의 노래’가 될 것”이라고 그는 다짐하듯 말했다. 1828년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의 마지막 작품집인 <백조의 노래>는, 백조가 평생 죽기 직전에만 한번 운다는 전설에서 따온 이름으로, 최고 걸작 14곡이 담겨 있다. 따라서 그의 말에는 마지막으로 필생의 역작을 쓰고 있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지난 11일로 구순 생일을 지낸 그는 “건강은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지 않느냐. 앞으로도 적어도 2~3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면서도 “죽기 전에 꼭 <장길산> 출판계약만이라도 확고히 해놓고 눈을 감고 싶다”고 말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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