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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4 19:07 수정 : 2015.01.15 14:33

가수 김장훈 씨

[짬]세월호 단식 마친 가수 김장훈

그는 한때 공항장애 중증 환자였다. 어렵게 그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다시 그를 가라앉혔다. ‘4·16 참사’ 당시 중국 상하이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준비중이던 그는 모든 일정을 포기한 채 그대로 짐을 싸고 귀국했다. 그리고 폐인처럼 지냈다. 외출도 할 수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을 찾았고, 빈소를 찾았다. 할 일을 마침내 찾았다. 함께 단식을 하기로 했다. 그러다 병원에 실려갔다. 또 단식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공인(公人)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단식은 중단했지만, 그는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할 일이 떠올랐다고 한다.

단식 후유증으로 사흘째 배앓이를 하느라 몇차례 약속을 연기한 끝에 4일 한 카페에서 만난 가수 김장훈(사진·47)씨는 기운차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엇이 그를 다시 생기있게 만드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뒤 중국 일정 취소
유민아빠 도우려 단식 동참
단식 마치고 3일째 후유증
안산서 유가족 위한 공연 계획
“트라우마 치유 활동 이어갈 것”

그는 자신이 연예인이지만 연예 뉴스는 안본다. 사회면도 안본다. 15년째 그렇다. 대신 국제·경제·아이티(IT) 과학기술 관련 소식만을 매일 3시간씩 챙겨본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권유한다. 그 자신 독도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집요하리만치 몰두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인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훨씬 더 아팠다”고 표현하는 그는 단식은 그가 할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였다고 했다.

“세월호 이후 처음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시작했어요. 매일 두시간씩 채팅을 해요. 왜냐구요? 세월호의 아픔과 진실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죠.”

그가 글을 쓰면 70만명이 본다. 두달사이 1200만명이 그와 사이버 공간에서 소통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슬프다. 참사 당시 하나였던 국민의 마음이 어느새 금이 가고 분열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했어요. 오래 전 교통사고로 숨진 5살배기 조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요. 그 이야기 해야 내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는 “우리 자신을 태워서 세월호 유가족에게 조금이라고 더 다가 가자”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참사 50일만에 유가족을 위해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진도 팽목항을 12번 다녀왔다.

“이미 외국에서 예약된 공연 6개를 펑크냈어요. 그리고 함께 단식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제가 공인이잖아요. 대중에게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고 싶었어요.” “단식중인 유민 아빠를 보니 먼지만큼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거기에는 조금도 정치적인 의도는 없어요. 그래서 그 어떤 대책위에도 간여를 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그에겐 많은 ‘조카’들이 생겼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형제 자매들이 그에겐 가족이 됐다. 그들에게 정신적으로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 앞으로 그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땅에 대형사고와 재해로 억울하거니 정신적으로 불행한 이들이 좀더 덜 불행해지도록 돕고 싶어요.”

그는 슬픔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몇가지 일을 구상했다. 그 첫번째는 희생자나 유가족의 조그마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다. “날씨 좋은 어느날 안산의 공원에서 유가족을 초대해서 작은 공연을 할 겁니다. 노래를 좋아했던 희생 학생을 위해선 평소 좋아했던 노래를 그 학생의 친구들과 함께 그 유가족에게 불러줄 겁니다. 낙서하기를 좋아했던 학생을 위해선 낙서 전시회를 열고, 친구들이 그 낙서를 낭송할 수도 있구요. 트라우마는 비단 생존자나 유가족만 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네 편의점 아저씨나 세탁소 아주머니도 함께 앓고 있어요. 그런 이들을 위한 위로의 시간입니다.”

‘하늘에 보내는 종이비행기 날리기’도 그가 구상 중인 ‘외상후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다.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종이비행기로 접어 건물 옥상에서 날리는 것입니다. 그 종이비행기를 주은 시민은 또 편지를 적어 날려보냅니다. 노랑 종이비행기를 릴레이로 날리는 거죠.”

추석 연휴에도 팽목항으로 내려가 유가족과 함께 보내며 그들의 아픔을 달래고 싶다는 김씨는 세월호뿐 아니라 체육관이 무너져 참사를 당한 부산외대의 피해 가족들과 태안 해병대 캠프 희생자 유가족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도 구상중이다. 어느새 체력이 바닥난 듯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는 다시한번 힘줘 말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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