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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12 19:08 수정 : 2015.01.15 14:39

충암고 야구부 이영복 감독

[짬] ‘제자 사랑’ 충암고 야구부 감독 이영복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덕수고와 충암고의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및 주말리그 왕중왕전 결승전. 두 팀의 에이스인 덕수고 엄상백 선수와 충암고 조한욱 선수가 피 말리는 투수전을 이어갔다. 결국 덕수고의 4-0 승리. 전날 준결승에서 조 선수는 129개를 던진 반면 엄 선수는 77개밖에 던지지 않은 체력 차이가 컸다. 엄 선수가 우승을 만끽하는 사이 조 선수는 3루 쪽 더그아웃에서 고개를 떨군 채 서럽게 울었다. 충암고 이영복(45·사진) 감독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제자의 등을 쉼없이 다독였다. 이 모습은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야구팬들에게 생생히 전달됐다. 청룡기 출전 57년 만에 ‘3년 연속 우승’에 성공한 덕수고도 화제였지만 누리꾼들에겐 조 선수의 눈물과 이 감독의 ‘제자 사랑’이 더 큰 화제가 됐다. 누리꾼들은 “조한욱의 눈물, 참스승이 옆에 있기에 언젠가는 꼭 웃을 것이다”, “이영복 감독은 제자의 아픔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요즘 보기 드문 감독이다” 등의 댓글로 응원했다.

강압훈련·상명하복 대신
‘인성야구’ 펼치는 감독님
청룡기 패배 다독인 장면 화제

“패배로 더 많은 것
배울 수 있다면 져도 괜찮아”

충암고 야구부 이영복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응암동 충암고 운동장에서 제자들과 훈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anki@hani.co.kr
지난 5일 오후 찾아간 충암고 운동장은 여름방학이라 썰렁했다. 야구 명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열악한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웬만한 야구 명문고들이 인조잔디 구장쯤은 갖춘 것과는 달리 맨땅에 마운드와 베이스는 물론이고 그물망조차 없었다. 그러나 야구부 선수들이 모여들고 어느덧 훈련이 시작되자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열기는 뜨거웠다.

이 감독은 결승전 당시 상황에 대해 “결승전 패배보다 제자의 눈물이 더 가슴 아팠다”고 했다. 그는 “우승은 중요하지 않다. 제자들이 패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져도 괜찮다”고 말했다.

사실 올해 충암고 전력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충암고는 이번 대회에서 매 경기 ‘드라마’를 쓰며 야구부 45년 역사상 처음으로 청룡기 결승에 올랐다. 주변에서는 “(충암고 감독 출신인) 김성근 감독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고 이 감독을 칭찬했다.

충암고의 저력은 이 감독의 ‘인성 야구’에서 나온다. “강압적인 훈련 방식과 상명하복식 팀 분위기로는 절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게 이 감독의 지론이다. 그는 “야구보다 사람이 먼저”를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메이저리그를 예로 들었다. “로니 치즌홀이라는 선수는 고교와 대학 때 뛰어난 기량에도 범죄에 연루되는 등 인성 문제가 도마에 올라 마이너리그에서 인성교육부터 다시 했어요. 지금은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져 클리블랜드 중심타자로 활약하고 있죠. 엘에이(LA) 다저스가 지난해 시즌 초반 부진한 성적에도 야시엘 푸이그를 곧바로 승격시키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감독의 제자 중에도 2명이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다. 이학주(24·탬파베이 레이스)와 문찬종(23·휴스턴 애스트로스)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학주는 빠르면 올 시즌 안에 메이저리그 승격을 기대하고 있다. 둘은 “고교 시절의 인성교육이 미국에서 야구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충암고 야구부 이영복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응암동 충암고 운동장에서 제자들과 훈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anki@hani.co.kr
청룡기 결승에서 덕수고에 뼈아픈 패배를 맛본 선수들은 불과 나흘 만에 설욕의 기회를 잡았다. 지난 2일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에서 청룡기 결승전 스코어와 같은 ‘4-0’으로 패배를 되갚았다. 올해 전국대회 4강 경험이 있는 서울지역 6개 팀이 치른 이 대회에서 충암고는 내친김에 신일고와 서울고를 잇따라 제압하고 10월 제주 전국체전에 서울시 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조한욱 선수의 서러운 눈물과 이 감독의 제자 사랑’이 선수들에게 큰 동기 유발이 된 것이다.

충암고를 졸업한 뒤 홍익대를 나온 그가 3년 전 모교에서 ‘자랑스런 홍익인’으로 선정된 것도 성적보다는 이런 인성교육이 높은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이 감독은 올해 꼭 25년째 ‘충암맨’으로 살고 있다. 45년 인생의 절반이 넘는다. 충암고 선수로 3년, 충암고 코치 4년, 충암초 감독 4년, 충암중 감독 3년 그리고 25일이면 충암고 감독으로 딱 11년이 된다.

충암고 야구부 역사는 그의 나이와 같은 45년이 됐다. 충암고는 그 기간 동안 전국대회에서 10번 정상에 올랐는데, 그 가운데 6번이 지난 11년간 이 감독이 일군 성적이다. 그는 2011년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으로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의 지도를 받은 선수는 코치 시절 신윤호(39·SK), 조성환(38·은퇴), 박명환(37·은퇴), 장성호(37·한화), 김주찬(33·KIA), 윤요섭(32·LG) 등이 대표적이고, 감독이 된 뒤에는 메이저리그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학주(24)를 비롯해 홍상삼(24), 최현진(22), 변진수(21·이상 두산), 문성현(23·넥센), 정용운(24·KIA), 강병의(22·LG) 등이 있다.

충암고 야구부 이영복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응암동 충암고 운동장에서 제자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anki@hani.co.kr
하지만 이 감독이 기억하는 제자는 따로 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진저리를 치고 가출한 선수,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려고 한 선수들이다.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마음을 돌렸고, 남몰래 주머니를 털어 야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스승의 날 저를 찾아오는 녀석들이죠”라며 웃었다.

이 감독의 훈련 방식은 독특하다. 체력훈련은 고되지만 재미있는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식 훈련’을 연상시킨다. 선수들은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는 또 틈만 나면 선수들과 레크리에이션을 즐긴다. “감독과 선수를 떠나 충암고 선후배로서 정을 나눌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한두번씩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며 선수들과 거리감을 없앤다.

“제 꿈이요? 제자들이 바른 인성으로 사회에서 공동체적 삶을 잘 살아가는 걸 보는 것이죠. 저는 야구 감독이기 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잖아요.”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김동훈 기자cano@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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