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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7 21:23 수정 : 2015.01.15 14:35

천호선·김홍희 부부

[짬] ‘백남준 책’ 나란히 낸 천호선·김홍희부부

“국민의 미적 감각을 높혀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백남준(1932~2006)을 세계적 작가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줬던 천호선(71) 전 쌈지길 대표는 백남준이 살아생전 강조했던 ‘강한 이빨론’을 떠올린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선진 문화의 다양한 점을 악착같이 받아들여야 한국의 문화가 생명력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페미니즘도 줄기차게 강조했어요. 미래의 흐름을 예견한 혜안이 있었어요.”

자신을 1995년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로 ‘발탁’한 백남준에 대해 항상 느끼는 고마움을 지니고 있는 김홍희(66) 서울시립미술관장은 백남준의 부재가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부부인 둘은 함께 백남준에 대한 ‘오마주’로 책을 냈다. 올해는 백남준 탄생 82주년이기에 의기투합했다. 백남준을 세계 미술사에 더욱 가치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고픈 마음이 컸다.

부부는 마침 올해가 결혼 44주년이었다. “서로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내기로 했어요.”

아내 김 관장은 <큐레이터는 작가를 먹고산다>(눈빛)를, 남편 천호선은 <내 생의 한 획, 백남준>(눈빛)을 냈다.

부부에게 백남준은 너무 특별하다. 부부는 1980년 미국 뉴욕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백남준에게 같이 다가가 인사했다. 당시 천씨는 뉴욕 총영사관 한국문화원 문정관이었고, 김 관장은 주부였다. 뉴욕의 실험예술공간 ‘키친’에서 백남준은 레코드판과 바이올린을 깨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부부에겐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김 관장은 무대 옆에 떨어진 깨진 레코드판과 바이올린 조각을 주워 모아 백남준에게 가지고 가 사인을 부탁했다. 백남준은 흔쾌히 사인하며 스튜디오로 찾아오라고 초대했다. 그래서 부부와 백남준은 문화적 사제 간이자 친구가 됐다.

“백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자리가 가능했어요. 제 속에 깊이 숨어 있던 예술혼을 일깨워주셨으니까요.” 늦은 나이에 미술계로 뛰어들었지만 최첨단 흐름을 받아들인 김 관장은 귀국한 뒤 백남준의 도움으로 국내 미술계에 발을 붙였다. 백남준은 무명의 김 관장을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로 전격 영입했다. 자신이 연출자(디렉터)였기에 가능했다. “백 선생님은 무섭게 작업에 몰두했어요.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초짜인 나에게 뭉칫돈을 주고 쓰라고 했어요. 예산이 부족하면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어요.”

결국 깨진 레코드판 조각이 맺어준 인연이 김 관장을 비주류 독립 큐레이터에서 마침내 시립미술관장으로까지 이끌었다. 지난해 아시아인으로 유일하게 2017년 카셀도쿠멘타(최고 권위의 5년제 국제미술제) 감독 선정위원도 맡았다. 그러니 백남준에 대한 김 관장의 애정은 각별하다.

1980년 뉴욕서 백남준과 첫 만남
레코드판 깨는 모습에 반해 인연

뉴욕 한국문화원 문정관 천씨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방송 돕고
김씨 미술계 진출 백남준이 끌어
“백남준 평가절하 안타까워”

남편 천씨는 백남준이 1984년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동원해 생중계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한국에 방송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뉴욕 한국문화원 문정관으로 재직하며 미국·프랑스·독일에 생중계된 이 프로젝트를 한국에서도 방송하도록 주선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백남준은 천씨를 생전 고마워했다.

천씨는 옆에서 본 백남준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예술인’이라고 말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부부는 백남준이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아쉬워한다.

“백 선생님은 세계 미술사를 통틀어 손에 꼽힐 만큼 예술적 의미가 있는 업적을 남겨놓았어요. 백 선생님은 ‘아방가르드는 살아서 승부해야 한다며 생명에 큰 애착을 보이셨는데….” 김 관장은 심지어 한국의 미술 수집가들도 백남준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미술계의 소문난 잉꼬부부이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큰 차이가 난다. 천씨는 김 관장을 ‘편집증 환자’로, 김 관장은 천씨를 ‘분열증 환자’로 표현하는 데 서슴지 않는다. 김 관장의 꼼꼼함과 천씨의 다양한 흥미가 서로 통하긴 통하는 모양이다.

김 관장은 “앞으로 남아 있는 임기 동안 서울시립미술관을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러곤 미술사를 새로 쓰려고 해요. 단순히 인물 위주가 아니라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미술사의 흐름을 정리하려는 욕심”이라고 한다.

이를 듣던 남편은 웃으며 맞대응한다. “손에 항상 잡고 있는 카메라를 더욱 열심히 배워서 6년 뒤인 결혼 50주년에는 사진 개인전을 열고 싶어요. 큐레이터 출신 부인이 기획해주면 더욱 좋을 텐데….”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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