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아메리칸대 교수
|
[짬] 일엽스님 저서 영문판 펴낸 박진영 아메리칸대 교수
결혼·동거 등 사적 연애사만 회자돼
만공 스님 문하에서 화두선 참선
일엽 ‘자아찾기 수행기’ 60년대 인기
“저서 보니 독창적 철학 일가 이뤄”
평전 영문 초고작업도 이미 끝내 김일엽(본명 김원주)은 평안도 용강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이화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당대 최고의 인텔리 여성이었다. 나혜석, 윤심덕 등과 함께 <신여자>(1920년)란 잡지를 창간해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을 주창하며 여성해방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1933년 돌연 만공 스님 문하로 출가해 71년 입적할 때까지 수덕사에서 참선 수행을 했다. 이런 반전의 인생행로 탓에 그의 수많은 문학 작품들은 지금껏 결혼과 동거를 되풀이한 선정적인 연애사의 소재로 회자돼왔고, 여성학 쪽에서는 ‘여성해방운동을 하는 시늉만 내다 산으로 도피해버렸다’는 식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애초 연세대 영문과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88년 유학을 가서 뒤늦게 다시 근현대 동양철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어요. 그래서 저 역시 일엽 스님에 대해 그런 피상적인 시각 또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죠. 그런데 불교철학의 관점에서 그의 말년 저서와 글을 분석해보니 ‘한국 비구니 선승 1세대’로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수행철학으로 일가를 이룬 ‘대가’의 모습이 드러났어요.” 한국 화두선의 대가인 경허 스님의 맥을 잇는 만공 스님은 ‘불립문자’의 계를 내렸고, 그에 따라 절필을 했던 일엽은 55년 대중포교를 위해 일간지 기고를 재개해 71년 입적할 때까지 활발한 저술 활동을 했다. 그 가운데 60년 <어느 수도인의 회상>(원제 ‘어느 실성인의 회상’)과 62년 <청춘을 불사르고>는 자신의 파란 많은 삶을 반추하며 ‘독립된 자아 찾기’로 이어진 수행기로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2001년부터 방학 때면 서울의 헌책방가를 뒤지고 미국에서도 중고책 사이트를 검색해 일엽이 남긴 거의 모든 글을 찾아봤다는 박 교수는 행간 속에 녹여놓은 삶의 경험을 엮다 보니 자연스럽게 ‘평전’으로 정리됐다고 전했다. 이를테면, 일엽이 1918년 24살 때 40대 중년의 연희전문 교수이자 의족을 한 장애인 이노익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게 된 배경에는 중학교 때 어머니를, 고등학교 때 아버지마저 여의고 고아 신세였던 사정이 있었고, 남편의 후원으로 결혼 1년 만에 유학을 다녀와 <신여자> 발행도 할 수 있었지만 끝내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고충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사상적 궤적은 모태신앙인 기독교에서 출발해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 서양철학을 흡수한 뒤 불교에 귀의하며 여성이나 개인의 차원을 넘어갑니다. ‘나를 다스려 ‘대아’를 찾게 되면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창조성을 갖게 된다. 그런 경지를 문화인이라 하는데, 석가모니는 대문화인이라 할 수 있다’고 하죠.” 박 교수는 특히 미국 학계에서는 ‘여성 선승’으로서 일엽의 사상에 관심이 많다고 소개했다. 이미 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인터넷 자료 사이트에 서평이 나오기도 했는데 ‘불교와 여성’의 관계를 연구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단다. “유학 시절 절친 나혜석과 함께 큰 영향을 받았던 당시 일본의 신여성 운동가 히라츠카 라이초와 관계 등 동양의 근대 여성 철학자로서 일엽 스님의 면모를 계속 연구해볼 참입니다.” 박 교수는 오는 10일 일엽 스님이 출가해 삭발을 하고 좌불의 자세로 입적한 수덕사 환희대(견성암)에서 열리는 백중맞이 법문에 참가해 ‘일엽 스님의 삶과 불교 사상’을 주제로 대중강의를 할 예정이다. 글·사진/김경애 기자ccandori@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