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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9 18:50 수정 : 2015.01.15 14:44

박종일 권독사

[짬]‘지혜의 숲’ 자원봉사자 박종일 권독사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다. 처음엔 호기심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온 나들이객이 많았지만, 지금은 책을 알고 즐기는 사람들이 주류다. 기증자들 책도 수준이 높다. 내가 개인적으로 갖고 싶은 책도 수두룩하다.”

지난 6월19일 문을 연 파주 출판도시의 새로운 독서문화공간 ‘지혜의 숲’에 거의 매일 ‘출근’하는 자원봉사자 박종일(65·사진) 권독사(勸讀士)는 개관 이후 한 달 남짓의 체험 결과를 “대만족”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28일 오후 4시 무렵, 출판도시 중심시설인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공간을 재활용한 ‘지혜의 숲’ 로비와 복도, 다목적홀에 마련된 독서공간들은 월요일인데도 책읽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군포에서 파주까지 오가며 주 2회 4시간씩 근무한다는 주부 권독사 임아무개(43)씨는 “평일엔 주말의 절반 정도인데, 요즘은 방학기간이어서 학생들과 함께 오는 학부모들이 많아 북적인다”고 했다. 박씨는 “평일 하루평균 이용자는 200여명, 주말에는 500~600명으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개관 한달된 파주 독서문화공간서
시설 정보·책 찾는 방법 등 가이드
컴퓨터업 퇴직뒤 책 번역하다 참여

“예상보다 많은 사람 찾아와 성공적
전국서 벤치마킹하는 모델 됐으면”

“지난 토요일 오후에 책 기증자인 셰익스피어 전문가 김연호 전북대 명예교수(영문학)가 강의를 했는데, 150~160명 정도가 모였다. 별다른 공고도 없이 내방객들에게 간단한 메모 형태로 알렸을 뿐인데도 그렇게 모였다. 다 자발적인 참가자들로, 질의응답까지 약 2시간 정도 진지하게 얘기를 나눴다.”

박씨는 “그동안 석경징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 남극세종기지 월동대장 장순근 박사 등으로 이어진 기증자들의 강의 프로그램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그런데 ‘권독사’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우선 관람객들에게 이 공간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어떤 분들이 어떤 책들을 기증했는지, 보고 싶은 책을 어떻게 찾아 읽는지를 알려주고 안내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전문교육을 받은 사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곳은 일반적인 도서관, 또는 대안 도서관이 아니다. 명칭을 어찌해야 할지 우리도 고민이지만, 그냥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고, 또 그렇게 참여하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독서공간쯤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제2섹트 홀 한켠에선 기증본 목록 작성작업도 한창이다. 박씨는 “도서관 업무 관련 전문 용역기관에 의뢰해 지난주부터 10여명이 매일 상근하면서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차근차근 기반을 갖추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목록에는 기증자, 책의 제목, 출판사 등 기본정보들이 모두 들어간다. 재단 관계자는 “조만간 목록이 완성되면 공간 곳곳에 설치할 컴퓨터 모니터에서 기증자나 책 이름을 입력하면 누구나 도서 기본정보와 위치 등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공간 전체가 전문 연구자나 학자들의 기증도서로 다 채워지고 그 기증자들이 직접 권독사로 자원봉사를 하면 좋겠다. 죽기 전에 남북통일을 보는 것말고 남은 소원이 있다면 권독사와 이용자들이 어울려 정보와 담소를 나누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컴퓨터 제조없체에서 29년간 주로 기획관리 분야 일을 하다 2002년 퇴직한 박씨는 “언젠가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될 때를 위해” 평생토록 모은 책 1만5천여권을 읽으며 영어·중국어 책들을 번역하는 일을 해왔다. <먼슬리 리뷰>의 공동편집자인 존 벨러미 포스터 미국 오리건대 교수의 <다윈주의와 지적 설계론> <마르크스의 생태학> <대금융 위기>, 중국공산당 이론가 후셩의 <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 장지청의 <근데 백년 중국문물 유실사> 등을 번역 출간했다. 이를 위해 중국 선양의 대학에서 3학기 동안 홀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중국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주 5일, 하루 4시간 이상 근무해온 박씨는 지혜의 숲 개관 한달을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우선 내방객들이 초기 단순 나들이객에서 책을 보려는 중장년층으로 바뀌며 열람석의 3분의 2를 늘 채우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통상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열고 권독사들도 주로 그 시간에만 근무하지만, 새벽까지 개방되는 지지향(숙소)쪽 복도에서 밤새도록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보다 우려했던 책의 파손이나 분실 사례가 거의 없다. 일부 어린이 그림책 말고는. 놀랍게도 보고 난 책을 제자리에 직접 꽃아놓고, 자발적으로 책 정리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다.”

전체 권독사는 40명정도로, 매일 최소 5명 이상씩 자원봉사하는데, 나이는 20~60대 다양하고 성별은 1 대 4로 여성이 압도적이다. 재단쪽은 근무일마다 차비와 식사비로 1만원 정도를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지혜의 숲 개관에 7억원 정도가 들었다고 하는데, 그 정도 비용으로 이만큼 균질적이고 좋은 책들을 모아 공유하기가 쉬운 일인가. 도서관 하나 짓는 데만 적어도 수백억원, 연간 유지비만 최소한 수십억원이 들 텐데. 물론 도서관을 많이 지어야 하지만, 당장 어렵다면 이런 형태의 시도도 값진 것 아닌가. 전문가들의 지적과 비판은 당연히 경청하고 가능한 한 개선·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 한 번 와서 직접 봐 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용자들에게 직접 물어봐 주길 바란다. 지혜의 숲이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하는 하나의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

글·사진/한승동 기자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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