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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1 19:43 수정 : 2015.01.15 14:37

[짬] 밥퍼나눔운동본부 최일도 목사

밥퍼나눔운동본부 최일도 목사
잔뜩 찌그러진 냄비다. 손잡이도 너덜너덜하고 바닥 한쪽은 구멍이 나 때웠다. 길바닥에 나뒹굴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을 만큼 낡은 양은냄비다. 그런 보잘것없는 냄비가 기적을 만들고 있다.

‘땡그랑’하고 100원짜리 동전이 한닢, 그 냄비에 떨어진다. 그 동전은 세월의 주름이 얼굴에 가득 새겨진 할아버지의 깊은 주머니 속에서 나온다. 대부분 노숙인이거나 무의탁 노인들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던 그들은 식당 입구에서 100원짜리 하나를 꺼내 냄비에 넣는다. 냄비를 애써 못 본 체하는 노인도 있다. 어떤 노인들은 10원짜리 몇개를 넣기도 한다. 물론 점심값은 아니다. 식당 입장료는 더욱 아니다. 이름하여 ‘자존심 유지비’. 서울 청량리의 밥 짓는 시인 최일도(57) 목사가 운영하는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점심을 먹는 노인들이 21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낸 100원짜리 동전이 10만개가 됐다. 그 1000만원이 아프리카 빈민촌의 어린이 교육시설을 짓는 데 쓰인다. ‘밥퍼’ 목사의 열정이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꿈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노숙인 스스로 낸 ‘밥값 100원’
21년간 모아 틈틈이 좋은 일에 써
이번엔 노숙인 의견 모아 1천만원
탄자니아 ‘꿈퍼 학교’ 짓는 데 쓰기로

최근 아프리카로 봉사를 다녀오면서 검게 그을린 얼굴을 배경으로 밥퍼 목사의 흰 치아는 더욱 돋보인다. 지난 19일, 밥퍼 앞마당에서 평소 안면이 있는 노숙인들은 앞치마를 두른 최 목사를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그들은 무료 점심 급식을 받기 위해 1시간30분 이상 줄을 서 기다린 상태. 덥긴 하지만 짜증은 내지 않는다. 최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그들을 위로하기 때문이다.

하루 점심 급식 인원 700여명. 많을 때는 1000여명까지 늘어난다. 70여명의 자원봉사자 가운데 일부는 새벽부터 나와 반찬거리를 다듬느라 바빴다. 이날 최 목사는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가슴에 안고 ‘자존심 유지비’를 기쁜 마음으로 직접 받았다. 지난 21년간 이곳에서 무료급식을 받는 노인들 사이에 느슨한 형태로 모아지던 ‘자존심 유지비’가 마침내 1000만원이 되기 때문이다.

26년 전 1988년 11월부터 청량리역 근처에서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을 하던 최 목사에게 21년 전 한 젊은 노숙인이 투덜거리며 제안을 했다. “아무리 노숙인 신세이지만 공짜로 밥을 먹으려 하니 자존심이 상하네요. 100원이라도 내고 먹으면 자존심이 조금이나마 살아날 것 같네요.”

최 목사는 기쁜 마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식당 한쪽에 양은냄비를 놓아두었다. 그 양은냄비는 최 목사가 처음 청량리역 광장 임시매표소 판매대 앞 바닥에 앉아 무료급식을 할때 처음 쓰던 라면 냄비. 가난한 전도사였던 최 목사는 밥이 아닌 라면을 노숙인들에게 끓여주며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원생으로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최 목사는 청량리역 광장에 굶주려 쓰러진 채 방치된 할아버지를 보고, 걸인과 노숙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기 시작했다. 소문이 나자 인근 시장 상인들이 쌀과 청과물을 내놓아 밥을 지어 배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노숙인과 무의탁 노인들은 폐지 등 넝마를 주워 팔아 만든 푼돈을 아낌없이 자존심 유지비로 쓰기 시작했다. 100원을 자발적으로 내니 가슴도 펴졌다. 한 노인은 연말에 5만원을 내며 “한해 동안 점심 맛있게 먹었다”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렇게 모인 ‘자존심 유지비’는 몇차례 목돈으로 쓰였다. 신학대 장학금으로 쓰이기도 했고, 캄보디아 빈민촌 어린이의 심장병 수술비와 필리핀 어린이 척추측만증 수술비로 100만~200만원씩 쓰이기도 했다.

최 목사는 냄비에 모인 자존심 유지비를 쓸 때는 많은 노숙인의 의견을 듣고 결정한다고 한다.

이번처럼 100원짜리 동전이 10만개가 모아진 것은 처음. 노숙인들은 최 목사가 아프리카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사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쓰는 데 동의했다.

최 목사는 탄자니아의 쿤두치 채석장에서 일하는 아이들 300명을 위한 학교를 짓는 데 이 돈을 쓰기로 노숙자들과 의견을 모았다. 3년 전부터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와 우간다에 가서 다일공동체와 어린이학교를 세우기 시작한 최 목사는 가능한 한 이슬람교도가 많은 지역을 선택했다. 종교간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하며 회복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6일까지 아프리카에 다녀온 최 목사는 우간다에 다일공동체를 설립했고, 탄자니아에서는 ‘꿈퍼, 희망학교’를 열었다. 동행했던 이계안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과 탤런트 박상원씨는 굶주리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적지 않은 성금을 내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현철씨가 5억원의 성금을 낸다고 하자 이를 거절했던 최 목사는 “노숙인들과 무의탁 노인들이 자신들의 피땀을 흘려 번 푼돈이 모아진 성금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임종을 앞둔 한 노숙인이 자신을 버린 자식들에게는 일체 원망이 없다며 신세지고 싶지 않으니 절대로 알리지 말고, 자신의 전 재산인 320만원을 사회봉사 성금으로 쓰라고 말해 눈물을 흘렸다”며 “노숙인들의 자존심을 살리며 그들의 재활을 지속적으로 적극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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