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18 19:31
수정 : 2015.01.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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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정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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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사계’ 담는 사진작가 이정수
“더 이상 백의민족의 성산 백두산이 아니다. 중국의 10대 명산, 창바이(장백)산만 보인다. 천지는 인파의 콩나물시루 같았다.”
내년 광복 70돌에 맞춰 백두산의 사계를 기록하고 있는 사진작가 이정수(왼쪽 사진)씨는 지난달 25~31일 북파 코스로 불리는 천문봉을 통해 천지에 올랐으나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4륜구동 차를 타고 천문봉에 오르는 데만 2~3시간, 천지를 볼 수 있는 곳까지 가려면 갈지자로 길게 늘어서 끝이 안 보이는 줄에서 한참씩 기다려야 했다. 포즈 잡고 기념사진 찍기조차 만만치 않을 정도였다.
“관광객들이 밀려오기 전 새벽 일찍 올라가 찍은 뒤, 천지 주변을 벗어나 외곽에서 작업하다 관광객들이 하산하기 시작하는 오후 4시 이후에 다시 찍는 숨바꼭질을 했다. 주말엔 천지를 오르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그는 숙소도 장백에서 여섯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겨우 구할 수 있었다. 백두산에 오른 것만 40차례가 넘는 그였지만 이번처럼 “사람에 치인 적은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북·서 등산로 중국인들 인산인해
주변 리조트·생수공장 등 천지개벽
“북 경계 장군봉은 사람 거의 없어
꽉 막힌 남북교류 현실 안타까워”
북파에서 2시간 남짓 떨어진 서파 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천지까지 가려면 1400여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북파보다는 늘 한산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계단까지도 인해로 덮였다. “우리나라 단체여행객들도 있었지만 70% 정도는 중국인 가족 단위 관광객으로 보였다. 상하이 등 멀리 대륙 남쪽에서 온 2층 전세버스들이 주차장에 늘어섰는데 운전사 2명이 교대로 운전하며 장거리를 달려왔다고 했다.”
한-중 수교 이래 20여년 한국인들의 관광 명소였던 백두산에 이처럼 중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최근 2~3년 사이로 알려졌다. 10년 가까이 백두산 야생화 트레킹 관광사업을 해온 마중여행사의 김창원 본부장은 “7~8월 성수기 관광객 10명 중 9명은 중국인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조선족자치주 연변에서 발행되는 <연변일보>는 지난 8일 올여름 백두산의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급증한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상반기 전체로 보면 지난해보다 20% 가까이 늘어났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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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사진작가 이정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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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도 안 되는 강폭을 사이에 두고 북한 쪽 접경을 따라 올라가는 남파 코스는 더욱이 폭우로 길이 무너져서 관광이 임시 중단된 상태였다. 남파로 가려면 서파 산문을 지나 백산 쪽으로 두어 시간 넘게 가야 한다. 이씨는 어렵사리 출입 허가를 얻었으나 이번엔 북쪽 경비군인들에게 촬영한 내용을 삭제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이제 중국에서는 어디서든 백두산을 오를 수 있게 됐다. 연변자치주의 화룡(허룽)시는 지난 6월부터 북한의 혜산을 거쳐 대홍단군~삼지연군을 지나 백두산에 오르는 동파 코스 관광도 시작했다.
그는 새달 초 다시 백두산을 간다. 이번엔 기존 고화질(HD) 카메라에 비해 4배 이상 선명한 초고화질(4K) 카메라로 작업을 한다. 해방둥이인 그는 내년 광복 70돌 기념 기획에 맞춰 방송을 통해 백두산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번엔 인천에서, 백두산 서파 코스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백산공항까지 중국 동방항공의 직항편을 이용한다. 연길을 거쳤던 기존 일정은 거의 하루가 걸렸지만 이젠 4시간 남짓밖에 안 걸린다. 비용도 저렴하다.
백산공항 옆에는 중국의 완다그룹이 2012년 지은 아시아 최정상급 규모의 리조트 타운도 들어서 있다. 43면 슬로프의 아시아 최대 스키장과 모두 54홀 규모의 골프장 그리고 온천장, 워터파크, 영화관, 쇼핑거리, 최고급 호텔들까지 들어서고 있다. 중국의 식품회사들은 고급 생수 수요에 맞춰 앞다퉈 백두산의 천연수를 퍼서 팔고 있다. 이미 들어선 생수공장만 10곳이 넘는다.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전지현을 등장시켜 ‘동북공정’ 논란을 빚기도 했던 바로 그 창바이산 생수 광고도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회사인 헝다그룹이 후발주자의 열세를 만회하고자 한 시도였다. 우리나라 농심의 백산수 공장이 있는 이도백하는 신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말 그대로 백두산 일대는 천지개벽 중이다.” 이씨는 새삼 꽉 막힌 남북교류의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상하이에서 오는 관광객도 날로 증가세이고, 인천에서 비행기 타면 바로 백두산 발밑에 내리는 데 반해 동파 쪽 북한 경계 내의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장군봉을 쳐다보면 남쪽이나 북쪽 관광객들이 보이곤 했는데 동파로 가는 게 이젠 꿈이 됐다. 7~8년 전 삼지연공항 활주로 공사를 할 때 간 게 마지막이었다. 그사이 백두산은 엄청나게 변했는데 금강산도 언제 갈지 모르는 상황이 됐으니… 더 무슨 말을 하겠나.”
강태호 선임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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