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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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1천여쪽 12권 분량 ‘아함경’ 펴낸 학담 스님
“한국불교 종파화·관념화…실천적 삶으로 개혁해야”
금강·화엄경보다 수준 낮지 않아
강 건넜으면 뗏목 버려야 언덕 넘어
빈자 고난 함께 짊어지고 치유를” 그는 1970년대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 중 경주 분황사로 도문 스님(현 대성사 조실)에게 출가했다. 이어 3·1운동 민족대표였던 백용성 스님의 제자인 동헌 스님을 서울 대각사에서 시봉하면서 선(禪)을 접한 뒤 상원사·해인사·봉암사·백련사 등의 선방에서 참선정진했다. 그는 이미 90년대 초 도법·지홍·현각·원행·범진·원타·정연·원명·지환·현봉·천월·수경·종광·여연·범하·영명·현응·명진·돈연·무관·인각·유광·영진 스님 등 현 조계종의 중추적 인사들과 함께 선우도량을 일구기 전부터 은둔적 불교를 실천적 불교 사상으로 해석해내는 데 탁월성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금까지 <아함경>은 금강경이나 화엄경 등 대승경전보다 수준이 낮은 초기 경전쯤으로 여겨졌다. 동아시아에서 꽃피운 대승불교와 비교해 초기 경전과 남방불교를 ‘소승’으로 폄하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학담 스님은 이런 분절된 사고부터 깬다. 그는 ‘제2의 붓다’로까지 존중받는, 대승보살의 화신 용수보살의 저서 <중론>부터 예로 든다. “<중론>을 보면 전부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인연품, 사제, 12연기, 열반 모두 아함경에 대한 것이다. 중론은 아함경에 대한 기존의 왜곡된 해석에 대한 비판론이다. <대지도론>도 마찬가지다. <반야심경>도 아함경의 공과 오온, 12처, 사제, 12연기 등 불교적 핵심 사상을 중도로 해석한 것이지 다른 게 아니다.” 그는 “부처가 처음 출현해 기존 제사종교와 고행주의에 빠져 있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모든 것은 인연으로 있으니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으나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니 ‘존재는 공하지만 법이 덩어리로 있다’고 본 게 부파불교이고, ‘인연으로 일어난 존재도 공(空·빔)하고, 인연 자체도 공하다고 본 게 반야불교”라고 했다. 천태 대사가 아함부, 반야부, 화엄경 등으로 분류해놓은 것은 각 교설의 차이점을 말한 것이므로 이를 분절적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역이 넓어 한 경전이 들어오면 그것만 유포돼 그 경에 따라 열반종·화엄종·정토종 등이 생겨났는데, 남북조시대에서 수나라로 통일되던 시기에 천태 대사가 모든 경을 회통시켜 선으로 통일시켰으므로 동아시아 선의 조종은 달마 대사와 천태 대사 두 분으로 봐야 한다.” 새로운 주장이다. 그러나 유추가 아니다. 방대한 독서와 지식을 더한 실질적 고증이 뒷받침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의 의천이 천태를 개창한 이래 조선초엽 행호 대사 등 천태 계열 스님들이 요즘의 종정에 해당되는 선종판사를 맡았다고 한다. “이미 중국에선 송나라 말기 명나라 말기 감산덕청 우익지욱, 자백진가, 운서주굉선사 등이 교판과 종파선 비판운동을 벌여 종파화한 불교를 개혁하고자 했고,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엔 사상통합 운동을 벌어 조사선에서 ‘방(방망이질)할(고함)치는 단계에서 벗어났는데 한국 불교는 아직도 이 운동조차 전개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아직도 임제선사의 법통(족보)주의에서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활발발하고 ‘격 밖’(파격)에 있는 게 불교 정신이다. 그러나 ‘인격적 권위’(스승)를 의지하지 않는 반야(지혜)와 정법안장(법통)만을 중시하면서 불교가 관념화되고, 행위의 절제가 부족하게 됐다.” 그는 선의 정신을 바로 불교 정신이자 최고봉이라고 평한다. 그가 질타하는 것은 그런 정신이 아닌 법통과 같은 허깨비다. “부산에 가는 표만 끊고 가지 않으면 되는가. 염라대왕 앞에서 화두를 했다는 것으론 말이 안 된다. 생사를 초탈해야 한다. 닫힌 문을 두드리기 위해 기왓장을 들었다면 문을 연 이후엔 기왓장을 버리는 게 당연하다. 스스로 물음을 통해 자기 해답을 갖고, 여래가 깨친 세계관에 복귀하는 화두선의 방법론은 훌륭하지만 화두도 공한 줄을 알아야 한다. 방법론이 교조화하고 경직되어선 안 된다. <아함경>에 나온 대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저 언덕을 넘을 수 있다.” 그는 평생 선(참선)·교(불교학)를 함께 해왔지만 잠자는 불교를 깨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실천이다. 그는 출가한 즉시 치열한 보살로서 실천적 삶을 산 <아함경> 사례를 들어준다. “부처는 한 비구가 병든 비구를 내팽개치자 직접 가서 씻어주고 옷을 빨아주었다. 그리고 병든 이를 보살피는 게 여래를 보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내 복을 빈자에게 나눠주고 검소하게 사는 두타(고)행이라도 해야 한다. 부처는 탁발한 밥을 반드시 4등분해 굶는 사람과 빈자, 밥을 빌지 못하는 비구 등과 나눠 먹었다. 고난을 함께 짊어지고 치유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는 “불교적 지혜는 반드시 실천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의 ‘아함경 해석’ 12권은 행함이 없는 한국 불교계에 큰 죽비가 아닐 수 없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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